최애의 소꿉친구에 빙의했다 1권
최애의 소꿉친구에 빙의했다 1권
최애의 소꿉친구에 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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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살락
최애의 소꿉친구에 빙의했다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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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의 소꿉친구에 빙의했다 1권
1장
막연하게 상상하던 일이 이루어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 역시 로또 1등에 당첨됐다는 글을 보며 ‘나도 로또 당첨되고 싶다.’라고 상상해 본 적은 있었다.
그러나 로또 1등에 당첨될 리 없었다. 애초에 복권을 사지 않았으니 당첨될 가능성이 없지.
내가 하는 망상은 주로 그런 것이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1퍼센트도 존재하지 않는 것.
그러니 좋아하던 작품에 빙의한다는 건 책이나 꿈속에서나 가능한, 한마디로 말해서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수능 날 환생트럭을 조심해야 한다거나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수상한 구슬을 주우면 안 된다느니, 그런 건 다 장난 삼아 하던 이야기였다.
지겨운 현실을 떠나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삶을 살았으면 하는 그런 가벼운 상상 같은 거.
그렇지만 실제로 나에게 그런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휴대폰도 없고 인터넷도 되지 않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건 어려운 데다가 일어날 리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던 웹소설의 여자 주인공, 아리아 메이너드가 서 있었다.
“…뭐지?”
그래.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에 빙의했다. 그것도 내 최애인 여자 주인공의 소꿉친구로!
* * *
빙의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게임처럼 허공에 안내창이 뜨거나 아니면 평범한 하루를 보내다 문득 깨닫는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빙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정말 어이없게도 최애의 친오빠가 아무 생각 없이 던진 공에 머리를 맞아서였다.
타고나길 몸이 약해 활동적인 운동을 할 수 없어 멀리 떨어져서 구경만 하고 있던 내 머리 위로 말랑말랑한 고무공이 날아왔다.
“아악!”
고무공이 조그만 머리통에 부딪치며 꽤나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와 동시에 비명을 지른 내 머릿속에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두통이 올 정도로 뒤통수가 당기고 어지러웠지만 나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텼다.
그 순간 초보 빙의자를 위한 혜택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기억이 머릿속으로 쏟아졌다.
아니, 잠깐만. 이럴 리가 없는데? 빙의라는 게 진짜 가능한 일이었어?
“괜찮아?!”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 욕설에 최애의 친오빠인 다니엘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가와 물었다.
“이렇게까지 꿈이 실감 날 수 있는 건가?”
나는 내 어깨를 짚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하하. 그럴 리가 없지. 당연히 꿈이겠지. 좋아해서 연재할 때도 보고 단행본 나왔을 때도 보고, 이북이 닳고 닳을 정도로 봤던 작품에 빙의하는 게 현실적으로 말이 돼?
“근데 왜 꿈꾸는 것 같지가 않지?”
고민은 짧았다. 나는 손을 뻗어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애의 뺨을 꼬집었다.
“아!”
왜 내 뺨을 꼬집지 않냐고?
…저렇게 말랑말랑한 볼을 보면 꼬집고 싶어지지 않나?
남매는 허공을 쳐다보며 혼잣말하는 나를 보더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리엘라가 머리를 심하게 다쳤나 봐. 아리아, 어서 의원을 불러와!”
“으, 응! 내가 다녀올게!”
안 돼! 가지 마!
나는 멀어져 가는 최애를 붙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내 손을 붙잡은 건 다니엘이었다.
“리엘라, 어지럽거나 그러진 않아? 토할 것 같아? 열이 나거나 그러진 않고?”
다니엘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어린애들이 가지고 노는 고무공이긴 했지만 장작이 쪼개지는 것처럼 둔탁한 소리가 난 게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꿈이라거나 상상이라고 생각했건만,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꽉 붙잡힌 손으로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다.
어, 잠깐만… 설마 진짠가?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그를 자세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자를 시기를 놓쳐 뒷덜미를 덮은 길이의 분홍빛이 도는 머리카락에, 호수처럼 깊고 푸른색의 눈동자.
소설 속 주인공인 아리아의 가문인 메이너드 공작가의 특징이었다.
사랑스러운 여자 주인공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일부러 밝은색으로 조형한 것 같은데 아리아의 남자 버전도 꽤나 괜찮았다.
그러나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해도 쉽사리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결국 나는 내 볼을 세게 꼬집을 수밖에 없었다.
“아야!”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어, 나는 괜찮아!”
얼얼한 통증에 뺨을 부여잡은 나는 허둥지둥 대답했다. 그러나 다니엘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리엘라, 너 이마에 혹 났어.”
다니엘이 내 이마 정중앙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도 그를 따라 내 이마를 더듬었다.
정말 혹이라도 난 건지 볼록하게 솟아오른 이마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리엘라!”
아아, 최애가 내 이름을 불러 줬어, 나는 이제 죽어도 좋아…!
잠깐. 빙의했다는 건 현실의 내가 죽었다는 건가?
감격스러운 것도 잠시 나는 진지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의원에게 붙잡혀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도 내 시선은 나의 최애, 아리아 메이너드에게 향해 있었다.
그래. 내 취향은 언제나 여자 주인공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연애 감정을 뜻하는 사랑이 아니라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의 마음 같은 거였다.
내가 빙의한 이 소설은 아리아의 가문인 메이너드 공작가의 몰락으로부터 시작됐다.
제국에서 가장 오래된 가문인 메이너드 공작가가 한순간에 재가 된 건 아리아가 황제의 청혼을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행해지는 괴롭힘에 힘겨워하는 아리아의 곁을 지킨 건 다니엘이었다.
