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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한글로 살아남기 2권
유우리 퓨전 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엘프 악귀 대그론
#생존학
#역할 던전
#변수
#레드 드래곤?
#범람의 재앙 (1)
1
#엘프 악귀 데그론
한층 크기를 키운 엘프악귀는 테른의 예상보다도 훨씬 포악한 분위기였다.
그저 놈을 마주했다는 것만으로도 숨을 턱 막히게 하는 무언가가 느껴지는 것이다.
테른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오크 군대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이쪽도 지랄 맞기는 매한가지로군.’
상대적으로 쉬워 보이는 현재라고는 해도, 이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상대는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였고, 보스 몬스터인 만큼 무지하게 강할 테니까.
그리고 실제로도 강했다.
‘씨알도 안 박히는데.’
타이밍을 재고 빠르게 베어 낸 일검은 엘프악귀의 어깻죽지를 노렸지만, 아무런 대미지를 주질 못했다.
틈을 노리고 마법학부 학생들이 일제히 집중포화를 날렸는데도 결과는 같았다.
놈은 멀쩡했고, 오히려 더 쌩쌩해졌다.
엘프악귀는 생각보다 조금, 아니 아주 많이 강한 몬스터였다.
“데, 데그론 님… 어찌하여!”
더욱이 놈으로부터 솟구친 나무줄기가 마을의 엘프들을 꿰뚫을 때마다 덩치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한계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직도 고집을 부릴 셈이냐?”
테른의 말에 사색이 된 모레스는 난장판이 된 마을의 정경을 둘러보았다.
입술에 피가 나도록 강하게 짓씹은 모레스는 덜덜 떨리는 손을 애써 감췄다.
“젠장… 젠자아앙!”
그리고 이쯤 되니 다른 엘프들도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젠장, 막아! 데그론 님부터 막으라고!”
“엘프들이여! 무기를 들어라!”
“데그론 님을 저지해야 한다! 모두 정신 바짝 차려라!”
결국 엘프들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무기를 꼬나 쥐어 데그론을 향해 겨눠야 했다.
그중 장로직을 가진 소수의 엘프들은 확실히 그 이름값에 어울리는 위용을 선보였다.
바닥에 스태프를 쾅 내리찍자, 성지를 지키던 반구형의 결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오던 언데드의 물결과 엘프악귀의 횡포가 잠시 사그라들었다.
일순 소강된 듯한 분위기.
틈을 노리고 또 한 번 달려든 테른은 엘프악귀의 몸통을 가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미지는 없었다.
“화력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해. 이대로 갔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 거야.”
“디에고! 제대로 좀 해 봐!”
“크윽, 이보다 뭘 더 잘하란 말이냐! 이게 내 최선이란 말이다!”
“확실해? 근데 왜 안 죽는데?”
“난들 알겠냐!”
몇 번이고 공격을 감행한 학생들도 생각보다 단단한 상대를 보며 당황하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된 놈이 몇 번을 때리고 또 때려도 대미지가 없단 말인가?
“이거 깨라고 낸 과제 맞냐?”
“…조진 거 같은데.”
온갖 마법을 다 부리고 날려도 족족 회복해 버리는 상대로 뭘 더 어찌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테른은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 공략법이 잘못됐나?’
너무 섣부르게 움직여, 깨워선 안 될 함정을 밟은 걸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답답한 상황과는 다르게 사실 테른의 선택은 가장 정답에 가까웠다.
학년 말의 과제였으니 그저 보스 몬스터의 수준도 그 정도로 나왔을 뿐.
부족한 건 그저 학생들의 실력이었다.
공격해도 대미지가 없는 이유는 바로 그 탓이었다.
비록 미완성인 상태로 튀어나왔다고 해도 워낙 시작점이 남다른 놈이었으니까.
이런 내막을 알 수 없는 테른이었기에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지만.
‘아니, 생각하자. 놈에게 대미지를 입힐 방법이 있을 거야. 화력이 부족하다면 그 화력을 올릴 방법을 찾으면…….’
“그거다!”
테른은 거두절미하고 전장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테른? 너 지금 어딜?”
당황한 클로네의 말에 테른이 답했다.
“조금만 버티고 있어 봐!”
“뭐? 야!”
무어라 소리치는 게 들렸지만 일단 무시했다.
그는 한달음에 무너진 건물을 뛰어넘고 스켈레톤들을 건너뛰었다.
빠르게 눈알을 굴리며 마을의 곳곳을 둘러보았다.
‘어디냐, 어디지?’
