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에는 복사꽃이 핀다>

#1장 변하지 않는 것

아버지는 자책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그럴 필요가 없을 때도 그리했다. 자신을 책망하는 날이 길어질수록 아버지의 몸은 나날이 병 들어갔다.

병든 마음 때문일까. 자기가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 찾아왔고, 신장이 망가져 계단도 제대로 오르지 못했다. 창백한 낯빛으로 숨을 몇 번이나 고르면서도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괜찮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며 힘없이 미소 짓던 아버지.

“괜찮다는 말은 정말 괜찮을 때 하는 거예요.”

“우리 도화만 괜찮으면, 아빠는 다 괜찮아.”

그 말이 싫었다. 차라리 아프다고, 힘들다고 우는 편이 나았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 아이의 잔상이 아버지 뒤로 그림자처럼 늘어졌다.

왜 세상은 이토록 희생할 줄밖에 모르는 자들에게 유독 잔인할까. 모든 불행의 시작은 아마도 그날부터일 것이다. 어머니가 집을 떠나던 그날. 열아홉의 늦봄.

***

“짐 싸.”

어머니는 해외여행 갈 때나 쓰던 큰 여행 가방을 가져와 옷가지를 담기 시작했다. 짐을 싸는 빠른 손놀림을 황망히 지켜보고 있다가 팔을 거칠게 붙잡혔다.

“뭐 해? 짐 안 싸고.”

“짐을 왜 싸……? 아빠는?”

“아빠와는 찢어질 거야. 아빠도 허락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왜?”

다그치듯 물었다가 어머니의 눈물을 마주하고 말았다. 아버지를 향한 연민이 아닌 어머니 자신을 향한 연민이 깃든 눈물이었다.

“네 아빠 사업 망하고, 빚까지 떠안았는데. 아빠랑 같이 살고 싶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어머니의 두 눈엔 원망의 기색이 가득했다.

“그렇다고 우리만 도망갈 수는 없잖아. 우린 가족인데…….”

어머니는 내 말에 마음이 약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두 눈을 표독스럽게 부릅떴다.

“그럼 너 혼자 네 아빠랑 같이 살던가. 나는 이렇게는 못 사니까.”

어머니는 쉬지 않고 짐을 쌌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말리지도 않고 조용히 마당에 나가 있었다. 봄이었고, 마당에는 복사나무가 꽃을 활짝 피운 채였다.

캐리어 가방의 지퍼를 잠근 어머니가 다시금 내게 물었다.

“갈 거야, 말 거야? 지금 정해.”

어머니를 따라 아버지를 버릴 것인지, 아니면 이곳에 남아 아버지 곁을 지킬 것인지. 그걸 하루아침에 정하라 말하는 것이 황당했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난 아빠 못 떠나.”

짐가방을 들고 당장 떠날 기세인 어머니 앞에서 당돌하게 말했다. 아버지를 지킬 힘도, 돌볼 힘도 없던 고등학생 주제에.

“아니, 안 떠나.”

어머니의 두 눈이 크게 벌어졌다. 우리는 너무나 다른 서로에게 놀랄 뿐이었다. 그러기도 잠시, 어머니는 진저리가 난다는 얼굴로 내게서 돌아섰다. 그 떠나는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서늘해졌다.

지금 입은 명품 옷, 가방……, 전부 아버지 돈을 물 쓰듯 펑펑 쓰며 사 입은 것들이면서. 그래 놓고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자마자 떠나는 어머니는 좋게 말해 참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돈을 위해 결혼했고, 돈을 위해 이혼하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 이대로 떠나면, 모든 걸 자기 잘못으로 돌리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화살을 쏘아댈 사람인 걸 알면서……. 다 알면서도 떠나는 어머니가 미웠다.

아버지는 언제나 내게 아버지였다. 사업이 잘되든, 망하든 어떤 순간에도 아버지는…… 내 가족이었다.

언젠가 복사나무 앞에서 아버지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또 여기 혼자 있어요? 나무 보는 게 뭐 그리 재밌다고.

-한결같고, 변함없는 것들이 마음을 편하게 하거든.

변함없이, 봄마다 꽃을 피우는 복사나무가 아버지 마음을 그렇게 편하게 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요?

