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 그늘 아래에 서면''''새벽의 어스름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알람 소리에 선영은 졸린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깼다. 알람을 꺼버리고 잠에서 아직 덜 깬 눈으로 휘청휘청 선영은 욕실로 갔다. '불을 켜고 욕실 거울 앞에 선 선영의 모습은 피곤함이 가시지 않았는지 얼굴이 제법 푸석푸석하다.'‘나도 이제 제법 나이가 들었군. 몇 년 전만 해도 밤을 새도 끄떡없었는데…….’'해놓은 일도 없이 자꾸 나이만 들어간다는 사실이 슬프다. 선영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세월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잘도 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세수를 하기 위해 물을 틀었다. 피부에 닿는 물의 감촉이 제법 차갑다.'‘보일러를 틀까?’'잠깐 그런 생각을 했지만 피부에 닿는 차가운 감촉이 그리 싫지는 않아 선영은 찬물로 세수하고 머리를 감고 양치를 했다. 욕실을 나와 현관문을 여니 새벽의 상쾌한 기운이 선영의 몸을 감쌌다.'‘아침저녁으로는 이제 제법 쌀쌀하네.’'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선영은 출근준비를 했다. 6시 30분.'문을 잠그고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어가며 습관적으로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곧이어 울려 퍼지는 스타이프의 메마른 목소리.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아직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버스정류장에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일찍 출근하는 직장인,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 어제의 피곤함 들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그들의 표정은 그리 생기가 있어보이지는 않았다.'선영이 탈 버스가 왔다. 버스에 올라타고 뒷자리를 찾아 자리에 깊숙이 앉아 눈을 감고 조금 잠을 청해본다. 어차피 긴 잠은 아닐 테지만…….'선영의 집과 직장은 버스로 15분 거리에 있다. 선영의 회사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이다. 서울에 본사가 있고, 서울과 울산, 창원에 공장이 있는데, 선영이 근무하는 곳은 서울의 2공장이다. '회사에 도착한 선영은 정문에서 본관까지 난 길을 걸어갔다. 길 양옆으로 대나무가 빽빽이 늘어서 있는 이 길은 회장님이 대나무를 워낙 좋아하셔서 심으셨는데, 마치 대나무 숲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그 길을 걸으며 선영은 처음 입사했을 때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이 길이 어찌나 길어보이던지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출근시간에 늦었을 때는 이 길이 얼마나 웬수 같던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문득 그 때를 떠올리자니 어느새 선영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상쾌한 공기, 메마른 스타이프의 목소리, 그리고 이제는 정겨운 대나무 길.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어느덧 피곤함이 싹 가시는 것 같았다. 오늘처럼 이렇게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이 길을 걸어본다면 어느 누구라도 이 길의 진가를 알게 될 거라고 선영은 생각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본관 건물에 도착했다. 출근카드를 체크하고 1층 로비에 들어서니 당직을 서는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다.'‘오늘 당직이 진우 씨 아니었나? 씻으러 간 모양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