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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치료할 약사 허신 4권
구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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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치료할 약사 허신 4권
지은이/ 구호선
발행인/ 박성인
책임편집/ 편집부
펴낸 곳/ (주) 삼양씨앤씨 - 드림북스
주소/ 서울시 강북구 도봉로 180, 광희빌딩 4층
대표전화/ 02-980-2116
블로그/ blog.naver.com/dreambookss
신고번호/ 제2017-000030호 신고일자/ 2017년 12월 19일
등록번호/ 831-88-01041 등록일자/ 2017년 12월 20일
ISBN 979-11-6959-091-4 (05810)
(주) 삼양씨앤씨 - 드림북스의 서면 허락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이용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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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거래 (2)
마약류 관리자
냉장고를 소중히
마지막 날
학점 맞추기
약사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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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 (2)
박후진은 얼떨떨한 나머지, 풀썩 의자에 쓰러졌다.
[그건… 저희 쪽에 우선권을 주신다는 말입니까?]
“네. 물론 청십자 쪽에서도 마음에 드는 약이어야 하지만, 아무튼 저희 쪽에선 청십자와 제일 우선적으로 계약을 고려하겠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이청규 연구원님이랑 다른 분도 계시지 않습니까? 정경애 교수님이 총괄이고요. 근데 그렇게 혼자 막 정하셔도 됩니까? 이런 말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직 졸업은커녕 대학원도 안 가신 걸로 알고 있는데.]
박후진이 반신반의하며 의심부터 하고 봤다.
고작 검사 부탁 하나에 그런 특혜를 준다고? 그것도 랩실 막내인 네가? 그렇게 맘대로 정해도 되는 사안이 아닐 텐데?
하지만 허신은 괜찮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니요. 정경애 교수님이나 청규 형은 제 말을 들어줄 거고… 민 조교님이 좀 반대를 할 수는 있겠지만, 괜찮습니다.”
정경애는 애초에 항제탄제를 넘길 때의 조건이 자신을 믿어 주는 것이었으니 괜찮았다.
그녀는 간배석과는 달리 돈이나 인맥에 연연하며 계약에 큰 의미를 두는 교수가 아니었다.
약만 효과 좋고 부작용 없고, 환자들에게 차질 없이 공급해 줄 수만 있다면 불만 없음.
발모제 계약할 때도 청십자를 나쁘게 보지 않았으니, 아마 다음에도 마찬가지일 게 분명했다.
이청규야 당연히 별 이견이 없을 테고.
그는 사랑하는 군소와 탈모 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남자였으니까. 오히려 애국심이 있어서 청십자를 좋아하기까지 했으니 다행이었다.
다만 민의진은 이득을 못 볼지언정, 손해는 보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그녀는 좀 더 여기저기 비교하며 가치를 높이고 싶어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청십자를 선택하는 것만큼의 가치는 더 없다고 말하면 그녀 또한 금방 동의해 줄 테니까.
허신은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
[괜찮다니… 이런 중대한 사안을 그렇게 마음대로 결정해도 되는 겁니까? 분명 그때도 몇십 억, 몇백 억 씩 왔다 갔다 할 텐데?]
“마음대로는 아니고, 그냥 잘 설득하는 겁니다. 그러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떻게 해서든 청십자에서 내도록 할 테니.”
[허어… 이건 너무 생각지도 못한 계산법인데요. 검사 한 번에 계약이라. 발모제를 겨우 따냈던 걸 생각하면 엄청 유혹적으로 들리긴 합니다만.]
“유혹하는 거 맞습니다. 애초에 그렇게 군침을 흘려 달라고 말한 걸요.”
[이것 참. 이렇게 되면 솔직히 저희는 그런 발암 성분이 안 나와 줬으면 할 정도인데요?]
“아. 그거 말인데. 제가 의심한 성분이 나왔다 하더라도 무조건 청십자에서 내는 걸로 하죠.”
[예?]