담장 너머로 뻗은 가지에도 꽃이 피어 있었다. 담장을 넘은 꽃가지가 바람에 가볍게 살랑였다.

-변하지 않는 건 이 나무로 족해.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을. 자신이 돈을 잃고, 직장을 잃고, 모든 걸 잃었을 때 사람들이 제 곁을 떠나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변하는 건 뭐가 있는데요?

-사람들이지.

-사람들이요?

-그래. 지금이야 유복한 생활을 하니까 사람들이 내 곁에 있지만, 내가 돈을 잃으면 모두 떠나갈 거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하세요?

굳게 입을 다문 아버지의 얼굴은 쓸쓸해 보였다.

-아빠?

기다려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나는 두 팔을 벌려 아빠를 안아주었다.

-엄마도, 나도 절대 아빠를 떠나지 않을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요. 변함없이 아빠 곁을 지킬 거예요.

나에게 가족은 지켜야 하는 소중한 것이었다. 지켜야 하기에 버리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어려움을 같이 극복해 나가는 게 가족이잖아요.

언제나 변함없이 곁에 있으리라고 약속했다. 아버지는 말없이 그런 날 안아주었다. 그 침묵이 슬퍼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일부러 더 활짝 웃어 보였다.

그리고 지금, 아버지는 어머니가 떠나는 순간에도 복사나무 곁에 있었다.

***

소개팅. 블라인드 데이트(Blind date). 블라인드라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고 나온 소개팅이었다. 서현우가 그 카드만 꺼내지 않았어도 평생 나올 일 없던 소개팅이기도 했다.

도원은 미리 약속한 창가 자리에 앉아 소개팅 상대를 기다렸다. 이름도, 연락처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였다.

봄을 알리듯 창밖엔 꽃을 피운 벚나무들이 줄지어 있었다. 아무 감흥 없는 얼굴로 창밖 너머의 풍경을 흘긋 보던 그는 지루하다는 듯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아무도 안 오는데. 그냥 가도 되냐?]

약속한 시각이 되자 도원은 1초도 기다릴 생각 없다는 듯 현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늦기까지 하는 미지의 상대를 기다려 줄 만큼 인내심이 깊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 곧 올 거야.]

현우의 답장은 빨랐다. 답장이 안 오면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었는데. 아쉽게 된 도원이 혀를 찼다.

서현우는 도원이 유일하게 빚진 인간이었다. 어디 그뿐일까. 중학교 때부터 함께 해온 친구이기도 했다. 그는 도원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부탁’이라는 걸 하지 않던 서현우가 어느 날 갑자기 부탁이 있다고 했다. 마치 평생 마법의 램프를 지니고만 있다가 마침내 지니를 불러 소원을 빌 듯 오랜 기간 아무 일도 없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그만큼 서현우의 부탁은 특별했고, 거절할 수 없었다.

-부탁이 뭔데?

부탁이 있다길래, 십중팔구 돈과 관련된 일이라 생각했다. 강도원에게 있는 거라곤 돈뿐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는 예상과 달리 뜬금없는 부탁을 해왔다.

-소개팅에 나가줘.

-뭐?

소개팅을 나가 달라는 터무니없는 부탁을 듣고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고, 다음엔 누구 짓인지 짐작하게 됐다.

‘어머니, 민 여사의 짓이구나.’

연애니 결혼이니 하라고 부추기던 사람은 그의 인생에 단 한 명뿐이었다. 하다못해 서현우까지 이용하다니. 어머니의 비겁함에 기가 찼지만, 한 번은 어울려 주기로 했다.

서현우 그놈이, 워낙 간절했으므로.

소개팅 상대는 누가 나오든 관심 없었다. 빨리 끝내고 자리를 떠나고 싶을 뿐이었다. 도원은 분초까지 세며 실소를 터뜨렸다.

‘감히 날 기다리게 해?’

누군지 몰라도,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몰라도 잔뜩 망신을 줄 계획이었다. 도원은 초 세기도 지겨워져 창밖으로 다시 시선을 던졌다.

그 순간, 누군가 창밖을 빠르게 스쳐 갔다. 다급하게 달리던 여자는 곧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도원이 앉은 창가 자리를 찾아오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늦어서 죄송해요.”

