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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영주님은 어장 치며 힐링합니다 8권
지은이 : 김호정
펴낸이 : 김기철
펴낸곳 : (주)텐북
주소 :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디지털2로 143 가산어반워크 2차 1705호
전화 : 070-8823-8681
FAX : 02-6344-5574
출판등록 : 제 2021-000015호
전자우편 : tenbook@tenbook.co.kr
홈페이지 : www.tenbook.co.kr
ⓒ김호정, 2025
※ ISBN : 979-11-7408-466-8
※ 가격 : 3,200원
※ 발행일 : 2025년 8월 22일
※ 저작권자의 승인 없는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8권
<백작은 자신을 찢어발길 기세로 날아든 엑소세투스의 발톱을 종이 한 장 차이로 간신히 피했다.>
<하지만 놈의 공격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날개 끝의 발톱과 송곳니, 그리고 꼬리까지 동원해 엑소세투스는 백작을 맹렬히 공격했다.>
<엑소세투스와의 협력을 생각하고 있던 백작은 당황했지만, 곧 냉정해졌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허리춤의 레베나 글라보를 꺼내 들었다.>
<백작이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자, 엑소세투스의 공격은 더욱 맹렬해졌다. 당황해 한참 동안 상황을 지켜보던 와이번 무리의 대장, 카락시스가 백작이 차츰 싸움에서 밀리자 끼어들었다.>
<두 와이번 무리 대장의 일대일 격투가 벌어졌다. 카락시스와 엑소세투스가 진지하게 싸우기 시작하자, 이는 곧 와이번 무리의 내전으로 번지고 말았다.>
<거사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벌어진 내전으로 인해, 둥지 내부는 쑥대밭이 되었다.>
<수백 마리 와이번이 뒤엉켜 싸우는 통에 온 사방에 피 냄새와 악취가 강한 바람에 섞여 몰아쳤다. 이제 와이번 무리에게 백작 일행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존재가 됐다.>
<자신을 향한 관심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백작은 주변을 빠르게 훑어보며 상황을 파악했다.>
당황스럽다.
나는 엑소세투스에게 늙은 와이번 무리의 체력을 적당히 빼 줄 것을 요구했지, 아예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혈투를 벌여 달라 부탁하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백작!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서둘러 다른 방법을 찾는 게 낫지 않겠어?”
“아니야. 비형랑. 내 예상보다는 훨씬 떠들썩하긴 한데.”
“그런데?”
“…상황이 나쁘진 않아 보여. 어쩌면 엑소가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래?! 어…. 내가 보기에는 그냥 난리법석 난장판에…. 저거 봐! 자기들 둥지까지 무너지고 있잖아! 으악! 추워!”
“아하.”
나는 두 와이번 무리가 엉켜 싸우다 무너지고 헐린 둥지 벽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엑소는 생각보다 머리가 돌아가는 와이번이 틀림없다.
와이번답게 거칠고, 독단적이며, 비협조적이지만.
상대방이 제안한 행동 지침이 본인이 판단하기에 부족하다고 느끼면, 과감히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는 결단력을 갖췄다.
모시기는 힘들지만 따라가면 배울 것이 있는, 스타트업의 리더 같은 느낌이다.
성격과는 별개로 말이 통한다면, 앞으로 함께 더 큰 그림을 그려 볼 수도…?
“엑소세투스가 물러난다! 카락시스!”
“알아! 보고 있어! 카하학! 쓸데없이 힘만 잔뜩 뺐군! 뭐, 젊은 놈들 혈기를 한 번씩 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래야 밑에 두고 밟고 있기 편하거든!”
젊은 와이번 무리의 공격이 끝나고, 녀석들이 일제히 물러나자, 카락시스가 거들먹거렸다.
여유 넘치는 말과 행동과는 달리, 놈의 몸에서는 마치 가습기처럼 수증기가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데다 날개는 피 칠갑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자! 백작! 왕국의 배신자! 으흐흐! 어서 가자고!”
놈이 나를 발톱으로 툭툭 밀며 재촉했다.
