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전부 구입한 뒤 취미 생활까지 즐기고도 저금할 돈이 남을 정도의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수입, 근처에 여러 편의 시설이 있는 아파트, 그리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두 사람, 나의 남편과 아들. 이 모든 것들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의 내가 꿈꾸던 것들이자 지금의 내가 이뤄낸 것들이다.

남편과의 상의 끝에 조만간 고양이도 입양할 예정이다. 아들의 의견도 받아들여서 암컷 고양이와 수컷 고양이를 각각 한 마리씩 입양하기로 했다. 두 마리 다 중성화 수술을 해도 괜찮을 정도의 체중이 되자마자 중성화 수술을 할 예정이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아들이 기대하고 있는 고양이 대가족이 만들어지는 일은 없겠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원히 불행할 것 같았던 나는 지금 이렇게나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지금이 행복하다고 해서 과거의 힘들었던 시기의 기억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지금의 행복을 그 시기의 고통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충분하고도 남기 때문에 과거의 고통은 마음의 깊은 곳에 묻어 두기로 했다.

가끔 이 행복이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는 내 스마트폰 갤러리를 가득 채운 남편과 아들의 사진을 보면 금방 안심이 된다. 그 사진들이 남편과 아들 덕분에 내가 느낄 수 있었던 행복들과 그 행복의 기억들이 전부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는 증거가 되어 주기 때문에.

“엄마!”

“…아, 벌써 간식 시간이구나. 작고 귀여운 우리 아들, 오늘은 어떤 간식을 먹는 게 좋을 것 같아?”

“음… 말랑말랑하고, 분홍색이고, 파란색이고, 노란색이고… 하얀색인 거 먹고 싶어요!”

아무래도 이제 곧 네 살이 되는 내 귀여운 아들은 마시멜로라는 단어를 외우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아들과 남편과 내가 한 명씩 번갈아 가면서 달콤한 맛이 나는 음식들을 말해 보는 놀이를 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단어의 첫 글자가 ‘마’인 것까지는 잘 외운 것 같지만.

“그래. 코코아도 같이 줄까?”

“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나 귀여운 생물이 존재할 수가 있는 걸까. 내 아들이라서 더 귀엽게 느껴지는 것도 있지만,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봐도 이 아기가 엄청나게 귀엽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커다랗고 반짝이는 눈도,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볼도, 소중한 곰돌이를 쓰다듬어 주는 작은 손도 귀엽다. 그 외의 다른 것들도 전부 귀엽다. 그나저나 저 곰돌이를 슬슬 세탁해야 할 것 같은데, 이번에는 아들을 어떤 말로 설득하는 게 좋을까.

“드디어 일 끝났다. 이제 최소 일주일 동안은 쉴 수 있어….”

이 사람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두 사람 중 한 사람, 나의 남편이다.

“와! 아빠다!”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우리 아들, 입에 뭐가 많이 묻었네. 뭐 먹고 있었어?”

“응! 코코아랑, 마, 마… 그거 이름 뭐였지?”

말랑말랑하고 알록달록하고 달콤한, 방금까지 자신이 먹고 있던 그 음식 이름이 뭐였는지 열심히 생각하는 아들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내 남편도 그 모습을 보면서 나랑 똑같은 느낌을 받은 것 같다.

“…엄마랑 아빠, 왜 웃어요?”

“우리 귀여운 아들이 맛있는 거 먹는 모습을 보면, 엄마랑 아빠는 행복해서 웃음이 나와.”

“그럼 앞으로도 맛있는 거 많이 먹을래요.”

원래 아기라는 생물은 이렇게까지 귀여운 건가?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들만 귀여운 게 아니라 생각하는 것들과 말하는 것들, 행동하는 것들까지 하나같이 전부 귀엽다. 아까부터 귀엽다는 말만 계속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귀엽다는 말 이외에는 이 모습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엄마, 아빠.”

“왜?”

“…이거 더 먹고 싶어요.”

