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너에게 가고 있어.

큰 창을 가리고 있는 암막 커튼은 단 한 줄기 빛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집주인의 강력한 의지였다.

하지만 한 낮의 태양은 틈새를 노리고 기어이 집 안에 스며들었다. 안쓰럽다는 듯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마침 휴대폰이 울렸다.

“제발….”

짜증이 섞인 목소리는 소파에 누워있는 여자에게서 나온 거였다. 얼핏 보면 사람이 누워있는 줄 모를 만큼, 가녀린 체구의 그녀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저건 왜 꺼지지도 않는 거야….”

휴대폰을 충전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던지기도 했는데. 왜 저건 항상 멀쩡하게 살아나는 걸까.

“응. 나 살아있어.”

누군지 확인하지도 않고 받았지만 당황할 일은 없었다. 최근 통화 기록은 전부 같은 이름이었으니 이번에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야, 오늘 대박이야. 날씨가 아주 사람 잡는다니까? 빨리 커튼 걷어봐.

“오영이.”

-빈아, 진짜 진심이야. 내 평생 이런 하늘을 본 적이 없다니까?

“애들은 안 봐? 네가 하늘만 쳐 보고 있다는 걸 학부모들도 다 아실까?”

-에이씨, 됐어! 목소리 들으니까 잠 깼네. 일어난 김에 뭐 좀 먹고, 청소도 좀 하고, 또….

툭, 끊어버린 전화기에서는 더이상 쨍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길게 쉬니 어깨가 바들바들 떨렸다. 먹은 게 없어서 그런지 숨 한 번 크게 쉬는 것도 여의치 않다.

“어떻게 끄는 거야, 이거. 왜 버튼은 다 없애버려서는… 쯧. 이과 놈들.”

매끈한 액정에 화풀이를 하다가 대충 던져버리고 마는 모양새가 확실히 기계치다웠다.

부스스한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 다리를 소파 아래로 내리자 폭신한 러그가 느껴졌다. 뻑뻑한 눈을 몇 번 깜빡이고 테이블 위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지잉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쪽 벽면을 거의 통 창으로 내다시피 한 탓에 암막이 걷히자 엄청난 햇볕과 함께 한기가 들이쳤다.

“으악….”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 그대로 소파에 얼굴을 묻는 모습이 꼭 뱀파이어라도 되는 것 같았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다시 몸을 일으킨 여자는 충혈된 눈으로 시계를 확인했다.

[2020. 7. 11. 14:00:02]

“미친….”

겨우 하루가 지나있었다. 마지막으로 시계를 확인하고 한참이나 지난 것 같은데 겨우 하루.

“뭐가 이따위야….”

무릎을 세워 올려 얼굴을 묻은 여자의 목소리에 아주 조금, 물기가 번져있었다.

“시간이 왜 이렇게 천천히 가. 지구가 제대로 도는 거야 마는 거야.”

무릎을 끌어안은 두 팔에는 푸른 멍 자국이 여기저기 도장처럼 찍혀있었다. 접어 올린 다리에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까지 그녀가 밟고 있던 러그 위에는 다 비워진 양주병이 몇 개, 두꺼운 소설책이 몇 권.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퍼즐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다.

사빈.

그게 그녀의 이름이었다.

“이준. 천재라더니 순 뻥이었지?”

그녀가 기다리는 사람은 이준. 2년 전, 떠나버린 그를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사빈의 일상에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씻는 것도… 심지어는 숨 쉬는 것마저 그를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곧 돌아오겠다는 그의 말을 믿고 있으니까.

얼마만큼 왔는지. 어디까지 온 건지. 알 수 없지만, 오늘도 한 걸음은 자신을 향해 걸었을 거라 위로하면서 살고 있었다. 아니 버티고 있었다.

“시간 잘 간다며. 화살처럼 잘 간다며!”

원망 섞인 목소리를 뱉어내곤 물 한 컵을 떠다 마셨다. 뱉은 말을 다시 삼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멍하니 넋을 놓고 있던 사빈이 향한 곳은 복도 끝에 있는 작업실이었다. 거실보다는 작았지만, 해가 가득 들어오는 통창으로 흔들리는 나무들이 보였다.

쨍한 여름의 색깔을 띤 나뭇잎들은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그리고 창 앞에 세워져 있는 커다란 캔버스에는 누군가의 얼굴을 그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 위로 나뭇잎 그림자가 겹쳐지자, 그림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눈부시지?”