다행히 목적으로 삼은 건물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마을의 한쪽, 방치된 건물엔 쇠창살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두 눈을 반짝인 테른은 바로 그 안으로 들어섰다.
아마도 이 안에는 현재 그가 처한 상황을 타개해 줄 가장 유용한 카드가 숨어 있을 터였다.
‘아마도 지금 이 던전에서 엘프악귀에게 대미지를 입힐 수 있는 유일한 사람.’
테른은 쓰게 웃었다.
“에리온.”
감옥에 덩그러니 묶여 있던 에리온은 들려온 목소리에 초췌한 몰골로 고개를 들었다.
“꿈?”
“꿈 아니다.”
“…테른? 네가 어떻게 여기에?”
테른은 나지막이 되물었다.
“너야말로 그게 무슨 꼴이냐?”
테른은 에리온의 몰골을 내려다보며 쓰게 웃었다.
변경에서도 못 먹고 자란 녀석이었지만 지금은 아예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퀭한 안색도 심히 걱정스러울 정도.
‘전에 봤을 때보다 상태가 더 안 좋은 것 같은데?’
테른은 한숨과 함께 물었다.
“대체 어쩌다 여기 붙잡혀 있게 된 거야?”
“말도 마. 난 그냥 뒤뜰에서 검을 연습했을 뿐인데….”
“흠?”
자초지종을 들은 테른은 약간 어이가 없어졌다.
아무렴 그녀가 던전에 난입하게 된 경위는 생각보다 더 황당했던 것이다.
‘검술을 연습하다 우연히 여백을 벴고, 동시에 그 안에 있던 책마저 갈라 강제로 진입….’
그러다 안에서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도둑질을 하다 붙잡힌 셈이었다.
‘허, 정말….’
누가 하라고 해도 해내기 힘든 일을 연달아 해낸 걸 대단하다 해야 할지.
본의 아니게 던전에 난입해 죄수 꼴이 된 처지가 불쌍하다고 해야 할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나?’
그녀는 제국에서도 날고 기는 천재들만 입학한다는 아카데미에 떡하니 입학한 변경의 천재였다.
테른처럼 전생을 기억하는 특별한 과거도 없이, 그저 태어날 때부터 강하게 태어난 진짜 천재.
그녀가 벌이는 일 중 종잡을 수 있는 일이 흔치 않았기에 사실 익숙하기까지 했다.
‘그래. 얘가 어쩌다 여기에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어쨌든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해.’
그리고 그 사실을 에리온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테른을 올려다보며 나지막이 물었다.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되는데?”
* * *
저주받은 하이엘프, 엘프악귀 데그론의 횡포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난폭해졌다.
성지 주변의 건물 중 남아나는 건 없었고 어느덧 엘프의 시체는 산처럼 쌓였다.
피비린내가 진동을 해 대는 전장 속에서 고립된 마법학부 학생들이 겪는 건 곤욕 그 자체!
그나마 장로들이 죽을힘을 다해 결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이렇게라도 버티고 있었다.
…얼마 못 갈 것 같지만.
“진짜 저걸 어떻게 잡지?”
“가까이 가기만 해도 토할 것 같은데.”
“화살도 안 통해. 귀신같이 피하더라.”
“우욱,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이런 걸 대체 어떻게 풀라고?”
귀족 출신인 마법학부의 드레드는 혀를 차며 말했다.
“하여간 테른 그 새끼는 도망친 게 분명해.”
“응?”
“빤하지. 하찮은 천것들이 하는 일이 늘 그렇잖아?”
드레드는 평소에 테른에게 악감정이라도 있었는지 연신 욕지거리를 늘어놨다.
하여간 천민이라 그런지 역시 수준이 낮다느니, 그놈은 생긴 것부터 비열했다느니.
이번에도 결국 상황이 힘겨워지니 겁을 집어먹고 도망을 쳤다느니!
막혔던 둑이 열리기라도 한 듯 불만이 쏟아졌다.
토드 애나그램은 고개를 갸웃했다.
“테른이 그럴 것 같진 않은데….”
드레드는 큰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 확실해! 날 적부터 정해진 신분은 제아무리 가리려 해도 가려지질 않는 법이잖나?”
“으음?”
“천것들은 원래 똥오줌을 가리질 못하는 무지렁이다. 타고나길 천한 종자들이 어찌 명예를 알겠어. 그건 같은 귀족인 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흠, 확실히 귀족과 천것들은 다르긴 하지….”
옆에서 듣고 있던 클로네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넌 왜 설득당하고 있어? 대체 누구 편인데?”
“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