나는 카락시스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뒤, 곧바로 놈의 목 위에 올라탔다.
살다 보니 와이번 목에 올라타는 날도 오는구나.
살 떨리네.
“실로 오래간만의 출격이다! 와이번이여! 날개를 펼쳐라! 하늘을 지배하고 땅을 피로 적셨던 콜로논 군단의 영광을 되찾을 때다-!!”
카락시스가 다른 와이번을 향해 힘차게 외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닥쳐올 자신들의 운명을 전혀 모를 다른 와이번들이 힘차게 화답했다.
“출격 준비!”
카락시스의 외침과 함께 수백 마리 와이번이 일제히 둥지 가장 높은 곳까지 날아올랐다.
그리고….
“가자-!!”
둥지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와이번 무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출입구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돌격했다.
와이번 한두 마리 정도야 문제없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크기지만, 수백 마리 와이번이 한꺼번에 나갈 수는 없겠다 싶었는데.
기우였다.
“으윽…!”
어쩌다 잘못 건드린 말벌 집에서 말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것과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수백 마리 와이번 무리가 둥지 바깥으로 질서 정연하게 탈출했다.
순식간에 둥지에서 탈출한 와이번 무리는 속도를 생각해 본다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밀하게, 서로 간에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무리 지어 비행했다.
“그래서! 그 무기라는 것은 어디에 있지!?”
잠깐 하늘 위를 빙글빙글 돌던 와중, 카락시스가 물었다.
“그…! 아…. 으윽…!”
카티아 반도와 수도를 잇는 육로의 한가운데 있다….
라고 말하려 했지만, 입이 꽁꽁 얼어 버려 내 입 밖으로는 말다운 말이 한마디도 나오지 못했다.
“카하학! 약해 빠진 휴먼의 몸으로는 버티기 힘든가 보군! 자비를 베풀어 주랴? 으응?”
카락시스가 빈정거렸다.
협력 관계라고는 해도 그 천성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니까.
“그으윽…!! 필요 없어! 카티아 반도와 수도를 잇는 육로로 이동해! 특이한 모양의 마차 수백 대가 모여 있는 것을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다!”
“좋다! 이것들아! 나를 따르라!!”
카락시스가 순식간에 방향을 틀더니, 땅에 처박을 기세로 내리꽂기 시작했다.
상공에 한참 동안 떠 있던 탓에 얼어붙은 얼굴 가죽이 맞바람에 처맞고 통째로 벗겨질 것만 같았다!
“찾았다!”
카락시스가 외쳤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바람이 귀를 때리는 통에, 카락시스의 외침이 귓가에 소곤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간신히 눈을 떠 놈의 목덜미 아래를 바라보았다.
사전에 지시한 대로, 사람들은 활어 마차만 남겨 두고 확실히 대피를 마친 뒤였다.
수백 마리 와이번이 활어 마차를 향해 달려드는 모습을 정면으로 봤다가는, 아무리 담이 큰 사람이라도 겁에 질려 비명을 질러댔을 것이다.
거기다 이놈들이 그렇게 자신들을 보고 겁에 질린 사람들을 그냥 지나칠 것 같지도 않고.
활어 마차만 빼곡하게 남겨 둔 채 텅 비어 버린 육로를 바라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카학! 이게 대체 무슨 무기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카락시스가 활어 마차 위에 내려앉았다.
“살살 다뤄! 그 안에는 활어가….”
“활어?”
“…활력을 앗아가는 지독한 액체 무기가 담겨 있단 말이다! 수조 안의 액체에 몸이 닿았다가는, 날기는커녕 숨 쉴 활력도 전부 빼앗겨 무기력하게 죽어 갈 거다!”
“카학! 그렇군! 이것들아! 들었느냐! 취급에 주의해라!”
커다란 와이번이 조심조심 발톱으로 활어 마차를 움켜쥐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날아올라-!!”
카락시스가 외쳤다.
와이번의 거대한 발톱에 붙잡힌 활어 마차가 공중에 떠오르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누가 이 활어 마차를 만들었겠는가?
