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유명 아이돌이 나에게 고소장을 보냈다. 내가 인터넷 게시판에 그를 성희롱하는 글들을 썼기 때문이다.

그런 글들을 올리면 고소당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유명인이라면 많이 바쁘니까 내가 쓴 게시글 같은 건 신경 쓸 리가 없다는 생각으로 그런 글들을 썼다. 아마 나와 같은 이유로 고소당하는 모두가 그렇겠지만.

최근 뜨고 있는 남자 아이돌 그룹 ‘Dahlia Prince 12’. 그룹 이름에서도 유추해 볼 수 있듯이 열두 명의 남자 아이돌로 이루어진 그룹이다. 그룹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멤버 이로. 나는 그에게 고소당했다.

이로. 나이 24세. 데뷔하자마자 인터넷에 ‘웬만한 여자 아이돌들 다 씹어 먹는 비주얼의 남자 아이돌’이라는 글이 올라오면서 유명해졌다. 솔직히 보컬이나 댄스 역량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사진밖에 본 적 없으니까.

사실 별로 성희롱이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나는 성격이 꽤 많이 이상해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나빠진다. 이로에 대한 성희롱 게시글들을 올린 이유는 그것뿐이었다.

나는 원래부터 성격 때문에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이었지만, 그래도 범죄자는 아니었다. 아무런 범죄도 저지르지 않은 것. 내 인생에서 자랑할 만한 일은 그것뿐이었다. 그렇지만 이젠 그것조차도 자랑할 수 없게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고소장을 전해 주기 위해 찾아왔을 때, 부모님이 회사에 계시는 시간이었던 건 정말로 다행이었다. 부모님이 이 고소장을 보게 되면 나를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마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미성년자라는 점이다. 촉법소년은 아니지만. 찾아가서 진심으로 사과하는 척이라도 하면 어려서 그랬다고 생각하고 고소를 취하해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

이로의 소속사는 버스로 환승 없이 30분 만에 갈 수 있었다. 찾아가기만 한다고 해서 이로가 나를 만나 줄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지만 범죄자가 되는 건 싫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해볼 것이다.

이로가 소속된 소속사의 문은 자동문 형식이었다. 버튼을 누르고 찾아온 용건을 이야기하면 직원이 문을 열어 주는 것 같다. 솔직히 조금 무섭지만, 그래도 버튼을 눌러 보았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직원이 친절한 말투로 나에게 찾아온 용건을 물어보았다. 내가 여기를 왜 찾아왔는지 전부 알게 되면 더 이상 친절하지 않겠지만.

“이로 씨를 만나고 싶어서요. 아, 저 사생팬 같은 거 아니에요. 오늘 이로 씨의 이름으로 저한테 고소장이 왔어요. 사과드리고 싶어서 찾아온 거예요.”

직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을 열어 주었다. 자동문이 스르륵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직원이 문을 열어 주긴 했지만, 들어온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이로를 만날 수 있는지를 모른다.

이로가 지금 소속사 건물 안에 있다고 해도, 굉장히 큰 건물이기에 이로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다니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아무것도 못 하고 제자리에 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만 하고 있었다. 그 상태로 3분 정도 지났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내 등을 노크하듯이 두드렸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저 찾아오신 분 맞으시죠?”

내 등을 두드린 사람은 이로였다. 믿기 힘들지만 정말이었다. 이렇게 생긴 사람이 세상에 이로 이외에 더 존재할 리가 없으니까. 이로는 실물이 사진보다 더 예쁜 것 같다. 이렇게 예쁜데 진짜로 남자인 걸까.

잠시 동안 잊고 있었다. 내가 이로를 찾아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는 걸. 나는 이로에게 고소를 취하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찾아왔었다. 이걸 어떻게 말로 꺼내야 할까.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고 있는데. 그래도 용건을 빨리 말하지 않으면 이로가 다시 돌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집에 고소장이 온 것 때문에 이로 씨를 찾아왔어요.”