동생을 안타깝게 여긴 다니엘이 친구이자 주군인 레오니트에게 그러지 말아 달라 간언하자, 레오니트는 곧바로 전쟁을 일으켜 강제로 다니엘을 출정시켰다.
당연하게도 다니엘은 그 전쟁에서 죽게 되고 유일한 후계자인 아리아에게 레오니트가 또다시 청혼을 한다.
「내게 와, 아리아. 너도 죽고 싶지 않다면.」
소중한 가족을 모두 잃은 아리아의 대답은 하나였다.
「싫어요.」
자신의 가족을 죽인 사람과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고민 따윈 없는 단호한 그녀의 거절에 레오니트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입꼬리를 끌어 올려 그녀를 비웃으며 말했다.
「돌아갈 곳이 없다면 내게 오겠구나.」
가문의 몰락과 가족들의 죽음을 두 눈으로 지켜보며 아리아는 복수를 꿈꾸게 된다.
그러나 가문이 무너지고 수중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멀쩡한 몸뿐이었던 그녀는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아 북부로 떠난다.
인생을 건 배팅이었다. 그닥 좋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같은 적을 두고 있는 카이넬 백작가를 찾아간다.
암살로 죽어 버린 약혼자를 대신해 위장혼을 치른 아리아와 녹스는 오랜 시간 끝에 반역을 일으키고 최종 악역인 황제를 끌어내리는 데 성공한다.
아리아의 목표는 가문의 재건이 아니었다. 가문을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억울한 죽음에 대한 값을 치르고 싶어 했다.
오직 죽음만이 완벽한 복수가 아니라는 걸 보여 준 이 소설은 완결부에 가서야 사랑임을 자각한 두 사람의 고백으로 끝난다.
뭐, 그건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고.
“오빠가 어떻게 리엘라한테 이런 짓을 할 수 있어! 몸 안 좋은 거 알면서!”
“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잖아. 실수였어.”
“하지만 리엘라의 이마를 봐, 오빠가 이렇게 만들었다고! 당장 사과해!”
내 이마를 가지고 투닥거리며 싸우는 남매의 모습에 나는 허허 웃음을 터트리며 의원이 붙여 주고 간 반창고를 매만졌다.
“아리아, 나 진짜 안 아파.”
“진짜로?”
“응. 진짜로. 만져도 안 아파.”
꾸욱.
“아!”
“거봐, 아직 아프잖아! 리엘라는 지금 당장 쉬어야 돼. 오빠가 잘못한 거니까 리엘라가 용서할 때까지 따라오지 마!”
그렇게 세게 누르면 어디든 아플 텐데…….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리아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리엘라’가 수도에서 치료받기 위해 올라온 지도 어느덧 2년이 지났다. 이름난 명의를 데려와도 크게 나아지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왜 몸이 아픈 거지? 특별하게 불편한 곳도 없는데.’
걷고 뛰는 데 문제도 없고, 숨 쉬는 것도 불편하지 않았다. 방금 전 공에 머리를 맞아 조금 어지럽긴 했지만 아주 심한 건 아니었다.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는 병이라면 다행이지만, 치료 방법이 없는 시한부라면 얘기가 달라졌다.
“리엘라.”
“응?”
“무슨 일이 있어도 오빠 용서하지 마. 알았지? 이건 우리끼리만의 약속이야.”
고민에 빠져 있던 나를 부른 건 아리아였다. 나는 방금 전까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잊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간을 팍 찌푸리고 심각한 목소리로 말하는 모습이… 귀여워도 너무 귀여웠다!
참을 수 없는 귀여움에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던 나는 크게 숨을 고르고 손가락을 마주 걸었다.
“약속할게.”
최애가 그렇게 하자는데 대체 누가 싫다고 할 수 있겠어?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자 아리아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렇게 나는 어디서 배우기라도 했는지 절대안정이라는 말을 꺼내며 진지한 얼굴로 당부하는 아리아의 모습에 웃음을 참아야 했다.
“나 수업 받고 오면 같이 놀아야 돼?”
“알았어. 조심히 다녀와.”
“절대 일어나면 안 돼! 오빠가 와도 문 열어 주지 말고!”
나는 알겠다는 뜻으로 주먹을 쥐어 보였다. 그러자 아리아도 무언가 결심한 듯 진지한 얼굴로 주먹을 들어 보였다.
문이 닫히자 그제야 긴장이 풀린 나는 한숨을 길게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 차분하게 생각해야 할 시간이 필요했다.
첫째. 나는 빙의했다.
둘째. 나는 내 최애의 소꿉친구다.
셋째. 이 소설의 흑막은 다니엘의 친구이자 몇 년 뒤 황제가 될 레오니트다.
넷째. ‘리엘라 하운드’는 원작에 나오지 않는다.
뭐, 말이 소설 속에 나오지 않는다는 거지 아리아의 어렸을 적 소꿉친구에 대한 묘사는 있었다.
「언젠가 아이를 낳는다면, 리엘라의 이름을 주고 싶었어.」
외전에서 자신이 낳은 아이를 바라보던 아리아의 회상을 통해 고작 몇 줄로 설명되었기 때문에 원작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기엔 어폐가 있었다.
최애의 소꿉친구가 누구일까 상상해 본 적은 있었다. 그게 내가 될 거라곤 예상 못 했지만.
“아, 맞아. 그랬었지…….”
침대에 누워 있으니 조금씩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전생의 기억과 현재의 기억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구분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전생의 나, ‘김은해’의 죽음은 말을 꺼내기 민망할 정도로 아주 허무했다. 그랬던 죽음인 만큼 어딘가 존재하는 신이 안타깝게 여긴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최애의 소꿉친구로 다시 태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하나도 걱정되지 않았다. 휴대폰이 닳아 버릴 때까지 이 소설을 읽고 또 읽었던 사람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