사빈은 그림을 바라보면서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아마도 그림에 그려진 대상에게 하는 말이겠지만. 어쩌면 본인에게 하는 말인 것도 같았다.

왜냐하면, 그녀가 선글라스를 꼈기 때문이었다. 얼굴을 전부 가릴 듯한 커다란 선글라스를 끼고는 그림을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나 스물여덟 살이야, 이제 어떡할래, 이준?”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었다. 스물여덟 살 생일에는 그와 하기로 한 게 있었는데. 지금 곁에는 그가 없었다.

“거 봐. 내 말이 맞지?”

살짝 올라가 있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끝끝내 그 자리를 지키고는 있었다.

선글라스 속 사빈의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다. 과거의 오늘. 그를 처음 봤던 5년 전,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느라, 그녀의 발아래 떨어져 있는 작은 메모지를 발견하지 못했다.

-너에게 가고 있어.

***

쿵, 하는 소리에 바깥에 있던 사람들이 움찔 놀랐다.

소리는 굳게 닫힌 육중한 문 안쪽에서 들렸지만, 그 누구도 함부로 들어가 보지 못했다. 방금전 그 소리가 어떤 의미인지 다들 알기 때문이었다.

“어쩌냐, 진짜….”

걱정을 잔뜩 담은 목소리에는 해줄 게 없어 무력한 마음도 함께였다.

“좀 말려, 형. 언제까지 보고 있을 건데?”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 역시 걱정스러워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무력하여, 피붙이를 괜히 원망하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냅 둬. 자기 목숨 지가 버리겠다는데.”

냉랭한 목소리는 여자의 것이었다. 얼핏 들으면 꽤나 무심한 말을 뱉은 여자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으나,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다.

세 사람의 시선이 향한 곳은 굳게 닫힌 문이었다. 그들 모두 다시는 저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모든 일의 시작이자, 걱정하는 이의 고통과 눈물이 바다를 이루고 있는 곳.

“후… 내가 들어가 볼게.”

가장 연장자인 듯한 남자가 일어섰다. 꽝꽝 얼린 생수 한 병을 들고 문을 여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아오… 야, 준아… 이게 다….”

문을 열자마자 뜨끈뜨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아마도 조금 전까지 작동했을 기계를 쳐다보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형제에게 물을 내밀었다. 그 잠깐 사이에 얼음이 녹아 물이 뚝뚝 떨어졌다.

말없이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그를 잠시 쳐다보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널부러진 수많은 책들, 수없이 써 내려간 수식들이 빼곡한 종이들. 여러 가지 부품과 연장들… 방이라기보다는 창고나 작업실이라 부르는 게 어울렸다.

“이준. 다녀왔어…?”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그의 고개가 끄덕이자, 남자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서 짓는 애매한 표정이었다.

“…봤고?”

“응… 잠깐.”

“보기만 했구나.”

돌아온 대답은 없었으나, 그의 시무룩한 얼굴이 답이었다.

까칠해진 얼굴,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 충혈된 눈동자. 생기라고는 없는 얼굴에 남자의 걱정이 더 크게 자라났다. 힘들 거라 예상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준아.”

“형. 뭐가 잘못된 거지…?”

“준아.”

“대체 뭐가… 대체 어디가…!”

벌떡 일어난 그가 무언가 잔뜩 쓰여 진 벽면을 살피면서 중얼거렸다. 그는 이미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혼자만의 세계에서 고뇌했다.

백 년에 한 번, 세기에 한 번 나타날까 말까 하다는 천재 소리를 듣는 동생이었다. 수없이 많은 여행을 하면서도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 적 없는 그였다.

믿었던 연인에게 배신당하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행을 견디면서도, 그저 피식 웃고 마는 동생이었다. 가다 보면 끝은 있을 거라며, 오히려 자신을 다독이던 그였는데.

실패할 때마다 조금씩 그의 수명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죽어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준… 넌 최선을 다했어.”

이런 말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싫어서, 남자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좀 쉬어. 그래야 그 똑똑한 머리가 뭐라도 생각해낼 거 아냐. 어? 너, 인마….”

“형….”

그가 벽에 이마를 가져다 댔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것처럼. 그러다 결국 치솟는 감정이 버거워서 두 손으로 벽을 마구 쳐댔다.

“이해가 안 돼! 대체 뭐가… 왜 실패하는 거냐고!”

“준아!!”