성분이 나오지 않았을 경우엔 괜한 시간 낭비를 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뜻으로.
성분이 나왔을 경우엔, 자신의 말을 믿어 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박후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그냥 무조건 저희와 계약하겠다는 거네요?]
“그렇죠. 제 요청대로 검사를 해주기만 한다면.”
[와우.]
비록 다음 한 번뿐이었지만, 박후진은 지금 거의 전속 계약을 따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네 번 되는 건 금방이었으니까.
허신은 마지막으로 제일 맛있는 토핑을 위에 뿌렸다.
“당장 다음 개발 약이 뭔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박후진 본부장님도 아시다시피 저희 연구소는 항제탄제를 발견했고, 이어서 완벽한 발모제까지 만들어 냈습니다. 솔직히 저희만큼 비전 있는 연구팀은 다른 약대는 물론, 어지간한 제약 회사 연구실에도 없을걸요.”
[그건 맞습니다만….]
“앞으로 저희가 더 나아갈 행보는, 솔직히 감히 보장하건대 상상 초월일 겁니다. 청십자에서도 손해는 아닐 거라 확신합니다.”
누구나 계획은 거창하다. 그걸 결실로 이뤄 내느냐가 중요했지.
하지만 허신이 열거한 바대로, 그들은 이미 증명을 해냈다.
자신이 본부장으로 있는 청십자에서도 정 랩만 한 히트를 치진 못했으니까.
심지어 허신은 아직 약사 자격증도 따지 않은 유망주.
커리어만 봐서는 이미 약학 역사의 중심에 서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만약 저희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그때 가서 거절하셔도 됩니다. 그냥 우선권을 준다는 것뿐이니까요. 거절할 일은 없으시겠지만.”
[…솔직히 저희가 해 드리는 거에 비해 너무 빵빵한 보상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계약 확정은 사실 과한 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어차피 아바다케다바이드는 청십자에서 내는 약에도 포함된 성분이었고, 발암 물질 검사 하나 정도 끼워 준다고 해서 큰 부담이 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괜찮습니다. 저희 랩도 청십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니까요. 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청십자의 회사 신념을 좋게 보는 터라.”
하지만 이건 허신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딜이었다.
그는 제약 회사들을 부추기고 정치질을 해서 더 큰 이득을 뽑아내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발모제 때는 이청규가 돈에 허덕였던 걸 생각해서 일부러 그랬던 거고.
정 연구실의 목적은 좋은 약을 좋은 회사와 함께 빨리 환자들에게 출시하는 것이었지, 눈앞의 돈을 조금 더 땡기자고 여기저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었다.
손해는 안 보지만, 과한 이득을 볼 생각도 없다. 결국 정경애나 허신이나 끼리끼리였다.
“청십자는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제약 회사 아닙니까. 저희에게 좋은 대우를 해 주리라는 걸 알고 있으니 이런 제안도 기쁘게 드릴 수 있는 거죠. 박후진 본부장님도 믿을만한 사업 파트너고요.”
[어흡. 허신 연구원님…!]
거의 아들 뻘에게서 듣는 ‘사업 파트너’ 소리가 이렇게나 기쁠 줄이야.
허신은 박후진이 꽤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자신이 대박을 연달아 터트렸다곤 해도, 나이도 훨씬 어린 대학생 말이라면 무시하고 볼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박후진도 처음엔 그랬다.
하지만 허신이 한번 언급한 이후엔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임상용이나 간배석이 몇 번씩이나 무시했던 걸 생각하면 박후진은 양반이었다.
그저 이득이 되냐 안 되냐. 그는 냉정하게 판단하고, 이익을 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면에서 허신은 박후진과는 깔끔하게 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당장은 약 부작용의 피해자를 줄이는 게 제일 중요했고.
그래서 허신은 조금 일방적인 계약이라 하더라도, 환자를 위해 최대한 빠르게 조치를 취하고 싶었다.
