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의 악녀는 미련 따위 없습니다 1권
이번 생의 악녀는 미련 따위 없습니다 1권
이번 생의 악녀는 미련 따위 없습니다
· 1 ·
© 또블링
이번 생의 악녀는 미련 따위 없습니다 1권
· 차례 ·
1장
2장
3장
4장
5장
이번 생의 악녀는 미련 따위 없습니다 1권
1장
“그러게 왜 레일리아를 건드려서는.”
“오라버니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언니는 저 때문에….”
“레일리아, 그게 왜 너 때문이야. 그런 말 하지 마. 정말 착해 빠졌다니까….”
내 앞에 서 있는 남자 셋과 여자 하나는 하나같이 나를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저들이 누구냐고?
가족… 아니, 한때는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사람들.
저들은 나를 한 번도 가족으로 생각한 적이 없겠지만.
나한테는 그렇다.
그럼 이제 이 상황을 보는 많은 사람들은 궁금해질 것이다.
왜 내가 이런 꼴이 되어 가족들 사이에서 뒹굴고, 곧 죽을 위기에 처했는지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빼어난 외모를 가졌다.
그 점이 내가 레일리아보다 뛰어난 무언가가 되어 버렸고, 레일리아보다 뛰어난 나는 마시파시우스 가문 사람들의 적이 되었다.
레일리아가 관심을 보이던 공작가의 영식이 나에게 아주 잠깐, 호감을 가지게 된 것.
그것도 내가 저지른 잘못 중 하나다.
나보고 레일리아를 엿 먹이려고 의도적으로 그에게 접근한 나쁜 년이란다.
웃기시네.
나는 공부하느라 바빴다.
남자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단 말이다.
나는 머리가 아주 좋다.
아카데미를 1등으로 조기졸업 할 정도로.
이 부분 또한, 내가 레일리아보다 뛰어난 무언가이다.
그런데 어느새, 마시파시우스 공작저에는 이런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로웬루아 마시파시우스가 답안지를 훔쳐서 시험을 쳤다더라.’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지경이다.
그런 쉬운 문제, 답안지가 내게 필요했을 리가 없다.
다만 이런 소문이 돌게 된 데엔 이유가 있었다. 레일리아는 조기졸업을 위한 시험에서 똑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작고 헛된 소문이 쌓이고 쌓여 나는 레일리아의 자리를 노리는 천하의 나쁜 인간이 되었고, 그런 내 최후는 비참했다.
마시파시우스 후작 가문에서의 제명과 누명으로 인한 교수형.
나는 지금 막 마시파시우스 후작 가문에서 제명을 당한 후, 나를 교수형장으로 데리고 갈 마차를 기다리는 중이다.
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이 제국의 모든 사람들이, 내가 레일리아를 죽이기 위해 사람을 고용했다고 믿고 있다.
지금까지 저질러 온 악행들과, 레일리아를 죽이기 위해 살인을 사주하였단 점이 교수형을 받아 마땅하단다.
그리고 그 판결에, 내 가족이라는 인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레일리아가 후작저에 들어오기 전에도 사이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사이였긴 했다. 그러나 레일리아가 들어오고 나서 저들은 나를 마치 썩어 문드러진 쓰레기 보듯 보았다.
…이런 미친 가문.
다들 레일리아에게 미쳐서 진실이 뭔지는 중요하지 않은 거지.
나는 빌었다.
다음 생에 태어나면, 이 빌어먹을 가문 같은 건 개나 줘 버리고 아주 멋진 인생을 살아 주겠다고.
모두에게 사랑받고, 레일리아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던 내 멍청한 행동들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나를 데리러 온 마차 소리가 들렸다.
마차는 점점 나를 향해 다가왔고, 나는 마차에 올라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이런 뭣 같은 인생, 차라리 빨리 끝내 버리는 게 낫지.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다리가… 안 움직인다?
마차는 계속 나를 향해 다가오는데, 내 다리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황한 채 그렇게 멍하니 나를 향해 다가오는 마차를 보고만 있었다.
“…야, 뭐 해. 일어나.”
“언니, 아무리 교수형이 확정됐다고 해도… 희망을 잃으시면 안 돼요!”
와, 그 와중에도 레일리아는 마시파시우스 후작가에서 키우는 뽀삐도 안 할 말을 하는구나.
아, 강아지 이름은 실제로 뽀삐는 아닌데, 레일리아의 사랑을 받아서 크는 강아지라며 레일뭐시기로 이름을 지어 놓은 탓에 나는 멋대로 뽀삐라고 부르고 있다.
내가 데려와서 내가 키우는데 왜 레일리아의 사랑을 받는 강아지인 건지.
우리 뽀삐랑도 이걸로 작별이군.
너랑 헤어지는 건 좀 아쉽다, 뽀삐야.
뒤에서 나를 일으키려는 움직임이 느껴졌지만 내 몸은 돌덩이처럼 바닥에 눌러앉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뒤에서의 소란스러움은 어느새 경악으로 바뀌어 갔고, 도저히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 마차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내 몸에 나는 어느새 모든 미련을 버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다시는 이딴 삶을 살지 않게 해 주세요.