마음 같아서는 아들이 원하는 만큼 먹게 해 주고 싶지만, 조금 있으면 저녁 식사 시간이 되기 때문에 지금은 곤란하다.

“…엄마랑 아빠도 우리 아들이 먹고 싶은 간식을 더 주고 싶지만, 어제 엄마가 집에 데려온 달걀들이 계란말이가 돼서 채하 배 속에 들어가려고 기다리고 있어.”

“계란말이? 오늘 계란말이 먹는 거야?”

곧 저녁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간식을 더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어떻게 돌려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사이, 고맙게도 남편이 나 대신 아들을 설득해 줬다.

“…더 먹고 싶지만 참을래요. 달걀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으면 안 돼요.”

“그렇지. 자리가 없으면 달걀들이 들어올 수가 없으니까.”

달걀들을 위해 간식을 더 먹고 싶은 마음을 참아낸 아들도, 아직 세상의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없는 작은 아이를 설득해서 이해시킨 남편도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둘 다 엄청나게 귀엽다.

“아직 세 살인데도 이런 생각을 하다니, 우리 아들 엄청난 천재 아닐까?”

“천재가 아닐 리 없지. 이렇게나 똑똑한데.”

“역시 그렇지? 지금도 엄청 똑똑한데 어른 되면 얼마나 더 똑똑해질까, 우리 아들.”

힘들었던 시기의 나에게 다시 일어날 힘을 낼 수 있게 해 준 사람이자 지금의 나에게 아주 커다란 행복을 주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지금의 내 남편이다.

…그런 내 남편이 얼마 전부터 행복한 듯이 웃고 있다가도 갑자기 슬픈 표정을 짓게 됐다. 지금처럼 이렇게.

뭐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짓는 건지는 모른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봐도 걱정할 만한 일은 전혀 없다는 대답밖에 돌아오지 않는다.

“일하면서 힘든 건 없지?”

“…못 버틸 만큼 힘든 건 딱히 없어. 조금 힘들게 느껴지는 것들은… 다른 일 해도 똑같은 거야.”

“…힘든 일 있으면 바로 말해 줘.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다 도와줄 테니까.”

“고마워. 힘든 일 있으면 바로 말할게.”

나는 남편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 어떤 것이라도 남편을 미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이 혼자 힘들게 고민하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여러 번 말했지만, 나는 당신이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당신을 미워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

“…걱정해 줘서 고맙지만, 정말로 고민 같은 건 없어.”

덧붙이자면, 내 남편은 거짓말을 굉장히 못한다. 거짓말을 하는 동안 손의 떨림이 멈추지 않는 건 기본이고, 목소리도 엄청 떨리고 표정 관리도 전혀 안 된다. 무엇보다도 거짓말을 하고 있을 때는 전혀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필사적으로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하는 게 눈에 보여서, 남편이 계속 고민을 숨기려고 한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쓰기 위해 세워 둔 두 번째 계획을 정말 실행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것보다, 얼른 밥 먹자. 내가 도울 일 있어? 나도 돕고 싶은데.”

“마음은 고맙지만, 오늘 만드는 요리들은 전부 나 혼자 하는 게 더 효율적일 정도로 빨리 끝나는 것들이니까 안 도와줘도 괜찮아. 피곤할 텐데 좀 쉬고 있어. 준비 다 되면 바로 부를 테니까.”

“…….”

“…아, 맞다. 아까 전에 채하가 나한테 아빠가 동화책 읽어 줬으면 좋겠다고 했어.”

“…지금 채하 어디 있어?”

“아까 곰돌이랑 같이 방에 들어가던데?”

“그럼 밥 먹기 전까지 책 읽어 주고 있을게.”

“응. 고마워.”

숨기려는 자는 알아내려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예전에 읽었던 추리 소설의 주인공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나로서는 그 말이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그저 그 말처럼 상황이 흘러가기를 바랄 뿐이다.

***

“맛있어요!”

“맛있어?”

“네! 엄청 맛있어요!”