이로에게만 들릴 것 같은 정도의 크기로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다른 사람이 들었으면 어쩌지. 하지만 이제 와서 이런 걱정을 한다고 해도 이미 집에 고소장이 왔다고 소리 내서 말했고, 정말로 누군가 들었다고 해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일단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얘기할까요.”

이로가 나에게 말했다. 어디로 가려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지만, 그래도 일단 따라가야겠지. 애초에 나는 이로의 말을 거절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이로가 나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전부 해야만 고소를 취하해 줄 것이다. 어쩌면 이로가 나한테 불가능한 일을 요구할 수도 있지만.

***

“정말 이 글들을 다 본인이 썼다고요?”

“…네.”

이로를 따라 도착한 곳은 평범한 아파트였다. 이 아파트가 어떤 곳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로가 사는 곳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 자신을 성희롱하는 게시글들을 쓴 악플러를 자신의 집에 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로만큼 유명한 연예인이라면 더 그렇겠지.

“여기 저를 보고 열 번 뺄 수 있다고 적혀 있는데, 정말인가요?”

“…아뇨. 그냥 쓴 거예요. 한 번도 이로 씨 보면서 그런 거 해본 적 없어요. 정말로요.”

“사실대로 말해 줘도 되는데.”

이로가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쓴 게시글을 소리 내서 읽지 말아 줬으면 좋겠지만 뭔가 부탁할 처지가 아니기에 그냥 조용히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나는 이로를 보면서 그런 걸 한 적이 없다. 이게 사실이다.

“고소를 취하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찾아오신 건가요?”

“…네.”

그 일 이외에는 내가 이로를 찾아올 이유가 없다. 나는 이로를 평생 한 번도 만날 일 없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고, 소속사까지 찾아오면서도 이로를 만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범죄자가 되지 않기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기에 여기까지 찾아온 거지만.

“알고 있었어요. 저를 찾아와서 고소장 얘기부터 꺼내는데 어떻게 몰라요?”

“…확실히 그렇네요.”

이로는 나쁜 사람이 아닌 것 같지만, 대화하다 보니 살짝 무서운 기분이 든다. 어째서 무서운 기분이 드는 건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이 기분은 절대로 착각이 아니다.

“그런데 그거 알아요?”

“…그거라고만 말씀하시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이로가 유명 아이돌이라는 사실 때문에 무섭게 느껴지는 거겠지. 원래부터 다른 사람이랑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유명 아이돌과 대화를 한다면 무서운 기분이 드는 게 당연한 일이니까.

“사실 전에도 고소를 취하해 주길 바라고 저를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렇겠죠. 유명한 아이돌한테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많으니까요.”

“그중에서 제가 고소를 취하해 준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 같아요?”

나한테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로의 말을 하나라도 무시한다면 고소를 취하해 주지 않는 쪽으로 이로의 마음이 기울 것이다.

“…모르겠어요.”

“네, 모르는 게 당연한 거예요. 제가 고소를 취하해 준 사람은 이제까지 한 명도 없었으니까요.”

이로는 고소를 취하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아직 해볼 수 있는 일은 몇 개 남아 있었다. 집에만 틀어박혀서 이상한 사이트에 아이돌을 성희롱하는 게시글이나 쓰는 사회 부적응자의 무릎에는 그다지 큰 가치가 없겠지만, 그래도 일단 꿇어 보았다. 이로는 약간 당황한 것 같다.

“…아무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을 때부터 다들 저를 싫어했는데, 제가 범죄자가 되면 사람들은 저를 지금보다 더 싫어하게 될 거잖아요. 그게 너무 무서워요. 제발 고소 취하해 주시면 안 될까요.”

불쌍해 보이기 위해서 아무 말이나 했지만, 말하고 보니 그게 전부 사실이었다는 게 너무 비참하게 느껴져서 눈물이 나왔다. 이대로 살아갈 바에는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았으면 제일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제가 시키는 거 다 하면 고소 취하해 줄게요.”

잠시 동안 고민한 이로가 말했다. 이로의 마음을 돌리는 데에는 성공한 것 같다. 이로가 나한테 뭘 시키고 싶은지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지만,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면 이로가 무엇을 요구하더라도 그대로 하면 된다.