활어 마차는 아마도 자기가 하늘 위를 날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어찌 됐든 와이번의 발톱에 붙들린 채로도 끄떡 없이 버텨 주었다.
됐다.
걸어가거나 말을 타고 갈 때에도 몇 날 며칠은 가야 하는 길을 와이번의 목덜미 위에 올라타 순식간에 지나가는 이 기분.
짜릿하기에 그지없다.
이제 이대로 수도 광장까지 가기만 하면 된다.
날아가는 동안 아무 일도 생기지 않기를.
“낙오자 발생!”
아, 이런 망할.
급히 뒤를 돌아보니, 땅바닥에 떨어져 처참히 부서진 활어 마차와 길 위에 잔뜩 어질러진 해수와 물고기, 그리고 그 위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파닥거리는 와이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카락시스! 카락시스! 살려 줘! 액체가 몸에 닿았어! 엄청나게 짜고 냄새나! 머리가 핑핑 돌아! 이대로 죽기 싫어-!!”
와이번 한 마리가 애처롭게 외치며 길바닥을 굴렀다.
어쩐다.
길바닥에 떨어진 와이번은 공황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 활력이 빠지거나 죽어 가는 것처럼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와이번 무리가 수조 안의 내용물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하면 일이 엄청나게 꼬여 버릴 텐데.
카락시스는 길바닥을 구르는 와이번을 잠깐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카하하하하학-!!”
웃었다.
활어 마차가 놈의 발톱에 붙들린 채로 시계추처럼 격하게 흔들렸다.
“멍청한 놈! 잘 날지도 못하는 와이번을 내가 대체 언제까지 챙겨 줘야 해!”
놈이 다시 앞을 바라보더니, 망설임 없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버리고 간다!”
“안 돼! 카락시스! 도와줘! 여기 이렇게 남겨지기 싫어! 하늘 위에 띄워 주기만 하면 돼! 제발! 안 돼-!!”
길바닥에 버려진 와이번이 애처롭게 울부짖었지만, 카락시스와 무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질주하기 시작했다.
딱하긴 하지만, 도와줄 수도 없는 노릇.
자기 온몸에 묻은 게 독극물이 아니라 바닷물이라는 걸 알아채면 곧 정신을 차리고 회복하겠지만, 스스로 날아오르기는 힘들겠지.
알아차리는 게 좀 늦어지길 바랄 뿐이다.
“보인다! 휴먼 왕국의 수도!”
그렇게 다시 한참을 날아간 끝에, 모두의 눈에 휴먼 왕국의 수도를 감싸는 거대한 성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좋아. 무사히 도착했어.
이제 성벽을 넘어, 광장에 도착하기만 하면 된다.
무사히 광장 한가운데 우리의 활어 마차를 내려놓기만 하면 나의 승리다.
와이번 둥지로 향하기 전,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크게 두 가지 지시를 해 두었다.
하나. 활어 마차를 가지런히 정렬한 뒤 서둘러 카티아 반도로 돌아가 몸을 숨길 것.
둘. 반도로 돌아간 이들 중 일부는 카티아 교회로 이동해, 오레오 목사님의 도움을 받아 전서구를 이용해 후추와 생강 상인회와 피라루쿠 결사단에 이 내용을 전할 것.
셋. 전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광장을 최대한 비우고, 하늘 위에 상상하지 못한 존재가 갑자기 나타나 광장에 내려앉아도 절대 놀라지 말고 그것들이 가져온 활어 마차를 무사히 전달받을 것. 그리고….
광장에 베로니카 렘과 그녀의 궁수 부대를 집결시킬 것.
지시가 무사히 전달됐을까?
렘과 그녀의 궁수 부대가 와이번 무리를 상대할 준비를 마쳐 뒀을까?
만약 궁수 부대가 제때 준비를 마치지 못했더라도, 뜻밖의 ‘보험’이 준비된 덕분에 한시름 덜긴 했지만.
“뭐야! 지키는 놈들이 아무도 없는데?! 이봐! 네가 준비한 거냐?”
카락시스가 나를 힐끔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내가 계획한 대로야! 문제없어! 이대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