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 11권
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 11권
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
11
강성현
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 11권
차례
Chapter 01. 검은 나비 - 2
Chapter 02. 꼬리의 꼬리
Chapter 03. 사냥한다
Chapter 04. 카멜이 죽었다?
Chapter 05. 시공의 벤투
Chapter 06. 뎀토어의 별
Chapter 07. 상처만 남은 전투
Chapter 08. 세계수의 그림자
Chapter 09. 그건 진짜가 된다
Chapter 10. 변화의 중심지
Chapter 11. 계시
Chapter 12. 신명 수집가
Chapter 13. 세계수 아래서
Chapter 14. 세계수 위에서
Chapter 15. 불씨를 꺼라
Chapter 16. 부탁하네
Chapter 17. 세계수 연합
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 11권
Chapter 01. 검은 나비 - 2
엘튼의 임무는 사무엘 바버와 함께 헬 그라임을 동행하며 새로운 지역에 대한 지식을 넓히는 것이었다.
일명 ‘헬 그라임의 척후병’으로 임명된 것인데, 아서의 말처럼 엘튼은 사무엘을 통해 헬 그라임에 대해 많은 것을 듣고 배울 수 있었다.
‘공간 포탈’이란 능력 때문인지, 사무엘은 대륙 지리에 모르는 게 없었고, 헬 그라임 외에 다른 지역에도 무척이나 밝았다.
그중 엘튼이 기억하는 가장 인상적인 정보는 바로 헬 그라임의 지리적 위치였다.
[그 어떤 지역이든 헬 그라임을 통해야 한다.]
헬 그라임은 대륙 중앙에 자리했고, 사무엘은 그 지역 안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뎀토어에 둥지를 틀었다.
[이제부터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거야.]
물론, 뎀토어에 도착했을 땐 엘튼을 호위로 데려올 만큼 더는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사무엘은 자신을 노리는 마법사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뎀토어 내 블랙 마켓 지부를 들쑤시며 다녔다.
꼬리에 꼬리를 잡으며 움직이다 보니, 정체의 범위를 좁힐 수 있었고 뎀토어의 핵심 인물 중 사무엘을 원하는 마법사가 있다는 정보까지 다다랐을 때, 일이 터졌다.
[다 죽었어. 빌어먹을.]
블랙 마켓 지부가 단 하룻밤에 불타서 사라졌다. 정보원들도 몰살 당했다.
그리고,
[조심해.]
의문의 무리가 사무엘을 노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엘튼도 사무엘도 처음 보는 놈들이었다.
푹 눌러쓴 검은 로브 무리.
검은 가죽 장갑엔 룬어가 새겨져 있었고, 한 손에는 긴 창을 움켜쥐고 있었다.
모두 통일된 복장을 하고 있었고. 가슴에 달린 나비 문양의 엠블럼이 눈에 띄었다.
퍼퍼퍼퍼펑―
[……!]
게다가 전원이 마법도 쓸 줄 알았다.
엘튼은 이들과 마주한 순간, 주저 없이 후퇴를 선택했다.
암살자의 감이 발동했다.
부딪치면 죽는다.
사무엘은 이동에 특화된 인물이었고, 엘튼도 유령화를 쓴 상태에선 회피에 능했다.
도망치는 데 성공했고, 추격전이 벌어졌다.
이때부터 뎀토어 안에서 쫓고 쫓기는 술래잡기가 시작됐다.
거대한 도시 내에서 벌어진 추격전은 은밀히 이뤄졌음에도 사건이 크게 터졌는데, 마법에 건물들이 부서지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일이 벌어졌지만, 뎀토어 내부에선 반응이 없었다.
아니, 정확하겐 반응을 할 전력이 없다는 게 정확했다.
뎀토어의 별들을 위시한 전 병력이 마녀사냥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게 됐으니 말이다.
그 소식이 들리고부터 자신들을 추적하던 놈들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사무엘?]
그건 사무엘도 마찬가지.
‘은빛 동전이 자신을 부른다.’라는 뜻 모를 말을 남긴 것도 잠시, 다음 날 아침 한 장의 쪽지만 남겨놓고 사무엘은 사라져 버렸다.
* * *
펜리는 그동안 엘튼에게 벌어진 일을 유심히 듣고는 그가 건넨 쪽지를 읽어봤다.
[목숨 빚을 갚고 오겠다.]
사무엘이 남겼다는 쪽지엔 단 한 줄의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펜리는 쪽지 내용을 살피더니, 엘튼에게 물었다.
“사무엘에게 빚을 지운 인물이 누군지는 알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은빛 동전으로 신호를 주고받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은빛 동전이라…….”
애초에 추측이 불가능한 일이라, 펜리는 사무엘에 대한 건 접어두고 다른 것에 집중했다.
“넌 이곳까지 어쩐 일이야? 뎀토어에 머무는 거 아니었어?”
“사무엘도 사라지고, 오르도르 숲도 위험하다는 소식이 들려서 숲으로 이동했는데…….”