“어떠십니까. 앞으로 저희 연구소에서 다음 약을 성공하게 된다면, 청십자와 무조건 계약. 계약금이나 자세한 사항은 다시 조율해야 하겠지만, 이만하면 충분한 계산 같은데요.”
[완전 좋습니다.]
이건 못 먹어도 무조건 Go지.
저번에 계약하는 것도 얼마나 힘들었던가. 발모제 계약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제 탈모가 심해질 지경이었다.
이건 의심만 하다 놓치기엔 너무나도 맛있는 기회였다.
식곤증에 절어 있던 박후진의 정신이 어느샌가 맑게 개었다. 이 일로 받을 성과급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레서 얼굴 근육이 풀렸다.
[그럼 허신 연구원님 말, 믿어 보도록 하죠. 마침 청십자에서도 관련 약을 내려고 준비 중이었으니. 만약 허신 연구원님 말대로 발암 물질이 검출되기라도 한다면, 저희도 문제가 커지니까요.]
그랬다.
청십자에서도 몇억을 투자해서 약을 만들었는데, 거기서 발암물질 이슈가 터졌다면 그거야말로 큰 손해였다.
거기서 끝나면 다행이지.
회수 조치 된 약을 처리하는 데도 또 돈이 들었다.
약이 쓰레기로 전락하는 한편, 의약품 신뢰도마저 떨어져 기업 이미지 손실까지도 이어질 수 있었다.
정말로 허신의 말이 맞는다면 오히려 청십자에서 무릎 꿇고 고마워해야 할 수준이었다.
[그럼 말해 주신 성분 포함, NDMA까지 추가로 몇 가지를 더 검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분 검사부터 동물 실험. 만약 검출이 된다면 원인 분석까지 진행하죠. 그때는 식약처와도 긴밀하게 협조해야 할 겁니다. 아마 전량 회수 조치를 취해야 할 테니.]
“원하는 바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약으로 인해 불필요한 부작용을 보는 환자가 적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진행 사항 꾸준히 보고드리도록 하죠.]
“부탁합니다.”
허신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박후진은 생각지도 못한 소득에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다 문득.
그는 중요한 걸 까먹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만약 발암 물질이 나온다면… 이 검사를 허신 연구원님이 주최했다는 사실을 제가 언론에 알려야 할까요?]
“아아. 그 문제가 남아 있었죠.”
[오해하실까 봐 덧붙이는데! 안 알리고 싶다는 뜻으로 질문한 건 아닙니다. 청십자의 공으로 다 돌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지금도 검사만 중요하게 강조하시고, 본인 얘기는 잘 안 하시기에.]
“물론 그랬죠.”
[사실 저한테 이렇게 제안하고 연락 주신 것도… 그냥 몰래 청십자의 이름만 빌리겠다는 뜻 같습니다만. 맞습니까?]
역시 그는 눈치가 빨랐다.
“네. 말씀해 주신 대로, 저는 이 일에서 제 이름이 언급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역시 허신 연구원님은 그럴 줄 알았습니다. 항제탄제 때도 정경애 교수님은 백신의 공을 계속 허신 연구원님께 돌렸었죠. 정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걸 보면 꽤 혁혁한 공을 세운 것 같았는데, 허신 연구원님은 그때도 언론을 최대한 피하셨죠.]
“아아. 그랬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이름을 알리고 싶었다면 차라리 기자를 통해 언론 플레이를 했겠죠. ‘항제탄제의 연구실! 이번엔 발암 물질까지?’ 이러면서요.]
“하하. 나중에야 몰라도, 전 지금 제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대단해도 남들이 보기엔 일단 약대생이라는 거지요?]
“네. 고작 약대생이 뭘 안다고 얘기를 하겠냐고 하겠죠. 반응은 안 봐도 뻔합니다. 굳이 이 일을 진행하는 데에 방해 요소를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허신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당장 빠르게 일을 처리해도 모자랄 판국에, 고작 이름 좀 알리자고 번거롭게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나중엔 안 알려지고 싶어도 알려질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