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다스리는 자가 올곧게 다스리지 않고서 어찌 백성들의 삶이 평탄하기를 바랄 수 있단 말입니까? 기근과 전쟁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넋이 된 자들이 밤마다 구슬프게 울어 이 나라 방방곡곡이 필시 지옥이옵니다. 폐하께서는 어찌 그 소리를 듣지 못하신단 말입니까?” ' 탁! 탁자를 내리치는 소리에 홍문관 부제학이 고개를 든다. 진의 용안이 못마땅한 듯 일그러져있다. 진뿐 아니라 삼정승을 비롯한 여타 경연관들의 표정 또한 가히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 ‘묘국은 이미 국(國)으로서 위신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황제와 조정은 다스리지 않고, 백성은 다스림의 혜택을 받지 못하니 이것이 어찌 나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 그리 서두를 뗀 부제학은 묘국이 안고 있는 여러 현안들을 하나하나 들먹이며 황제와 조정을 질타했다. 부제학의 진언이 하루 이틀 이어져 온 것은 아니다. 틈만 나면 황권 강화가 어떻고, 다스리는 자의 도리가 어떻고, 백성들의 삶이 어떻고 입바른 소리를 하는 자이다. 진이나 조정대신들에게 부제학의 충언은 그야말로 쇠귀에 경 읽기였다.' 항상 있어온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융통성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척 보아도 황제의 심기 몹시 불편한 것이 역력하거늘 어찌 또 입바른 소리를 해 불편한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하는 것인지. 부제학을 돌아보는 신료들의 눈길이 고울 리 없었다.' 또 무슨 불호령이 떨어질까 잔뜩 긴장한 조정대신들을 뒤로 한 채 자리를 물러나는 진이다. 황제가 나가는 것을 보고도 크게 동요하는 이가 없다. 경연을 열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 했으며 정작 경연을 하시겠다 하고도 일각(15분)을 채우지 못하고 자리를 뜨기 일쑤였다. 늘 있어온 일이라 이상할 것이 없었다. 진이 자리를 뜨자 경연관들 또한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자리를 뜬다. 더러는 부제학을 돌아보며 변변치 않은 위인이라 혀를 차기도 한다. ' 정전에 홀로 남은 부제학이 답답한 듯 한숨을 몰아쉰다. 부제학은 소학동문시절 진을 가르친 학사 중 한 사람이었다. 황태자시절 진은 총명하고 똘똘한 아이였다.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장차 황제가 되면 묘국을 어찌 다스릴 것인지를 염두에 두어 소소한 것까지 물어오는 통에 곤욕을 치른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백성을 아끼는 마음과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바라보는 견해 또한 탁월했다. 묘국을 더욱 든든한 반석에 올릴 황제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선비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던 황태자가 어찌 이리 변한 것인지. 늘어지는 근심을 막을 길이 없다. ' 지금 이 나라에는 정치라는 것이 없다. 황제는 나라꼴이 어찌 되든 관심 밖이다. 조정대신들은 나라를 이끌고 백성들을 다스리는 일보단 제 잇속을 차리기에 더 바쁘다. 백성들은 흉년과 역병 같은 자연재해뿐 아니라 권력자들의 착취에 시달리느라 사는 것이 곧 죽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변방에는 소소한 부족들의 침입이 끊이지 않는다. 이러고서도 묘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