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제국 엔, 대륙을 지배하는 두 개의 제국 중 하나이며, 힘과 예를 숭상하고, 타민족에게 배타적인 강대국이 바로 엔 제국이다. 추운 북쪽 대륙에 그 수도를 두고, 어려서부터 무예를 익히며 자라나는 그들은 대륙의 어느 민족보다 강하고 자신들의 황제에게 충성했다.''15년 전 젊은 황제 건윤이 등극하며 일으켰던 영토 확장 전쟁을 끝낸 엔은 주변 대륙의 다섯 개 나라를 굴복시키고 그곳에서 받아들이는 공물과, 정복한 남쪽의 땅에서 들어오는 풍성한 수확물로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광기에 젖어 대륙을 향해 검 끝을 겨눴던 ‘미친 사자’ 건윤은 어느 때보다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 낮은 세금과, 복지 시책으로 폭군이라는 오명을 씻고 현군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었다. 단지, 백성들을 위해 내려진 수많은 시책과 칙명 중 이질적인 하나의 명령이 짓궂은 농담과 함께 은근한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 수 없었다.''''''엔의 황궁 중 하나인 서연궁, 황제의 황후인 서연 황후가 봉해졌던 날 그녀에게 내려졌던 그곳은 원래 궁성 가장 안쪽의, 말 못할 사정이 있는 왕실의 죄인을 유폐시키는 정도로 썼던 후미진 거처였다. 대국의, 그것도 제 1황후의 거처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옛 허름한 별궁에서 그녀를 끌어내기 위해 황제가 머릴 쥐어뜯을 정도로 고민했다는 얘기가 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녀의 품격에 맞도록 성을 고치고, 황제가 많은 정성을 쏟아 선물했다는 사시사철 희귀한 꽃으로 가득한 정원이 있어 황궁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곳이 되었다.''미친 사자를 순한 양으로 길들였다는 여인, 그리고 오직 자신의 힘과 현명함으로 황후의 자리를 선택한 여인, 연은 갑작스럽게 자신을 찾았던 황제가 본궁으로 돌아가자 미뤄졌던 산책에 나서기 위한 준비를 했다. ''“너희들이 감히, 황제의 칙명을 어긴단 말이냐!”'' 조금 전, 떠밀 듯 본궁의 밀린 업무를 보시라 밀어내었던 황제의 노기 어린 음성이 자신의 정원에서 울리는 것에 그녀는 깜짝 놀라 그대로 걸음을 멈춰 섰다. 자신이 머무는 전각으로 들어서는 정원과 접한 복도에서 황제가 태자를 비롯한 여러 황자, 황녀들을 무릎 꿇리고 언성을 높이는 것에 깜짝 놀란 황후는 걸음을 빨리 했다.''“폐하, 무슨 일로 아이들을 나무라십니까?”''변하지 않는 평온함과 따뜻함이 어린 음성으로, 말을 건네자 금세 아이들을 죽일 것처럼 노려보고 있던 황제는 흠칫 하며 황후를 돌아보았다.''“황후.”''“너희들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황제께서 이리 화를 내시는 것이냐?”''“어마마마, 단지 저희들은…….”''태자 환은 뭔가를 말하려다가 자신을 노려보는 부친과 시선이 마주치자 움찔 놀라 어물거리며 입을 다문다. 황후는 서른을 훌쩍 넘겼음에도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아름다운 얼굴로 태자를 향해 미소했다.''“왜 그러느냐? 말을 해 보거라. 무슨 일입니까, 폐하?”''“이 애들은, 감히 내가 내린 칙명을 어겼소. 그것은 반역죄에 준할 정도로 엄한 죄란 말이오, 그러니 황후가 상관할 일이 못 되오.”''“아니 그런 큰 죄를 이 아이들이 저질렀단 말씀이십니까? 예로부터 엔은 나라를 강성하게 하는 힘과 함께, 현자의 말씀으로 이어지는 예를 중히 여기는 곳. 그런 이 나라의 황자, 황녀가 황제께서 내리셨을 중한 칙명을 어기다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대체 이 아이들이 어긴 칙명이 무엇입니까?”''“함구령을 어겼소.”''서연 황후의 놀라는 말에 황제는 노기를 수그려 트리고 떨떠름한 표정이 되어 버린 채로 중얼거렸다. ''서연 황후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태자 쪽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들 역시 얼굴 가득 난감한 표정이 어려 있어 뭔가 중요한 것을 어긴 것은 분명한데, 그녀는 그렇게 중요한 함구령이 내려졌다는 말을 들은 일이 없었던 것이다. 이곳 황궁에 들어와 십여 년을 훌쩍 넘기는 동안, 권력과는 담을 쌓고 별궁에 유폐된 듯 조용하게 살아오던 그녀였으나 황제에게 백성들을 위하라 줄곧 간언을 하며 그 시책을 논할 정도로 현명함을 갖춘 여인인 만큼 세상일에 어둡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