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다녀온다던 도은이 자리에 오자마자 서둘러 가방을 챙겨 들었다.' “너 왜 이래?”' 갑작스런 도은의 이상한 행동에 도혁이 놀라 물었다.' “오빠. 나 그냥 집에 갈래. 오빠들은 먹고 와.”' “설도은. 무슨 일이야?”' “그냥 생각이 없어. 나 먼저 갈게.”' 불안하게 흔들리는 도은의 눈동자가 애처롭게 보였다. 울음을 참는 듯 눈가엔 눈물이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저 자식 뭐야? 왜 그래?”' 도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도은의 뒤를 쫓다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오호. 얘기가 그렇게 된 거군.’' 도혁은 한쪽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건들거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도은을 쫓아가던 도혁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자 이상하게 생각한 도진과 도원이 그 뒤를 따라갔다.' “여. 이게 누군가?”' 도혁과 눈이 마주친 레이의 파란 눈이 시리도록 차가운 빛을 띠었다.' “내 여자? 얼마 전에 내 여자라고 큰소리 땅땅 치던 놈이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너 설마 우리 도은이 가지고 논 거냐?”' “뭐?”' 도혁은 자리에 앉아 있는 레이의 멱살을 잡아당겨 일으켜 세웠다. 당장이라도 한 대 칠 듯이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레이의 멱살을 잡은 도혁의 손을 도진이 잡아떼었다.' “진정하고 손 풀어.” ' 낮지만 힘 있는 도진의 목소리에 도혁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의 말을 따랐다.' 레이의 시선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 남자에게로 향했다. 도은의 남자들. 그녀와 함께 있었던 남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레이가 눈을 가늘게 떴다. ' “이 사람이 누군데 이래?”' 도진은 갈색 머리의 파란 눈을 한 건장하고 잘생긴 남자가 누군지 짐작은 가지만 확실하게 확인하려는 마음에 도혁에게 질문을 던졌다.' “도은이 그 녀석.”' “그래?”' 도진의 얼굴엔 변화가 없었다. 알고 있던 사실을 확인하게 된 그는 차분한 목소리를 내었다.'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도은이에게 얘기 들었습니다. 좋은 감정으로 만나고 있다고요.”' “…….”' 레이는 혼란스러웠지만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막둥이 애인이 이 사람이야?”' 도원이 경악에 찬 목소리를 내었다. 예상보다 잘생긴 외모에 휘파람이 나올 지경이었다. ' ‘역시 설도은. 눈은 높아.’' 도원은 그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갈색머리의 글래머인 여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 “제가 부탁 한 가지 하죠. 앞으로 우리 도은이 만나지 마십시오. 도은이가 하도 고집을 부리기에 그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려고 했지만 당신처럼 믿음이 안 가는 사람에게 제 동생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도진은 여자에게 잠시 시선을 던졌다가 그를 향해 단호하게 말을 꺼냈다. 눈앞에 있는 남자의 얼굴을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동생?”' 냉혹한 목소리를 내는 낯선 남자의 말에 자신의 주변에 서 있는 세 사람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닮았다. 황당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한 행동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순진한 도은을 바람둥이로 생각했다니…… 그녀의 오빠들을 상대로 오해하고 혼자서 삽질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창피함에 얼굴이 화끈거려 민망할 지경이었다. ' “그녀가 여기 있습니까?”' 레이는 최대한 정중하게 물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오빠라니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당혹감을 넘어 일단은 그녀를 봐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에게 자신이 얼마나 모질게 거부의 말을 던졌는지 생각이 나자 마음이 급해졌다.' “당신 같으면 이 꼴 보고 여기 있겠어? 아까 뛰어나갔지.”' 도혁이 비웃음을 지으며 빈정거렸다.' “젠장. 지금은 제가 바빠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정식으로 인사드리죠.” ' 도은이 자신을 봤다는 도혁의 말에 욕설을 내뱉은 레이가 그를 밀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호텔 로비를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도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를 악문 레이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도은의 번호를 누르는 레이의 손가락이 떨려왔다.' ‘제발, 제발. 받아.’' 신호음이 아무리 가도 도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 절망에 사로잡힌 레이의 눈이 현실을 인정하지 못해 꼭 감겼다. 어이없는 오해로 도은을 아프게 한 자신이 못나게 느껴져 심장을 쥐어짜는 고통이 밀려왔다. 주차장을 향해 뛰어가는 레이의 걸음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