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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가 나를 시한부로 착각한다 4권
지은이 : 오촘
펴낸이 : 김기철
펴낸곳 : (주)텐북
주소 :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디지털2로 143 가산어반워크 2차 1705호
전화 : 070-8823-8681
FAX : 02-6344-5574
출판등록 : 제 2021-000015호
전자우편 : tenbook@tenbook.co.kr
홈페이지 : www.tenbook.co.kr
ⓒ 오촘, 2025
※ ISBN : 979-11-7313-924-6
※ 가격 : 3,900원
※ 발행일 : 2025년 04월 14일
※ 저작권자의 승인 없는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1>
아델과 가온, 케드릭은 이리나와 리안드로가 대화를 끝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능구렁이가 대체 무슨 일로 온 거지?”
“첫 번째 종에 대해 잘 아십니까?”
“나쁜 녀석은 아니야. 다만 좀 맹목적일 뿐이지. 대신관의 말을 따르는 걸 보면 가끔 징그러울 정도지만. 그런데 뭔가 눈빛이 변한 것 같기도 하고.”
케드릭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이리나를 무슨 목적으로 보러 온 걸까요?”
“너무 걱정하지 마라. 꼬맹이에게 생각이 있겠지. 그것보다…… 이상한데? 분위기가 왜 이러지?”
문 너머의 소란에 휴게실 밖으로 나오자 가온의 말대로 분위기가 이상했다.
성기사와 병사들에게 항의하고 있는 귀족들이 보였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참관 수업을 제멋대로 중단시키다니!”
“아무리 신전이라 해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굴 수 없소!”
보아하니 신전에서 나온 이들이 참관 수업을 중단하고 아이들을 기숙사로 보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누군가를 찾는 듯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가온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들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소란이지?”
가온은 이상한 기류를 감지했다.
신전이 독단적인 행동을 하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긴 했다.
‘하지만 참관 수업엔 수많은 귀족들이 있는데…….’
안 그래도 성기사들의 행동에 귀족들이 실시간으로 큰 불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때, 성기사들과 눈이 마주쳤다. 가온은 의심스럽다는 듯 팔짱을 꼈다.
‘이 녀석들 태도 봐라?’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성기사들이 아델을 불경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성기사들 역시 기사는 기사. 기본적으로 아델을 두려워하면서도 흠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아델을 왜 저렇게 보지?’
마치 엄청난 악인을 보는 눈빛이었다.
성기사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가온 경, 오랜만입니다.”
“파니스?”
파니스는 신의 네 번째 종으로, 대신관의 가장 최측근에서 움직이는 성기사이기도 했다. 가온과는 예전부터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고.
파니스가 이곳에 왔다는 건 세이트리스가 이 일에 깊게 개입했단 뜻인데.
가온은 파니스를 향해 물었다.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그건 저희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뭐?”
“가온 경은 왜 이들과 함께 계신 겁니까?”
“그야 내 친구니까?”
“레더스 가문의 사람과 친구라니……. 이제 그 관계가 부끄러워지겠군요.”
“그게 무슨 소리지?”
“레더스 영지에 전염병이 돌고 있습니다.”
파니스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날 선 어조로 외쳤다.
“레더스 가문은 그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은폐했고요.”
“그건 완전 처음 듣는 얘기군.”
가온의 얼굴이 굳었다.
선동은 파니스가 가장 잘하는 술수 중 하나였다. 일부러 귀족들이 있는 곳에서 들으란 듯 말한 걸 테지.
가온은 서늘한 눈으로 인파를 바라보았다. 파니스의 말이 끝나자 귀족들은 당황한 눈빛으로 레더스 가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아델과 눈을 마주쳤다. 아델 역시 금시초문이라는 듯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다.
실제로 레더스 가문에서 들은 소식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제국 전역에서 이상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증세가 심각한 몇몇은 지금 아예 움직이지도 못해요.”
“신전은 지금까지 그 일을 은폐한 건가?”
“은폐가 아닙니다. 대신관님 역시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셨지만 그보단 악신 추종자를 걸러 내는 게 먼저라고 판단하셨습니다. 원인을 제거해야 하니까요.”
“뭐?”
파니스는 냉정한 눈으로 아델을 바라보았다.
“왜 모르는 척하십니까, 아델 경? 이번 전염병 사태…… 익숙하지 않습니까? 악신 추종자들이 자주 벌이는 짓이지요. 산 제물을 바친단 이유로요.”
아델의 얼굴이 굳었다.
“지금 신전은 레더스 가문을 악신 추종자로 의심한다는 건가?”
“실제로 레더스 가문의 몇몇 사람들이 악신 추종자로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그의 말에 대답한 건 가온이었다.
“말은 바로 해야지. 레더스 가문은 악신 추종자에게 당한 것뿐이야. 지금 이곳에 있는 귀족들 중 그들에게 당하지 않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 같은가?”
