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TO. 영숙에게''오랜만이지? 네가 미국으로 간 후에 소식 끊긴 지도 꽤 됐어. 쪼끄만 꼬마였던 게 엊그제 같던 내 딸 연주가 벌써 고등학생이란다. 세월 참 빠르지? 그동안 간간이 네 생각하기도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이래저래 맨날 연락하는 거 미루기만 했구나. 그래도 그렇지 너도 어쩜 그렇게 감감무소식이니? 네 남편이 얼마 전 사업차 한국에 들렀다가 우리 남편하고 만난 것 같더라. 그런데 얼굴이 어두워 보이더라는 거야. 남자들끼리라 자세한 얘기는 안 했다고 하지만 난 네가 걱정되었어. 전화도 불통인데다가 몇 번 보낸 편지에 답장도 없었고, 무슨 일이 있는 거니? 섭섭해. 어려운 일 있으면 서로 돕자고 철썩 같이 약속해 놓고. 난 우리가 자매같이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넌 그렇지 않은 거야? 요즈음 부쩍 네 생각이 간절하다. 나이 드니 사는 게 점점 재미없어지는 것도 같고. 너와 함께 여기서 살았을 때처럼 아이들하고 북적거리며 같이 어울렸던 그때가 그리워. 연주 그 계집애는 이제 다 컸다고 난 상대해 주지도 않는 거 있지? 사춘기 때의 권리를 모두 누려 보겠다며 무슨 비밀을 그렇게나 남발해 대고는 무언가를 숨기려고 드는지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니까? 그러고 보니 네 아들 정민이도 연주랑 동갑이니까 제법 남자다워졌겠다? 내 딸이라서가 아니라 연주도 요새 꽤 숙녀티가 나면서 예뻐진 것 있지? 어찌나 미모를 가꾼다며 조그만 것이 벌써 화장품이랑 옷에 눈독을 들이는지. 내가 자꾸 어린 것 어린 것 하니까 자기를 어리게 보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고 닦달을 해 댄다.''네가 그립구나. 너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은데. 우리 그때 굳게 맹세하며 자식들 정혼 서약서 썼던 거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나 장난 아니었다? 같이 임신해서 축하한다고 두 부부끼리 불고기 파티했던 날 말이야. 남자들은 술 한 잔에 흥청거리고 우리는 고기 굽는 불판 옆에서 종이에 서로의 자식이 다른 성일 경우 결혼시킨다는 서약을 맺고 지장까지 찍었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가 가장 재미있었고 행복했었던 추억인 것 같아.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이나 소중한 날들이었는데 그때는 그 행복을 왜 그렇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을까? 연락 좀 하고 살자. 우리 연주 사진하고 가족사진들 몇 장 동봉할게. 너도 답장하면서 어떻게 사는지 사진 좀 넣어 보내 줘. 연주 교복 입은 사진 꽤 잘 나왔지? 정민이한테 보여주고 정혼자 있으니까 한눈팔지 말라고 해라. 난 어떻게든 네 아들하고 우리 딸 결혼시킬 생각이니까. 귀여운 정민이는 어떤 청년으로 컸을지 궁금하네. 참 겁이 많은 예쁘장한 아이였는데, 연주가 정민이 괴롭히던 애들 대신 혼내 주고 그랬던 거 기억난다. 다들 정민이를 여자로 보고 연주를 남자로 보기도 했어. 그 생각하니까 또 웃음이 나오려고 하네. 연주는 지금도 엄청 왈가닥이야. 다시 말하지만 네가 절실하게 보고 싶다. 잘 지내. 건강하고. 답장 꼭 줘.''FROM. 너의 친구 해령''P.S-이번에는 답장 꼭 줘야 해? 안 그러면 절교한다?''편지를 들고 있던 어떤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 그것을 들고 있던 사람은 하얀 피부에 긴 속눈썹을 가진 예쁘장한 한 남자 아이였다. 10살 남짓하게 생긴 아이의 표정은 그 또래들이 으레 짓곤 하는 장난스럽거나 천진난만함이 아닌 우울한 얼굴이었다. 무엇이 이 작은 소년의 기쁨을 앗아간 것일까? 봉투 안에 있던 몇 장의 사진 중 하나가 그의 시선을 끌었다. 눈부시게 웃고 있는 교복을 입은 어떤 여고생의 사진. 아이는 갑자기 자신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사진 속의 여자가 매우 아름답게 생긴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이성을 느끼기에 그가 그리 성숙한 나이도 아니었지만 그 여고생이 마치 자신을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모습에 어떤 행복을 느꼈다. 그것은 그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어둠 속에서 한줄기 광명처럼 그녀의 미소는 그 암흑을 뚫고 소년의 가슴에 와 닿았다. 그리고 소년은 그 순간에 놀랍게도 아이에서 남자로 탈바꿈되었다. 머릿속이 온통 그녀의 미소로 가득 차고 그 사진 속의 여자가 그에게는 첫 번째 사랑이 되어 버렸다.'''''''■ 1장-만남'■ 2장-첫 키스'■ 3장-계약결혼'■ 4장-결혼전야'■ 5장-단 둘이 밤새도록'■ 6장-신혼여행'■ 7장-악몽'■ 8장-회식 때 생긴 일'■ 9장-그녀의 과거'■ 10장-그림'■ 11장-정우와 사진'■ 12장-소이라는 아이'■ 13장-감기'■ 14장-겨울바다'■ 15장-정우의 생일'■ 16장-폭주클럽'■ 17장-소이의 사정'■ 18장-재민의 등장'■ 19장-정우의 오해'■ 20장-웬디라는 여자'■ 21장-웬디와 연주'■ 22장-천사의 도시에서 온 악녀'■ 23장-소이의 사과'■ 24장-재민, 그의 집착'■ 25장-갈등의 시작'■ 26장-재민과 웬디'■ 27장-음모의 서막'■ 28장-위기'■ 29장-파국'■ 30장-거듭되는 오해'■ 31장-소이의 행방'■ 32장-눈물'■ 33장-뉴욕'■ 34장-서울'■ 35장-밝혀지는 진실'■ 36장-풀리는 오해'■ 37장-다시 찾은 행복'■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