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가에서 눈을 뜬 소드마스터 03권
암흑가에서 눈을 뜬 소드마스터 03권
암흑가에서 눈을 뜬 소드마스터
03
동경
암흑가에서 눈을 뜬 소드마스터 03권
차례
Chapter 01.
Chapter 02.
Chapter 03.
Chapter 04.
Chapter 05.
암흑가에서 눈을 뜬 소드마스터 03권
Chapter 01.
어두컴컴한 실내.
랄프가 눈을 떴을 때 주위는 어스름한 빛뿐이었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자, 화려한 타일과 대리석을 깎아 붙인 천장이 보였다.
랄프는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살아온 삶에 이런 천장은 없었다.
문득 마지막 기억이 머릿속을 스친다.
새카맣게 밀려오던 건달들.
그들을 막기 위해 정신없이 손도끼를 휘둘렀지만 역부족이었다.
도망치라는 벤젠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고, 뒤통수로 느껴지는 강한 충격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죽은 게 맞았다.
저승에 와서도 느껴지는 통증이라니. 모르긴 몰라도 제대로 맞은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으…….”
어디선가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깜빡거린 랄프가 옆을 쳐다보았다. 소리가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제야 자신이 누워있는 자리가 침대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건너, 똑같이 생긴 침대에 누운 사내가 보였다.
“……유타?”
그랬다.
시신처럼 고이 누워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사람은 유타였다.
“너도 죽었구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제대로 꽃피우지도 못한 인생.
행복하게 죽을 거란 기대는 없었지만, 이렇게 비참하게 끝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아끼는 친구까지 함께 죽었다는 사실이 랄프를 복받치게 했다.
“끄으…….”
“괜찮아, 유타. 그거 진짜 아픈 거 아니야.”
“으…….”
“그렇게 아파? 이상하네. 죽었는데 왜 아프지. 내 머리는 또 왜 이렇게 무겁고.”
“제발…….”
“응?”
“좀.”
“뭐라고, 유타? 잘 안 들려.”
“……입 좀 다무십시오.”
그 말에 랄프는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침대 사이에 놓인 가구 위, 옅은 빛을 내뿜는 등불과 시계, 그리고 날짜 지난 신문이 보였다.
랄프는 양손으로 제 몸을 더듬거렸다. 그랬다. 두 사람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유타.”
감격한 랄프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살아있는 거 맞지?”
“예. 아쉽게도요.”
“근데, 여긴 어디야?”
“모릅니다.”
그즈음, 방문 너머에서 누군가 대화를 나눴다.
“돈을 좀 더 주십시오.”
“이보세요, 치료사님. 약값만 지금 얼마나 들어갔는지 아십니까?”
“진통제를 써야 할 거 아닙니까. 저 뚱뚱한 환자는 엄살이 엄청 심하단 말입니다. 아마 먹는 것도 두 배로 먹을 겁니다.”
“……일단 치료하시고 나중에 청구하세요.”
“그렇게 나오시겠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허! 이 사람이 진짜…….”
그 뒤로도 실랑이하는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저 목소리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아?”
랄프의 중얼거림도 잠시.
타협점을 찾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더러운 세상. 있는 것들이 더 하다니까. 누가 보면 내가 사기 치는…….”
구시렁거리며 들어온 사람은 다사라 의원의 치료사, 자란 다살리우스였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그가 랄프를 보고는 멈칫했다.
“오, 정신이 드십니까.”
“네. 그런데 선생님이 여긴 어쩐 일로…….”
“치료하러 왔죠.”
“근데, 저 밥 많이 안 먹는데요.”
자란은 서둘러 입을 가린 채 헛기침했다.
“흠흠,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아무튼 이런 경우에는 출장료까지 청구되지만, 두 분은 걱정 말고 회복에만 전념하세요.”
“대체 여긴 어디예요?”
“아, 그렇지. 여긴 레이카르트 대공 가문의 저택입니다.”
“……예?”
“일단 좀 누우세요. 진통제를 놔 드릴 테니까.”
“아, 네.”
랄프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다시 누웠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저기, 치료사님.”
“말씀하세요.”
자란이 유타의 상처에 약물을 부으며 대답했다.
“혹시 바토니는 못 봤어요?”
“아, 그 잘생긴 분이요.”
“맞아요, 그 사람.”
“글쎄요. 두 분이 살아 계신단 걸 확인하자마자 어디론가 급히 가시던데요.”
“어딜요?”
자란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랑 대화 중이던 앞뒤가 꽉꽉 막힌 늙은 집사에게 물어보세요. 뭔가 알지도 모르니.”
“혹시 치료비가 많이 나와요?”
“걱정하지 마세요. 치료비는 레이카르트 가문에서 부담한다고 했으니까요. 대공이면 얼마나 돈이 많겠습니까? 두 분 같은 환자를 몇 년 동안 치료해도 아무런 타격이 없을 겁니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지.”
“……예?”
“아닙니다.”
“기분이 되게 좋아 보이는데.”
자란이 두 눈을 반짝거리며 대답했다.
“오늘도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것이죠. 저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제 의술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는 것일 테고.”
“거기다 돈까지 많이 벌면 더 좋겠네요.”
“그럼요! 역시 똑똑하셔.”
랄프와 자란은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대화가 길어지자, 꾹꾹 참고 있던 유타가 날카롭게 반응했다.
“입으로 치료할 거 아니면 조용히 좀 하십시오. 아니면 둘 다 나가든지.”
“예민해지셨군요. 잠시만요. 자, 코끝에 수면제를 발랐으니 곧 잠이 들 겁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제발, 그 입 좀…….”
유타는 말끝을 흐리다가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그 모습을 본 랄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효과가 엄청 빠른데요?”
“그럼요. 물론 간혹 예외도 있습니다.”
“예외?”
“네. 사람에 따라서는 두 배를 써야 한다는 걸 얼마 전에 처음 알았거든요.”
“오, 그렇구나.”
“아무튼 감사합니다.”
“뭐가요?”
“그런 게 있습니다. 계속 누워 계시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저를 찾진 마세요. 잠시 의원에 다녀올 거니까.”
“아니, 환자를 두고요?”
“약이 치료하지, 제가 치료합니까.”
“아…….”
랄프는 입을 모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하는 말은 왠지 모르게 다 맞는 말처럼 들렸다.
짐을 꾸린 자란이 뜬 눈으로 누워있는 랄프에게 다가왔다.
잠시 안색을 살피는 척하더니 랄프의 코끝에 무언가를 발랐다.
“엇, 저는 충분히 잤…….”
“역시 두 배를 써야 잠드는군.”
자란은 방을 나서자마자 집사를 찾아갔다.
“두 분 다 상태가 안 좋습니다. 당장 회복하긴 힘들겠고, 잠을 자둬야 해서 수면제를 썼습니다. 효과가 확실한 만큼 가격도 비싸니 알고 계십시오. 그럼,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그러고는 짐가방을 든 채 유유히 저택을 빠져나갔다.
* * *
“그래서?”
치안청 사무실.
다리를 꼰 일급 수사관 로페즈가 바토니에게 물었다.
“고소장을 접수할 거야.”
“이미 모두 자백받았다. 고소장은 필요 없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용의자로 잡혀 왔었던 바토니가, 이제는 피해자를 대신해 앉아있었다.
“수사관으로서 이상하단 생각은 안 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