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리는 커피잔을 손에 쥔 채 재권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차분했다.

예전처럼 단정한 외모와 잔잔한 미소가 그를 감싸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별다른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유리는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변하지 않았어….’

2년 전의 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재권을 보며, 유리는 잠시 그때의 기억에 잠겼다.

그와의 이별 후, 그녀는 그를 잊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마주하고 나니, 그를 완전히 잊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의 모습이 여전히 또렷하게 떠오르며, 그녀의 마음 속에서 감정들이 다시금 일렁였다.

유리는 눈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그를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무심한 듯 보이는 그의 표정, 그러나 그 속에 숨겨진 감정들을 읽으려 하면서도 그녀는 불안했다.

그와의 재회가 우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왜인지 모르게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왜 이렇게 차분해 보이지? 혹시 나에겐 아무런 감정이 남아있지 않은 걸까?’

그의 무표정한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유리는 자신도 모르게 재권의 감정을 추측하려 들었다. 그는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걸까, 아니면 그저 그렇게 보이려 애쓰고 있는 걸까. 이 의문은 그녀의 마음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나만 이렇게 흔들리는 건가…?’

유리는 속으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별 후, 자신이 그를 잊으려 노력한 만큼, 재권도 그녀를 잊었을까? 혹은 그가 이곳에 앉아 있는 지금,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자신을 품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 이 무심한 표정이 그녀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재권의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불안해졌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 듯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차분한 눈빛이 그저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억눌린 감정이 조금씩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감정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다.

‘아직도 그를 의식하고 있는 걸까?’

재권과 마주 앉은 이 순간, 그녀의 내면에서 자꾸만 일어나는 질문들이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가 자신을 무심하게 대하는 모습에 괜스레 서운한 감정이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재권과의 이 만남이 단순한 우연에 불과하다는 걸 받아들이려 했다. 어쩌면 이 만남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한숨을 속으로 삼키며 다시 한 번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잔잔했다. 무심하고 차분한 표정.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와의 지난 시간들이 무색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 차분함이 오히려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왜 이토록 감정이 섞이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

유리는 그를 바라보면서도, 왜 재권이 이토록 무심하게 자신을 대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정말로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 속에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 알 수 없는 거리감이 그녀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유리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그를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그와의 관계는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그녀 안에는 그를 향한 미묘한 감정들이 남아 있었다. 그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이 감정들이 천천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유리는 잠시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과거의 감정에 흔들리지 않으려 했지만, 그를 마주한 순간 다시금 감정의 파도가 그녀를 덮쳐왔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그녀는 침착하려 애썼다. 재권이 이 사실을 알아채지 않기를 바라며,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려 했다.

“재권 씨?”

유리는 그의 바로 뒤에서 조심스럽게 불렀다.

재권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잠시 놀란 듯했지만, 곧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유리? 여긴 어떻게…?”

“저도 여기 자주 와요. 가끔 아이들하고 시간을 보내곤 하거든요.”

유리는 담담하게 대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WH그룹에서 자원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당신이 직접 참여할 줄은 몰랐네요.”

“가끔 참여해. 여기가 우리 그룹의 지원을 받는 곳 중 하나라서.”

재권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태도는 여전히 차분하고, 특별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유리는 그를 보며 어쩐지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가 이런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의외였기 때문이다.

‘재권 씨도 이런 일을 하다니….’

그녀는 그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봉사활동에서 진심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고, 그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한 것 같았다.

“의외네요. 이런 모습 처음 봐서요.”

유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재권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야.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면이 있으니까.”

그의 말에 유리는 작게 웃었다. 그동안 그를 차가운 사람으로만 생각했던 자신이 어쩌면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진심을 다 읽어낼 수 없다는 점이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

재권은 항상 차분했고, 자신의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들이 그들을 부르며 다가왔고, 유리와 재권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재권은 여전히 여유롭고 차분한 태도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고, 유리는 그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의 따뜻한 눈빛과 잔잔한 미소는 그녀가 생각하던 재권의 모습과 달랐다.

‘그도 이렇게 부드러운 사람이 될 수 있구나.’

유리는 재권이 보여주는 새로운 면모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차가운 도시 남자로만 보이던 그가, 이렇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니, 그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았다.

봉사활동이 끝난 후, 유리와 재권은 함께 보육원을 나섰다. 두 사람은 말없이 나란히 걷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사이에는 편안한 침묵이 감돌았다.

“다음에 또 여기 올 건가요?”

유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재권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네가 여기 자주 온다면, 또 마주칠 기회가 있겠지.”

유리는 그 말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음에 또 봐요.”

유리는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건물을 나서며, 저녁의 서늘한 바람을 느꼈다. 그날도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평온한 하루를 보냈지만, 계속해서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재권. 그가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다시 그녀의 일상 속에 나타난 후, 그녀는 그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권은 언제나 무심한 듯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그 속에서 묘한 따뜻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여전히 그와의 거리는 알 수 없는 벽처럼 남아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그는 봉사자들과 마지막 정리를 도우며, 여느 때처럼 평정심을 유지한 채 있었다.

그가 무심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오늘도 고생했네.”

유리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재권 씨도요. 근데, WH에서 이렇게 오래 지원해 온 줄은 몰랐어요. 꽤 오랜 기간 이 보육원을 돕고 있었네요.”

재권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처음 시작한 건 내가 아니었어. 예전에 이 보육원에서 일하시던 선생님 한 분이 있었는데, 그분의 부탁으로 WH에서 지원을 시작했지. 그분은 내가 유리 씨 알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이었어.”

유리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하니 그의 말을 되새겼다. 재권이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한 이유가 단순한 기업 이미지 관리나 의무적인 지원이 아니라, 개인적인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사실에 살짝 놀랐다.

“그 선생님이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한 거였군요.”

유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렇게 오래 지원할 줄은 몰랐네요.”

재권은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그 선생님이 계시진 않지만, 그때 시작한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 그냥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유지해온 거야.”

유리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단순히 무심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속에 깊은 배려가 숨어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크게 드러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당연한 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정말 의외네요.”

유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이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도왔다는 게요.”

“그렇게까지 의외일 건 없지.”

재권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받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니까.”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대화는 여전히 담담하게 이어지고 있었지만, 그 속에는 서로를 향한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유리는 재권의 말투가 무심하면서도 그녀에게 조금씩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