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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장


암운의 살수들이 나를 배려한 건지는 몰라도 원훈이가 합류한 뒤로는 숙소를 따로 잡았다.
그렇게 집결지, 사실상 3인 객실에 아카데미 학생들이 모였다.
“심사는 어떻게 됐는가.”
지오의 얼굴에 큰 멍이 들어 있었다.
시리노아 카르텔의 처형엔 지오의 도움이 없다고 보긴 힘들었다.
심사를 빨리 끝내서 마탄을 빨리 보내 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나는 불편한 옷을 하나하나 벗으면서 말했다.
“붙었어. 너는?”
“우문이로군.”
“크흠!”
뒤늦게 원훈이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지오에게 모습을 보였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그림인데.’
갑자기 호기심이 일었다. 지오와 원훈이는 어떤 사이일지 궁금했다.
“사자가 돌아온 것인가.”
후…….
충분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음에도 이 오글거림에 머리를 흔든다.
원훈이는 내 예상과는 다른 반응을 나에게 선사했다.
“아직 덜 떨어졌다.”
그러곤 자연스럽게 세르게이가 지내던 침대 끝에 앉았다.
나는 덜 떨어졌다는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사람이 덜 떨어졌다는 건지, 혹시나 내가 우려하는 말을 하는 것인지 헷갈렸으니까.
“떨어졌다는 게 무슨 뜻이야?”
“아, 진짜 답답하네, 너 얘랑 어떻게 지내는 거냐. 당연히 절벽이지.”
그 누가 나를 이렇게 막대할 수 있을까. 그러나 애초에 나는 이들을 존중하고 동등한 관계를 바란다.
나에게 선입견을 지니고 불편해하기보단 이게 더 나았다.
‘근데 지금 절벽이라고 한 건가?’
절벽이라면…… 뭐 나도 들어본 얘기가 있다.
사자는 새끼를 절벽에 떨어트린다고 말이다.
‘받아 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원훈이를 바라봤다.
어쨌든 절벽에서 떨어져 오늘로써 사자임을 증명했음에도 원훈이는 더 깊은 곳으로 떨어지길 바란다.
이는 원훈이가 자신이 사주했던 내용을 직접 알리겠음을 의미한다.
나는 평소와는 다른 어조로 말했다.
“괜찮겠냐?”
어쩌면 그저 시리노아 카르텔에 사주해서 타인의 신상을 캤을 뿐인 일이다.
그러나 내가 시리노아 카르텔과 전쟁하고자 마음먹은 순간부터 구정물을 통해 수많은 정보를 얻었다.
이 부분은 지오도 모르게 진행될 일이다.
‘원훈아, 이 멍청한 새끼야. 돈이 불법 약물이나 암살에 연관되었을 수도 있다.’
나 역시 인정하기 싫지만 연관됐을 거다. 그렇다면 그 무게를 지금의 원훈이가 책임질 수 있을까.
“그래야지. 태어나길 사자로 태어났는데.”
말은 저렇게나 자신 있게 한다.
‘고민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침대에 앉은 원훈이의 다리는 떨리고 있었고 손의 떨림을 억누르고자 두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이는 그에게도 은원이 달라붙고 살업이 달라붙었음을 의미한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어쩌면 이번엔 다른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 일단 이건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신화 속 위대한 영웅들은 한 번쯤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을 받으니까.
원훈이는 이 분위기를 바꾸겠단 것처럼 화두를 돌렸다.
“근데 산 자의 날에는 뭐하냐? 뭐 들으려고 들었던 건 아닌데 마탄님이랑 네가 대화하는 걸 들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원훈이를 바라봤다.
비단 겉으로 드러난 내 모습은 고작 갸웃거림 정도지만 내면에 갇힌 감정은 대번에 놀란 상황.
‘얘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건 전음이었으니까.
내 놀란 기색을 읽은 원훈이는 당연하다는 것처럼 말했다.
“뭐야. 너 못 들어?”
나는 전음을 날리는 행위 자체는 간파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모르고 그게 가능하단 것도 지금 처음 알았다.
지오는 언제나 내 교양 수업을 주관했다.
“흠 확실히…… 마력 감지력이 타고난 편이긴 했지, 애초에 그러지 않다면 백택검법에 빠른 성취도 보이지 못했을 테니 말이야.”
역시 이 정도는 되어야 후계자가 될 수 있다는 건가.
어쨌든 산 자의 날에 대해서는 난 숨길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원훈이에게 자초지종 설명했다.
‘이게 대화의 자세인가……?’
원훈이의 어투는 거칠긴 하나 이 놀라울 정도의 경청의 자세.
이미 나였으면 할말을 못 참고 수십 번이나 끼어들었거나 혼자만의 생각에 갇혔을 터.
그러나 원훈이는 내 얘기가 완전히 끝나길 기다린 후에야 입을 열었다.