가온의 말에 귀족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실제로 악신 추종자에게 당해 신전의 심문을 받았던 귀족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파니스는 아델을 향해 요구했다.
“저희와 함께 영지로 가 주셔야겠습니다, 아델 경. 떳떳하시다면 뭐가 두렵겠습니까?”
아델은 허리춤에서 검을 움켜잡았다.
그의 행동에 성기사들은 긴장한 얼굴로 침을 삼켰다.
“아델 경, 순순히 따라오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곳에서 소란을 일으키셔 봤자 더 곤란해지실 뿐입니다.”
“그럼 내가 당신들을 따라간다면, 해결되는 일이 있나?”
“지금 신전의 결정에 반기를 드시는 겁니까?”
“내가 모시는 건 황제 폐하다. 신전이 아니지.”
파니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태가 사태인 만큼 고압적으로 나가긴 했지만, 상대는 아델 레더스였다.
그들이 상대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대상인 것이다. 그와 제대로 대적하려면 성기사들이 지금의 두 배는 와야 했다.
그러고 나서도 제압을 확신할 수 없는 자가 눈앞에 있는 아델 레더스였다.
‘작정하고 도주하려고 한다면, 막을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 해서든 아델을 포박해 레더스 영지로 인도해야만 했다.
꼭 아델을 생포하라는 세이트리스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이트리스의 명령은 단순했다.
“아델 레더스를 생포해 레더스 영지로 보내라. 그런 다음 전염병에 걸리게 해 같이 죽도록 만들어야 한다.”
“…….”
“레더스 가문은 악신 추종자와 내통하였다. 그리고 영지민들을 제물로 바치려 했지. 신께서 그 죗값을 치르게 하라고 하셨다.”
신이 직접 벌을 내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니 그 죄질이 몹시 악하다는 뜻이었다.
“일단 악신의 제물로 레더스 영지민들이 이용되는 걸 막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신관님, 지금 그곳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면 성기사를 파견하는 건 위험합니다.”
“그럴 걱정을 할 게 뭐가 있나? 악행을 저지른 이들이 해결해야 하는 거겠지. 아델 레더스에게 전염병에 걸린 영지민들을 직접 죽이도록 시키거라.”
아델 레더스를 데려와 전염병에 걸린 이들을 처리한다. 무엇보다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전염병에 걸린 이들을 모조리 죽이는 건, 전염병을 제압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하지.’
파니스는 주변을 살폈다.
‘이리나와 이즈키엘은 어딨지?’
그는 성기사들을 시켜 이리나와 이즈키엘의 생포를 먼저 지시했었다.
아델 레더스를 순순히 움직이게 만들려면 자식들을 이용하는 게 최선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
가온이 나타나 둘 사이를 중재했다.
“파니스, 일단 검을 집어넣지 그래?”
“가온 경, 대신관님의 명령입니다. 아델 경은 레더스 영지로 보내고 그의 자식들을 황성으로 연행해 오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은 신전 소속인 성기사이니 저희에게 협조하십시오.”
가온 역시 제 검에 손을 올렸다.
“잠시 물러서라고, 시간이 필요하니까.”
“지금 검에 손을 대신 걸 어떤 뜻으로 받아들이면 됩니까?”
“어떤 뜻이긴, 네 녀석이 우리 둘을 상대로 이길 수 있냐고 묻는 거지.”
“가온 경!”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잖아. 애들과 만나서 대화할 시간은 줘야 할 것 아니야. 갑자기 연행이라니, 걔네도 마음의 준비는 해야 할 텐데.”
파니스는 사나운 눈빛으로 가온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 역시 알고 있었다. 가온과 아델을 상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파니스는 이를 갈며 말했다.
“좋습니다, 시간을 드리죠. 하지만 길게는 못 드립니다.”
가온은 아델과 케드릭을 데리고 이리나가 있는 휴게실로 걸음을 옮겼다.
* * *
휴게실에 들어온 가온은 이리나의 몸을 로브로 감싸기 시작했다.
“가온 경?”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이리나는 당황했다. 가온은 아델을 향해 말했다.
“아델, 이즈키엘이랑 함께 도망쳐.”
“…….”
“대신관 녀석이 드디어 미친 것 같다.”
“대신관은 원래 미쳐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미쳤어.”
가온은 이리나의 머리 위에 털모자를 씌웠다.
“어차피 칼리오스 영감은 순순히 당하지 않을 거야. 네가 카니아 영감의 손녀란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게 다행이네. 카니아 공작가로 일단 도망쳐라.”
이리나는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아델은 가서 이즈키엘을 데려올 거야. 너는 케드릭이랑 함께 도주해. 네 실력 정도라면 충분히 아카데미를 빠져나갈 수 있겠지.”
그렇게 말하며 가온은 케드릭의 품에 언제 챙긴 건지 모를 짐을 가득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