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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 백 개 찍고 회귀한 배우님 6권
전서서 현대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Chapter1
Chapter2
Chapter3
Chapter4
Chapter5
1
Chapter1
이른 아침, 도쿄.
“나는 일 하러 온 거야, 일 하러 온 거야…….”
취재(?)를 위해 일본을 찾은 박희연은 억지로 마인드셋을 다스리며 공항을 빠져나왔다.
그녀가 향하는 목적지는 당연히 서진하(와 문인수)의 팬미팅 장소인 모차르트 홀.
일 하러 온 건 맞다.
팬미팅 관련된 기사를 쓰기 위해 온 거긴 하니까.
유진 엑터스에서도 팬미팅 기사 좀 써달라며 사진까지 보내준다 했으니.
‘……라고는 해도, 사실 안 와도 되기야 하지만.’
사진까지 보내주고, 일정표까지도 다 보내주지 않았는가.
굳이 일본까지 와서 직접 보고 쓸 필요까지는 없긴 하다.
따지고 보면 안 오는 게 이득이었다.
비행기 값 아깝다며 가는 길에 다른 취재거리들까지 전부 짬 맞았으니.
그녀의 팀장도 굳이굳이 거기까지 가는 이유가 뭐냐, 네 덕질하려고 가는 거 아니냐 라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허, 이 저널리즘 없는 것들.”
“에?”
순간 진심이 나와 택시에서 중얼거려버린 박희연.
“아, 스미마센.”
박희연은 대충 대답하고 팔짱을 꼈다.
팀의 모두가 꿀 빨러 가는 거 아니냐 의심했지만.
원래 바쁜 꿀벌은 덕질할 시간도 없는 법.
약간은 덕질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오늘 그녀는 사명의식을 가지고 이 땅을 찾은 것이다.
‘아주 심층적인, 거의 칼럼에 가까운 기사를 써주지……!’
오늘 쓸 기사는, 그냥 평범한 범부들의 기사가 아니다.
하나의 입덕 계기가 될 만한 기념비적인 기사를 쓸 거다.
기사를 읽은 사람이, ‘정말 이 정도라고?’라는 생각을 가지고 서진하를 보게 되도록.
그리고 서진하를 목도한 결과로 당연하게 입덕하게 되도록……!
‘이러다 퓰리쳐 상 받는 거 아냐?’
말도 안 되는 망상까지 하는 그녀였다.
* * *
그 시각, 모차르트 홀.
“예? 뭐라고요? 3분이요?”
“3분이라니요. 3초 컷이었다니까요? 하아, 그니까 2,000석 규모 해야 한다 그리 말을 했었는데.”
오늘 팬미팅의 스테이지 매니저는 혀를 쯧 차며 불평을 늘어놨다.
이 넓은 무대가 전부 이선좌로 바뀐 게 단 3초만에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단독 팬미팅이 아니라 문인수랑 같이 하는 합동 팬미팅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3초만에 끝났다고?
‘진짜 2,000석 해도 됐겠네.’
물론 좀 급하게 기획된 팬미팅이기도 하고, 첫 번째다보니 수익보다는 기억에 남는 팬미팅을 하기 위해서 1,000석으로 정했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살짝, 아쉬운 건 아쉬운 거지.
수익 때문이나 그런 건 아니고.
팬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거였잖아.
“어쩌겠어요. 다음 번에는 크게 할 수 있게 해야죠.”
“그쵸그쵸. 그때는 단독으로 1만 채우시죠?”
“아직 먼 거 같기는 한데, 그랬으면 좋겠네요.”
나는 매니저와의 대화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팬미팅 리허설을 진행했다.
처음 등장 때부터 시작해서 토크, 게임, 이벤트, 듀엣곡 한 곡으로 끝나는 무난한 과정.
좀 걱정됐던 부분은 마지막에 있을 듀엣 파트였는데…….
“이야, 진하야. 너 노래 많이 늘었네?”
“좀 연습했으니까.”
문인수는 이 전과는 달라진 내 청아한 음색에 엄지를 치켜올렸다.
“아니, 좀 연습한 게 아닌데? 무대인사다 뭐다 해서 시간 없지 않았어?”
“없어도 해야지. 프로잖아.”
“와…… 프로. 민중이 그 친구한테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네.”
문인수는 감격한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근데 주먹은 왜 쥐는 거지. 민중이한테 말이랑 같이 저것도 전해줄 생각인가.
사실 연습을 ‘좀’ 했던 건 아니다.
‘하람예고’의 흥행으로 팬미팅이 결정된 직후부터, 정말 없는 시간 억지로 쪼개가며 연습했었다.
그랬던 이유야…….
‘얘랑 비교하면 문제가 많다는 걸 나도 아니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문인수는 수많은 뮤지컬에도 출연했던 배우.
당연히 나와 격의 차이가 서너 단계 날 수밖에 없다보니, 진짜 동굴에서 음을 깨우치려는 소리꾼의 심정으로 연습했었다.