하여튼 배운 놈이었다.
“잠깐만, 잠깐만 암영단장이라면 7인의 권좌인가 하는 그 사람이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근히 재수가 없네.’
이 정도 정보력도 갖추고 있을 줄이야.
“그리고 그 살수들을 네가 거둬들여서 만든 게 암운이었다고?”
원훈이는 새삼 소름이 돋았는지 양팔을 문질렀다.
‘하긴.’
꿈에도 몰랐겠지. 구정물의 미모에 빠졌던 놈이니 더 충격적일 거다.
“근데 그 살수들의 상관들이 병신이 아니라면 다 자초지종 알 거 아니야. 애초에 암영단장도 다 아는데도 계속 살수를 보내는 것일 테고.”
뭐지, 이 분석력.
당장 암운에 꼭 필요한 인재란 생각이 들었으나 이는 생각으로만 그쳤다.
‘진짜 다르긴 하구나.’
역시나 지오와 마찬가지로 원훈이도 나에겐 영웅계의 선배들이자 선생님이나 마찬가지다.
“미친 놈들이 따로 없네. 아마 다 알고 있을 거야. 산 자의 날에 상관만 오는 게 아닐 수도 있어 암영단장이 올 수도 있다고. 원우야 이 못 배운 새끼야. 너 진짜 괜찮은 거냐. 아니면 몰라서 그런 거냐.”
뭘 다 아는 얘기를 이렇게 호들갑을 부릴까.
‘아닌가?’
확실히 지오의 표정도 굉장히 무거워져 있었다.
“잠깐만…… 그럼, 애초에 산 자의 날에는 너희들이 암운으로 활동할 필요도 없잖아. 내 생각엔 차라리 아카데미 학생으로 나서는 게 좋겠어. 그리고 그 지랄 맞은 화염은 쓰지 마. 지오, 너도 마력은 최소화하고 너희 둘은 너무 특정하기 쉬울 거야.”
나는 원훈이의 남다른 지모에 놀라는 한편 하고 싶은 말이 생겨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애가 카르텔이랑 붙어먹을 생각을 했다는 게 이해가 안 가네.”
“켁! 켁!”
지오는 애초에 인텔리 근육이다. 고로 나보다 더한 실망감을 가졌을 터였다.
“이 부분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도 되었다. 사내의 걸음은 시작되었으니 말이지.”
하긴 사람이 급하면 물불도 못 가리고 지능이 떨어진단 말도 있으니까.
어쨌든 나는 계획을 수정해야 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선배의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오와 오늘 함께 갔어도 상관없었겠단 생각도 들었다.
본래 나는 나를 제외한 나머지를 암운으로서 산 자의 날에 불러들이려고 했으니까.
‘말은 안 하는 게 나을 거 같다.’
어쩌면 지오도 이미 눈치챘을 수 있으나 구태여 말하진 않았다.
“그러면 그 살수분들…….”
“말은 똑바로 해야지, 자경단이야.”
“그래 자경단분들도 이번엔 그냥 얼굴을 드러내셔야겠는데?”
나는 다 떠나서 앞으로 세세한 계획은 구정물과 원훈이가 세우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일주일이니까.’
애초에 나는 이런 계획을 세우는 것에 맞지 않았다.
말 그대로 못 배운 놈이 맞기도 하고 내 유연한 사고는 오늘처럼 계획에서 늘 벗어나기 때문이다.
‘아, 무겁네.’
내 휘하 세력이 생겼단 게 좋으면서도 이런 쪽엔 좋지 않았다.
내 작은 행동이 아군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니까.
어쩌면 암운의 살수들이었기 때문에 임기응변이 가능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원훈이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처럼 대뜸 침대에 누웠다.
“그럼 나도 껴줘라. 어차피 일주일이야 별 차이도 없으니까.”
나는 조금은 걱정하는 시선으로 원훈이를 바라봤다.
언제까지고 일이 잘 풀리기만 하진 않을 테니까.
그러나 원훈이는 흘깃 내 표정을 보더니 몸을 돌리면서 말했다.
“뭘 그런 표정으로 보냐. 네가 네 입으로 말했잖아 우리 친구라고. 시골 촌놈은 보나마나 길 잃을 게 뻔하니까 같이 한국에 돌아가야 내 마음이 풀릴 거 같다. 어쨌든 나 잔다.”
돌아본 지오는 무얼 하고 있었냐. 달을 보며 어깨를 흔들고 있을 뿐이었다.
말싸움에 진 거 같아서 내심 짜증나면서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 * *

이틀이 지나고 귀찮은 일이기도 하나 빠질 수 없는 자리가 생겨서 나는 참석해야 했다.
그 자리는 바로 구정물과 원훈이가 계획을 세우는 자리였다.
누가 옆에서 죽어라 미인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해도 결국엔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