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을 쏘아보던 채윤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녀가 처음에 세워놓았던 야심찬 계획은 이미 물 건너 가버린 지 오래였지만 그가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물론 그가 알았다 해도 그를 피하면 되는 것이지만 한 건물에 같이 있는 이상 그를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신경질적으로 몇 번이나 머리를 쓸어 올렸지만 좋은 생각은 나지 않았다. 그녀가 질겅질겅 씹어버린 필터도 이미 그 형체를 찾기 힘들 지경이었다. '“젠장!” '그녀를 더욱 심난하게 만드는 것은 이미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는데도 아무런 기별조차 없는 재혁의 행동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 주차장에서 마주쳤는데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본 것이 전부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삐익- '“무슨 일이죠?”'“사장님께서 호출하셨습니다.” '“알았어요.” '‘올 것이 왔구나. 피한다고 능사는 아니지. 깨지더라도 부딪혀봐야지 어쩌겠어.’ '엘리베이터에 오른 그녀는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그가 자신에게 취할 행동들을 생각해보았고 많은 가정을 해보았지만 그 중 가장 강력하게 떠오르는 것은 무식하리만큼 화를 내는 그의 모습이었다. ''달칵.'“무슨 일이십니까?” '“진행 상황은 어떻습니까?” '“기존에 잡아 놓았던 기획안들은 대부분 인수인계 끝이 났고 남은 것은 패키지여행 상품에 관한 것뿐입니다” '“그렇습니까?” '“네”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녀의 손에는 식은땀이 배어 있었지만 서 있는 자세는꼿꼿하기만 했다. 창가를 보고 있던 재혁이 몸을 돌려 그녀를 마주 봤다. 항상 눈으로 말하던 그에게 아무것도 읽어 내릴 수가 없었다. 그것이 채윤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고 긴장 시키고 있었다. '“그동안 수고했습니다” '“아닙니다.”'“고맙습니다.” '“…….” '“그만 나가보세요.” '“예.”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것이 그녀를 허탈함과 상실감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녀가 예측했던 행동들 중에 그의 태연함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의 태연함은 무엇인가를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읽을 수가 없었다. 사무실로 돌아온 채윤은 규칙적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그의 속내를 추측해보았지만 도저히 잡히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