듀엣인데, 최소한 비교는 안 되야 할 것 아니겠어?
보컬 선생님을 섭외하기도 했고, 아이돌 출신인 권하서나 한수아한테 꿀팁까지 들었었지.
[그래도 곡 자체가 쉬운 곡이라 망정이지. 만약 어려웠다면 네놈은 치욕을 겪었을 것이다.]
미래라도 보고 온 듯이 말하는 악마 놈.
안타깝지만, 저 말도 맞는 말이다.
우리가 부를 OST는 작중 여름 교회봉사 때 모닥불 아래서 ‘강필립’과 ‘한여름’이 부르는 노래.
작중에 한여름이 노래를 잘 못 부른다는 설정이다 보니, 그에 맞게 부르기 쉽게 음정이 무난하고 단조로운 편이다.
“오빠 다 끝나셨으면 바로 옷 갈아입으셔야죠!”
“아. 어.”
나는 린이의 말에 바로 다시 대기실로 들어갔다.
이번 팬미팅에서 옷 갈아입는 것만 총 네 번.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보니 일단 시작할 때 입을 하람예고의 교복으로 다시 바꿔 입어야 한다.
“아, 그런데 들으셨어요? 오늘 오시는 분 중에 완-전 유명한 분도 있다던데!”
“누구?”
“그, 뭐야. 일본 연예계에 높은 분이시라던데, 성함이…….”
종이에 적힌 한자를 보고는 눈을 찌푸리는 린이.
그런데, 어라?
뭔가 익숙한 한자였다.
“엥? 아시는 분이세요?”
“잘 아는 건 아닌데, 알기는 알지.”
타케다 슈운.
일본 감독님이신데, 가족의 사랑을 다룬 따뜻한 영화를 주로 만드는 감독님이시다.
지금도 유명한 감독이지만, 나중에 훨씬 더 유명해질 감독.
동시에, 전생에도 몇차례 만났던 감독님이시다.
“포츈쿠키가 효혐이 있네.”
“그래? 만난 적 있던 사람이야?”
“그건 아닌데, 내가 이 사람 팬이거든.”
고개를 갸웃거리는 문인수에게 웃으며 답했다.
말 그대로 팬이었다.
우리 스승님의 피폐 시리즈들과는 다르게, 마지막에 가서는 따뜻한 해피엔딩으로만 끝나던 영화만 만들던 분이시다 보니.
‘진짜 출연하고 싶었는데.’
끝나고 만날 기회 있으면 좋을 텐데.
이 사람은 팬미팅 한다 하면 내가 가보고 싶은 정도거든.
* * *
“후, 늦지 않게 왔네.”
사실 이곳 공연장을 오는 게 초행이 아닌 지라, 박희연은 헤매지 않고 도착하는데 성공했다.
‘그것보다 1,000명이라지.’
합동 팬미팅임에도 적은 숫자.
하지만 오히려 좋다!
기자로 활동하며, 여러 배우, 아이돌들의 팬미팅을 봐왔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
일단 갈 수만 있다면 사람 적은 팬미팅이 훨씬 퀼리티가 좋다는 것이다.
‘일단 쪽수가 적으니까 굿즈도 더 풍부하고, 경쟁률도 낮고!’
경쟁률이 낮다는 건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이벤트 당첨도 쉽다는 것.
물론, 그녀가 당첨되면 그것도 조금 문제기는 하다.
취재하러 와서 올라가는 건 좀 그렇지.
너무너무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가 있나.
애초부터 이벤트 응모는 하지를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박희연은 홀의 로비층에서 눈길을 돌리며 인터뷰 먹잇감을 찾았다.
그리고 가장 먼저 레이더에 잡힌 이는.
“어, 타케다 감독님!”
툭 튀어나온 배와, 자연스럽게 기른 게 아닌 면도를 안 해서 자란 덥수룩한 수염.
남배우 두 명의 팬미팅에 찾아올 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외모. 심지어 실내에 선글라스 끼고 와서 더 수상쩍었다.
틀림없다.
심심찮게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는 ‘따뜻한 거장’, 타케다 감독이었다.
박희연은 눈이 반쯤 뒤집혀서 고도비만의 중년을 향해 달려갔다.
“아, 키샤 데스카?(기자신가요?)”
“하이, 소오 데스!”
그는 박희연이 건넨 명함과 설명을 듣고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손나.(조용히 분위기 즐기고 가려고 했는데, 들켜버렸네요. 하하하!)”
“스미마센.(미리 말씀 안 드리고 온 건 죄송합니다만, 간단한 인터뷰만 가능할까요?)”
박희연의 말에 타케다 감독은 선글라스를 집어넣으며 신중하게 대답했다.
“이이데스.(너무 곤란한 질문만 아니라면요?)”
“아리가또!(감사합니다! 여기는 누구의 소개로 오신 건가요? 아니면 혹시 눈여겨보는 배우라도 있으신지…….)”
잠깐 고민하는 타케다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