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에요. 신장이식. 투석만으로 버티기에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어요.”'다정은 일부러 목소리에 평소보다 더한 힘을 실었다. 환자 상태가 최악의 상황이라는 이야기를 보호자와 나누는 동안, 그녀 자신이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안타까운 감정에 휘둘려버리면 보호자 역시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휘말린다는 것을 길지 않은 전공의 생활에 깨달은 탓이었다. '다정은 말투를 단단하게 묶는 대신 대화를 나누는 내내 맞은편 여옥의 얼굴색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보통 이식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기 일쑤였다. 완치를 위해 그동안 쏟아 부은 숱한 수고와 수많은 돈이 끝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는 암담함과 함께, 앞으로 이식이라는 높은 장벽을 또 어떻게 넘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때문이었다.'“당장 해야 하나요? 신장이식 안 하면 우리 정우 아빠 죽어요?”'다박다박 물어오는 여옥의 질문에서 짤막한 한숨조차 묻어나지 않았다. 다정은 의구심이 가득한 눈길로 담담한 표정의 여옥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눈물을 쏟아내기는커녕 오히려 평온해 보이는 보호자의 얼굴은 차라리 무심하기까지 했다. 대단한 평정심의 소유자이거나 환자인 남편에 대한 일말의 애정조차 없거나, 둘 중 하나일 터였다. 다정은 속으로 혀를 찼다. 지난번 보호자는 이혼을 목전에 둔 남편의 전립선암 통보에 목을 놓아 울던데……. 하기야 부부지간 운우지정을 당사자 말고 그 누가 알리요. '“그 당장의 뜻이 오늘내일이라면 노, 조만간이라는 의미라면 예스예요.”'“선생님 얘기는 우리 정우 아빠가 조만간 신장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그 말이지요?”'“네. 일단 신장 기증을 받기 위해서 이식대기자 명단에 문경태 님 이름을 올릴 거예요. 크게 기대하지는 마세요.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씩 이식할 신장을 기다리는 환자가 태반이거든요.”'“신장 이식할 때까지 계속 투석하고 약 먹고, 그래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