“…제가 어떤 걸 하면 되나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지금 가져올게요.”

이로는 무언가를 가지러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간 이로는 잠시 뒤 프릴과 리본이 잔뜩 달린 드레스를 가지고 나왔다. 이로가 나에게 뭘 시키고 싶어서 저 드레스를 가지고 나온 건지 이유는 알 것 같지만, 저런 걸 가지고 있는 이유는 전혀 알 수 없다.

“왜 제가 이런 옷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한가요?”

“…네.”

솔직하게 대답해도 괜찮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거짓을 말하는 게 좋을지, 사실을 말하는 게 좋을지 헷갈리는 상황이라면 사실을 말하는 게 더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제발 틀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이상한 사람들이 소속사를 통해서 저한테 이런 옷을 자주 보내요. 성희롱의 일종이죠. 막 인터넷에 이상한 글 쓰고 그런 것만 성희롱이 아니니까요. 제가 입어 주길 바란다는 의미로 이런 옷을 보내는 거니까요. 입어 줄 마음은 없지만요.”

자신이 성희롱을 당했으니까 성희롱으로 갚겠다는 뜻일까. 이 정도만으로 범죄자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정말로 싸게 먹히는 거겠지.

“…여기서 갈아입으면 되는 건가요?”

“저는 방 안에서 기다릴게요. 다 입으시면 불러 주세요!”

이제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는 겉으로는 친절해 보이지만 무서운 사람이다.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이상한 게시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냥 계정을 탈퇴해 버려도 상관없겠지. 아니면 아예 컴퓨터를 갖다 버릴까.

“…다 입었습니다.”

이로는 내 말을 듣고 바로 방에서 나와서 나를 보았다. 이로는 드레스를 입은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나에게 이런 걸 입힌 게 굉장히 행복했던 것 같다. 미친 사람한테 잘못 걸린 걸까.

“며칠 전에 DM으로 이런 내용의 만화를 보낸 사람이 있었던 것 같네요. 그 만화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아저씨가 예쁘게 생긴 남자아이에게 드레스를 입힌 뒤에 ‘카메라를 보고 이름과 나이를 말해 주세요.’라고 말했어요.”

이로는 뭔가 바라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잠시 이로가 뭘 바라고 저런 말을 한 걸까 생각해 보았고, 답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은지유입니다. 나이는 열여덟 살입니다.”

“남자아이가 카메라를 보고 이름과 나이를 말하니까 카메라를 든 아저씨가 ‘잘했어요. 이제 다음으로 넘어갈까요.’라고 말했죠.”

다음이라는 게 내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겠지. 아마 확실하게 아닐 것이다. 이건 만화 속이 아니라 현실이니까. 하지만 정말 이로가 원하는 게 그런 거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도 해보고 싶지만, 일단 지유는 미성년자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여기까지만 할게요. 고소는 취하해 줄게요. 옷 갈아입고 집에 가도 돼요.”

이로는 다행히 상식적인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나는 최대한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기에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다시는 그런 게시글을 쓰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네. 앞으로는 조심해 주세요.”

내가 현관문을 열기 위해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을 때, 이로가 따라와서 나를 멈춰 세웠다.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걸까. 조금이라도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은데.

“저는 지유가 매일매일 저를 찾아와 줬으면 좋겠어요.”

이로는 확실히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미쳤다고 내가 여기를 다시 찾아와? 차라리 학교를 다시 나가고 말지. 애초에 내가 이로한테 한 짓이 있는데 양심이 멀쩡한 인간이라면 다시 한 번 찾아올 수 있겠어?

“저는 이로 씨를 성희롱하는 글을 쓴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빈말이라도 다시 와 달라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 확실히 방금 제가 한 말은 권유하는 것처럼 들렸을 수도 있겠네요.”

이로는 주머니에서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서 갤러리를 보여주었다. 갤러리에는 드레스를 입은 내가 찍힌 동영상이 있었다. 어느 틈에 찍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동영상이 찍혔다는 그 하나뿐이다.