헉, 헉…. 가쁜 호흡을 내쉬며 여자가 말했다. 여자의 얼굴을 마주한 도원의 입술이 미세하게 벌어졌다.

“예상보다 더 차가 막히는 바람……에.”

이유를 설명하던 여자가 도원의 얼굴을 보고 멈칫했다. 마주하고 보니 아는 얼굴이었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몸이 얼어붙었다.

“가…”

혀까지 얼어붙은 것인지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강도원.’

그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그가 먼저 여자의 이름을 불렀다.

“이도화.”

10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으나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연한 메이크업이 발린 얼굴은 10년 전, 그 앳된 얼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깨까지 내려온 가지런한 단발에선 복숭아 향이 났다.

‘아, 복숭아.’

그녀에게서 여전히 복숭아 냄새가 난다는 사실에 일순 가슴이 울렁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소개팅에 나오리라곤 꿈에도 몰랐다.

“네가 왜… 여기에.”

이도화가 당황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상대를 모르고 나온 건 피차일반인 듯했다. 놀라기는 도원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놀랄 것 없다는 태도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소개팅하려고.”

“어……?”

“소개팅하려고 나왔지.”

서현우의 부탁에 어쩔 수 없이 나온 자리였다. 진짜 소개팅이 목적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음에도 그는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그, 그래?”

가만히 서 있기 민망했는지 그녀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토요일 이른 오후의 햇살이 내려앉은 창가 자리. 창문 너머로는 줄지어 핀 벚꽃들이 살랑였다. 봄의 오후에 어울리는 정경 사이, 두 사람이 있었다.

“너는?”

이번엔 도원이 물었다.

“어?”

“너는 왜 여기 있어?”

던져진 질문 앞에 도화의 두 눈이 흔들렸다. 그녀가 동요하는 모습을 보니 전신에 가벼운 흥분이 일었다.

“나도, 그… 소개팅하려고.”

“남자 만나려고?”

흔들림 없이 침착한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그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이전에 알던 강도원과는 사뭇 다른 부드러움에 위화감이 들었다.

“……응.”

“그래. 넌 아직도 복숭아 냄새가 나네.”

그녀가 느꼈던 위화감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의 눈이 한순간에 차갑게 변했다.

“짜증 나게.”

아직도 복숭아 냄새가 나는 게 그에겐 짜증 나는 일인 건가. 그의 말을 가만히 곱씹던 도화의 고개가 살짝 아래로 기울어졌다.

짜증이라. 뭐, 상관없다. 언제는 서로에게 상냥했던가. 10년 전 서로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이 자리도 그에겐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불편한 재회일 터였다.

“남자는 왜 만나려고? 돈줄이 필요해서? 아님, 몸이 달아서?”

무례한 질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도화는 침을 꼴깍 삼키며 생각을 정돈했다. 예상치 못한 상대를 만나 혼란스러운 데다가 가슴이 마구 뛰어도 차분히 생각해야 했다. 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따르고, 그 결과의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하니까.

“어느 쪽도 아니야. 그러는 너는 왜 여자를 만나려고 하는데?”

“남자가 여자를 만나려는 이유야 뻔하지 않나?”

“그래? 난 모르겠는데.”

“순진할 나이는 지났지 않아? 아직도 열아홉인 것처럼 구네.”

열아홉. 그 단어에 이상하게 가슴이 울컥했다.

“밤 상대, 놀이 상대, 결혼 상대.”

그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읊조렸다.

“어느 쪽이든 밤이 즐거워야 구미가 당기겠지.”

“밤만 즐거우면 된다는 식으로 들리네.”

“잘 들은 거야, 그럼.”

생글거리는 그의 얼굴을 지그시 보던 도화가 이내 눈길을 돌려버렸다. 그런 그녀와 달리 도원은 그녀의 새초롬한 얼굴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누구 소개받고 나왔어?”

도원의 질문에 그녀는 머뭇거리며 대답을 망설였다. 길어지는 침묵에도 도원은 느긋하게 기다렸다.

“…동창.”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누구라고 꼭 짚어 표현하지 않은 모호한 대답에 도원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동창 누구.”

“……서현우.”

그의 집요함에 도화는 막다른 길에 몰린 기분으로 대답했다. 그녀는 불과 일주일 전에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