이번 생 같은 어쭙잖은 착한아이 병에 걸린 사람이 아니라, 차라리 악독해져서 세상의 모든 권력과 남자를 부리며 살 수 있는 사람으로 살게 해 주세요.
그리고, 미안하지만 레일리아, 너한테 좋은 감정 가지고는 못 죽겠다.
네가 의도하지는 않았어도 내 비극의 시작은 결국 너였거든.
다시 태어나면, 너보다 행복하게 살 거야.
꼭.
* * *
나는 그 기도를 마지막으로 죽었다.
…죽었지?
…아니, 죽었는데 내 손끝에서 느껴지는 이건 뭐야?
분명 이 감촉은 내 방에 있는 이불의 감촉인데?
그렇게 내 앞에 펼쳐진 게 지옥이든 천국이든 일단 한번 확인해 보자는 생각으로 눈을 떴는데….
[흔하디흔한 인간들의 클리셰 다시 등장이요.]
…뭔 클리셰?
[레일리아라는 애가 고아원에 있는 걸 보니 로웬루아가 악녀겠네. 사실은 레일리아가 마시파시우스 후작가 딸이고, 로웬루아라는 악녀를 멋지게 퇴치하는 내용이면 여기 등장하는 애들 인생 다 봤다~]
…레일리아가 입양되어서 들어왔다가 진짜 후작의 딸이라고 밝혀진 건 맞기는 한데.
대체 내 눈앞에 떠다니는 이 글자들은 다 뭐지?

아니, 왜 로웬루아인 내가 악녀가 되는 건데?
이게 무슨…!
“아가씨! 일어나셨어요?”
그렇게 내 눈앞에 둥둥 떠다니는 글자들을 읽어 내려가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열고 마일린이 나를 향해 허겁지겁 뛰어들어 왔다.
“설마 마일린, 아버지가 너도 죽였어…?”
“자다가 일어나셔서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얼른 옷 갈아입으세요. 지금 당장 일 층 홀로 내려가 보셔야 해요.”
…마일린이 죽은 게 아니면, 내가 살아 있는 건가?
내가 살아 있다고?
아니, 그 마차에 깔렸는데 살아 있는 게 가능해?
“마시파시우스 후작 각하께서 고아원으로 봉사를 나가셨다가 여자아이 한 명을 데리고 오셨어요!”
그렇게 내가 멍한 상태로 마일린의 손길에 온몸을 맡기고 있을 때, 마일린의 한마디가 내 머리에 꽂혔다.
「아가씨! 마시파시우스 후작 각하께서 고아원에서 웬 여자아이를 한 명 데리고 오셨어요!」
이거 뭔가 전개가….
「이름이 레일리아라나? 아니, 그 까칠한 후작님 품에 안겨서 후작저로 들어오더라니까요?」
이거… 레일리아가 마시파시우스 후작성에 처음 들어왔을 때랑 상황이 완전 똑같잖아…?
“이름이 레일리아라나? 그 애를 소개하시겠다며 도련님들과 아가씨를 다이닝룸으로 호출하셨어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그렇게 마일린은 레일리아가 들어온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계속해서 투덜거리며 평소보다 조금 더 화려한 드레스를 나에게 건넸다.
아무래도 내가 있는데 고아원에서 여자아이를 데리고 왔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로웬루아, 집에서 그렇게 화려한 드레스는 사치라고 생각되는데.」
그때, 내 머릿속에 수년 전 내가 저 드레스를 입고 다이닝룸에 내려갔을 때 아버지가 나에게 건넸던 말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이게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을 정도로 인상 깊은 일이었나?

아우, 모르겠다.
일단은 내려가서 상황을 한번 확인해 보든지 해야지.
“저기, 마일린. 미안하지만 이 옷 말고 평소에 입는 옷으로 줄 수 있을까?”
“네? 하지만….”
“무슨 마음인지는 잘 알겠어. 생각해 줘서 고마워. 하지만 오늘 몸 상태가 안 좋아서 편한 걸 입고 싶어서 그래.”
내 말을 들은 마일린은 의원을 부른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나는 그녀를 진정시키고서야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깔끔하게 머리를 묶고는 다이닝룸으로 내려갔다.
다이닝룸 문이 열리고, 아버지와 레일리아, 그리고 오라버니들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그런 그들을 향해 싱긋, 하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다들 좋은 아침입니다.”
예전과 똑같은 상황.
틀림없다.
나는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빌미로, 새로운 삶을 얻게 된 것이다.
그것도, 최소 수년의 미래를 알고 있는 채로.
…그런데, 아까 내 눈앞에 둥둥 떠다니던 그 글자들은 진짜로 뭐지?
헛것이 보인 건가?
레일리아는 벌떡 일어나 나를 향해 인사를 했다.
“아, 안녕하세요….”
아버지는 그런 레일리아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다리도 성치 않은 애가 무슨 인사를 하겠다고….”
아버지의 말을 들은 레일리아는 민망하다는 듯 웃으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어찌 보면 제가 불청객인데 인사라도 제대로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나는 그런 그녀를 보고도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이야기는 들었어요. 아버지와 함께 온 여자아이가 있다고….”
그렇게 나는 그녀가 앉아 있는 곳을 한번 살피고는 아버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