“숲? 마녀들과 만났어?”
마녀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다급히 물었지만, 엘튼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현재로선 마을로 진입이 불가능합니다. 마법사들이 드넓게 진형을 짜고 전방위로 포위 중이거든요.”
“네 능력으로도 뚫지 못했다고?”
“살벌한 놈이 워낙 많아서…….”
하긴, 뎀토어의 별들이 자리 잡은 포위망을 뚫는다는 건 펜리 자신도 힘들 것 같았다.
“분위기는 어땠어? 위험한 것 같아?”
“대치 중입니다. 큰 전투는 벌어진 것 같지 않은데, 이따금 비명이 들렸습니다.”
“비명? 설마…….”
“마녀들의 비명이 아닙니다. 마법사들 같았는데.”
“그럼 뎀토어가 밀리고 있다는 거잖아. 아서는 마녀들이 위험할 거라 했는데.”
“먼 거리에서 지켜본 거라 정확한 상황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더 시간을 두고 마녀와 마법사의 대치 상황을 지켜보려고 했는데, 근처에서 자신을 공격했던 검은 로브 무리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면서 이곳까지 흘러들어왔다고 했다.
“혹여나 사무엘이 위험해질까 봐. 쫓아왔는데, 여기서 펜리님을 만나게 될지 몰랐습니다.”
“놈들이 유령의 숲을 자유로이 다녔다고? 마법사들이?”
“특별한 마법사들입니다. 뎀토어에선 이레귤러라 불린 것 같더군요.”
“이레귤러?”
이레귤러.
아직 뎀토어 내엔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무엘은 그들의 전투를 지켜보면서 ‘이레귤러’라 정의했다.
뎀토어 내에서 마법사의 약점을 보완한 새로운 연구 전력 말이다.
“사무엘도 이름 정도만 알고 있는 비밀 집단입니다. 아직 정확한 정체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만, 확실한 건…….”
엘튼은 자신의 왼쪽 팔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붕대로 치료한 상처인데, 놈들의 창에 당한 것이었다.
“단체 근접 전투에 무척 능하다는 겁니다. 마법 아티팩트를 함께 사용하는데, 솔직히 아직 전 놈들을 상대할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 정도야?”
“부딪쳐 보시면 제 말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흠…….”
펜리는 생각을 빠르게 정리했다. 엘튼에게 상황을 들어보니 숲 안에서 흘러가는 상황들이 꽤나 복잡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녀의 목적은 카멜을 추적하는 일이다.
목적만 봤을 때 지금 엘튼과 합류한 건은 무척 다행이었다.
‘유령의 숲에서 유령만큼 뛰어난 안내자를 찾는 건 힘드니까.’
운이 좋았다.
펜리는 반리를 소환하곤 반리와 대화를 나눴다.
잠시 후, 반리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더니, 바닥으로 스며들 듯 사라졌다.
펜리는 반리가 사라진 허전함을 느끼며 엘튼을 돌아봤다.
“놈들과 부딪쳐 보면 알겠지.”
“네?”
“추적 중이잖아. 여기서 포기할 거야?”
“그럼 펜리님은…….”
“아니, 난 놈들에게 관심 없어 하지만 놈들이 움직이는 방향에 내 목표도 있는 것 같아서 말이지. 일단 움직이자고.”
“강한 놈들입니다. 저희 둘로는…….”
“나 펜리 체이서야 나 못 믿어?”
“사무엘도 똑같이 말했다가 죽을 뻔했죠.”
“…….”
펜리는 곰방대를 깊게 빨고는 숲 반대편을 바라보며 후― 내뱉었다.
베네타가 있는 방향이었다.
반리를 방금 보냈으니 녀석들이 곧 움직일 것이다.
“괜찮아. 네 녀석의 대장을 불렀으니까.”
아서 클레이튼.
신호가 오면 움직인다고 했지만, 녀석이면 이미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은 짓을 하곤 하니, 뒤이어 도착할 지원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원래 펜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카멜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지만, 당장 숙제 하나가 더 늘었다.
‘카멜과 이레귤러의 상관관계.’
카멜의 흔적과 이레귤러의 흔적이 겹친다.
둘 사이는 아군일까? 적군일까?
아니면 아무 관계도 아닌 것일까.
둘 세력의 관계에 따라 자신들의 대처가 달라질 것이라 펜리는 예상했다.
“자세한 건 움직이면서 얘기해줄게. 출발해.”
펜리의 말에 엘튼은 고개를 끄덕이곤 이레귤러들의 흔적을 살폈다.
숲으로 들어오니,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몸속에 저장된 마력이 대지로 흡수되듯 천천히 줄어들었고, 그나마 남아 있던 반리와의 교감력도 사라졌다.
현재 펜리가 가진 카드는 다크 엘프 특유의 민첩함 뿐이었다.
팔다리 묶인 느낌이지만, 눈앞에 엘튼이 있으니 이전보단 안전했다.
펜리는 엘튼의 뒤를 따르며 토바른의 상황을 빠르게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