“그럼, 조심해서 가고 내일 다시 봐요.”

정신 나간 새끼. 이로는 정말로 정신 나간 새끼였다. 차라리 그냥 고소당하는 게 좋았을 것 같다. 이 새끼를 찾아오는 게 아니었는데. 나한테 뭘 바라고 이러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냥 내가 괴로워하는 걸 즐기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

두 달 전, 나는 유명 아이돌인 이로에게 고소를 당했었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이 알기 전 어떻게든 이로에게 고소 취하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를 찾아갔다. 다행히 이로는 고소를 취하해 주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이로에게 다른 약점을 잡히게 되었다. 이로는 본인의 손에 있는 나의 약점을 이용하여 나를 계속해서 불러냈다.

이로를 여러 번 더 만나야 한다는 게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고 싫었지만, 지금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이로를 여러 번 다시 만나 본 지금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로는 내가 생각한 만큼 정신 나간 사람은 아니었다.

이로는 나를 불러낸 다음 잡담을 하거나 장난을 쳤다. 그렇지만 이로는 장난을 할 때 이로 본인이 생각하는 기준의 선은 절대로 넘지 않았다. 이로가 넘지 않으려는 선은 평범한 사람들이 넘지 않으려는 선보다 훨씬 뒤에 있었지만.

이로에게 불려 간 처음 몇 번은 이로의 장난이 너무 무섭고 싫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로가 본인의 기준이라고 해도 선을 절대 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무섭지는 않다. 이로의 장난이 싫은 건 지금도 똑같지만.

“띵동,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확인해 주세요!”

주머니 속 휴대폰에서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나는 휴대폰을 열어서 문자를 확인했다.

[내일 오후 5시까지 찾아와 주세요.]

이로는 항상 문자로 나에게 시간을 통보했다. 유명 아이돌인 이로는 바쁘니까 내가 시간을 맞출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한 거지만.

나는 학교를 제대로 나가지 않는 중이고, 이로를 제외하고는 약속을 잡을 만한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이로가 나를 몇 시에 불러도 나갈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이로가 그다지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로가 내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그렇지만 이로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지금도 똑같다.

이로에게 용서도 받았고 나도 반성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이로를 성희롱하는 수많은 글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전과가 있다. 결정적으로 이로는 내가 어떤 글들을 올렸는지 전부 기억하고 있다.

이로가 그 글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내가 올린 글들에 대해 말하면서 나를 놀리지 못할 것이다.

이로는 꽤나 자주 내가 올린 글이 어떤 내용이었는지를 말하면서 나를 놀린다. 그렇지만 한번 나를 놀린 게시글의 내용으로는 절대로 다시 놀리지 않았다. 이건 이로가 내가 올린 게시글의 대부분을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자신에게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을 편하게 대하는 건 평범한 양심을 가진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사회 부적응자이긴 하지만, 양심 같은 건 평범한 인간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나는 이로를 편하게 대할 수 없다.

지금은 오후 11시이다. 졸리지 않은 상태로 내일 오후 5시까지 이로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지금 자는 게 좋을 것 같기에, 나는 침대에 누웠다.

***

나는 이로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초인종을 눌렀다. 사실 나는 여기가 이로의 집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바보가 아니라면 좋지 않은 일로 만나게 된 사람을 자진해서 집에 데려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로가 나에게 자신의 집 주소를 알려 준 이유는 그가 바보여서가 아니었다. 이로는 내가 이로의 집 주소를 알게 되더라도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자신의 집 주소를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노출한 것이다. 인간은 개미를 경계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로도 나를 경계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개미는 정말로 열심히 살아가는 생물이다. 나는 열심히 살아가지 않는다. 나는 개미보다도 못한 인간이다. 슬프지만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로가 왜 개미보다도 부족한 인간인 나한테 관심을 가지는 건지 전혀 알 수 없다. 이로 같은 유명 아이돌이 나 같은 장점도 특기도 없고, 열심히 살지 않는 사회 부적응자한테 관심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