그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급히 다가온 남자가 저지하자, 그는 벽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느새 눈물로 두 뺨이 축축이 젖어있었다. 서른은 넘어 보이는, 어른 남자의 얼굴을 한 그가 아이처럼 울부짖었다.

“아무리 해도 안 돼, 형…! 이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는데….”

그리고 남자는 한숨을 푹 쉬며 그의 옆에 주저앉았다. 해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형… 벌써 2년이 지나있었어. 점점 시간이 벌어져, 이러다가는….”

“방법이 있을 거야. 넌 꼭 찾아낼 거고.”

“아파 보였어. 혼자 너무 힘들어 보였다고….”

“…잘 견디고 있을 거야. 알잖아, 약해 보여도 강하다는 거.”

스스로 감정을 다스릴 때까지 형이라는 남자는 옆에서 기다렸다.

축축한 뺨을 두 손으로 훔친 그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지금껏 봐온 그 어떤 사람보다 강한 사람이니까. 힘들수록 씩씩해지는 여자라는 건 자신이 분명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여전히 아무렇게나 어질러놓고 살아?”

남자가 일부러 목소리를 밝게 했다. 이준이 조금이라도 힘을 내는 건, 그녀와의 기억을 떠올릴 때뿐이었으니까.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꺼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응. 엉망이지.”

“하긴, 이제 잔소리할 사람도 없으니 신났겠네.”

하지만 그마저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아니다. 너 대신 영이가 잔소리하겠네.”

“아마 대꾸도 안 할걸.”

“큭, 맞아 그건. 아니면 등짝이라도 때리겠지.”

“때릴 데가 어딨다고.”

애쓰는 티가 역력한 형의 마음을 알기에 이준은 곧 마음을 다잡았다.

“형. 이번엔… 정말 성공한 줄 알았어.”

눈물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자 이준의 얼굴이 제대로 드러났다. 시선은 허공 어디를 향해있었지만, 그가 보고 있는 건 조금 전 마주했던 장면이었다.

눈앞에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을 때 느꼈던 감정이 아직도 생생했다. 공기 중에 묻어있는 그녀의 향기가 너무 익숙해서 왈칵 눈물이 차오를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소파에서 잠들어있는 그녀를 본 순간, 심장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주 찰나의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는 걸. 성공이 아니라는 걸.

발에 채이는 그녀의 휴대폰을 무선 충전기 위에 올려주고. 그녀가 발 디딜 곳에 흩어져 있는 깨진 유리 조각을 소파 아래로 밀어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잠깐, 아주 잠깐이라도 그녀를 깨워 인사를 할까 말까.

“너무… 힘들 것 같았어. 내가 눈앞에서 또 사라지면 빈이가… 너무 아플 것 같아서.”

파리해 보였던 그녀의 안색이 안쓰러웠다. 마른 입술에 입을 맞추었지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인 듯 고요하게 잠에 빠져 있었다.

“보고 나니까… 더 미치겠어. 형.”

늘 함께 뒹굴었던 작업실, 커다랗게 그려진 얼굴, 좋아하던 물감 냄새… 점점 희미해지는 시야를 겨우 붙잡아 휘갈기듯 메모를 썼다. 제대로 쓰인 건 맞는지, 잘 놓였는지,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돌아와 버렸다.

“빈아….”

후회했다. 순간의 망설임을.

그녀의 눈을 보고 분명히 말해주고 올걸.

너에게 가고 있다고.

#01. 시간 여행자

2015년 여름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마들렌 때문이었다.

그 해, 처음으로 베이킹을 배웠고, 레몬 마들렌을 곁들인 커피 메뉴가 아주 잘나갔다. 월세 걱정은 없었지만, 첫 주에 월세를 내고도 남을 만큼 매출이 늘었던 게 기억이 난다.

“어서 오세요. 마가렛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나는 ‘마가렛’이라는 카페 주인으로 살고 있었다.

서화동이라는 작은 동네에 정착하게 된 이유는 순전히 조용하고 한적했기 때문이었다. 알고 찾아오는 이가 아니면 발길이 닿을 수 없는 곳이라,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은신할 곳으로 안성맞춤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1년 전부턴가,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이 골목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덕분에 카페는 잘됐지만, 유유자적 여유로운 삶과는 멀어지고 있었다.

핸드드립 커피와 레몬 마들렌, 그리고 카페 앞 작은 정원에 심어놓은 마가렛.

뭐가 어떻게 젊은이들의 취향을 저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다 보니 유명한 곳이 되어버렸다. 물론, 거기에 사장의 외모도 한몫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부모님께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