혼자서 살던 시절의 나는 요리를 엄청 못했다. 그래서 매일 편의점이나 식당 같은 곳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그렇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랑 똑같은 방식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니 속상한 기분이 들었고,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요리를 배웠다.

“맨날맨날 먹고 싶어요!”

“그렇게나 맛있어?”

“네!”

작고 귀여운 입으로 열심히 계란말이를 먹는 아들을 보고 있으니 귀여워서 웃음이 나온다. 당연한 일이지만 남편에게도 그 모습이 굉장히 귀엽게 느껴진 것 같다.

“아빠는 안 먹어요?”

“…아.”

아들의 말대로, 남편의 계란말이는 한 조각도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미안해. 잠시 일 관련 생각을 하고 있어서 못 먹고 있었어.”

아까도 말했듯이, 남편은 거짓말을 굉장히 못 한다. 거짓말을 시작하자마자 여러 부분에서 바로 티가 난다. 바로 이렇게, 지금처럼.

“일할 힘이 있어야 일할 수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일 생각은 일단 밥 먹고 나서 하자.”

“…응.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상황을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조금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근본적으로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 이 정도까지는 이기적으로 행동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

[민우 씨,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다른 사람과 문자로 대화를 시작하고 싶을 때는 대체 어떤 내용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 걸까. 어떻게 시작해도 크게 상관없다고 해도 가장 문자를 받는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목적이 명확한 연락을 제외하고는 절대로 먼저 연락하지 않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답을 찾아내기 어려운 고민이었다.

[엄청 잘 지내고 있어요. 재현 씨는요?]

역시 조금 더 고민한 뒤에 보냈어야 하는 거였을까 후회하고 있던 것도 잠시, 내가 문자를 보내고 약 3분 정도가 지났을 때 민우 씨로부터 답장이 도착했다. 너무 긴장하고 있어서 그사이에 문자를 읽었다는 표시가 떠 있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저도 희수 씨랑 채하 덕분에 매일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최대한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대화가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평소에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나는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게 많이 서툰 편이었던 것 같다.

[혹시 희수랑 관련된 일 때문에 연락 주신 건가요?]

[네]

민우 씨가 내가 원하는 답을 바로 눈치채 주신 게 너무 기뻤던 나머지 마침표를 찍는 것도 잊어버리고 성급하게 전송 버튼을 눌러 버렸다.

[요즘 희수 씨 표정이 갑자기 안 좋아질 때가 종종 있어서요.]

남편의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는 건 딱히 나쁜 일이 아니지만, 그 문자를 보내게 된 이유가 남편의 사생활을 알기 위해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도 남편의 친구들 중에서 남편과 가장 자주 교류하고 있는, 그렇기에 남편의 사생활을 가장 많이 알고 있을 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한테 문자를 보내는 거면 특히 더 그렇고.

[저도 최근에 그런 모습 많이 봤어요. 그런데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봐도 대답도 안 해주고. 그래서 요즘 마음이 많이 답답하네요.]

[민우 씨한테도 말 안 해 주려고 하는 건가요?]

[네. 저도 걱정돼서 재현 씨한테 희수 무슨 일 있는지 문자 보내서 물어보는 게 좋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렇게 재현 씨가 먼저 문자를 보내주셨네요.]

[그래서 제가 민우 씨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였는지 바로 눈치채신 건가요?]

[그렇죠. 저 말고 다른 친구들도 걱정 많이 하고 있어요.]

그래도 민우 씨한테는 말했을 줄 알았는데, 대체 얼마나 심각한 고민이기에 거짓말까지 하면서도 계속 혼자서 짊어지려고 하는 걸까.

[희수한테 무슨 고민인지 듣게 되면 연락해서 알려 드릴게요. 재현 씨도 뭔가 들으시면 저한테 연락해 주세요.]

[네. 그렇게 할게요.]

민우 씨한테 연락을 해 봤지만, 그다지 소득이라고 할 만한 건 없었다. 남편이 민우 씨한테까지도 고민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는 게 소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