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나?”'놀란 눈을 하며 고개를 들자 수현이 서 있었다.'“어? ……아저씨!”'수현은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아리를 바라보고 있었다.'“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다소 화난 듯하면서도 까칠한 목소리에 아리는 고개를 숙이며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그게…….”'“이야기는 좀 있다가 하자. 일단 여기 좀 벗어나서.”'수현은 아리의 손을 잡고 미리 봐둔 근처의‘하얀 비행기’란 간판이 걸린 커피숍으로 향했다.'“어디 가요?”'“여기 서서 얘기할 수는 없잖아. 저기 가서 잠깐 얘기 좀 하자.”'“……네.”'아리는 죄송스런 마음에 고개를 푹 숙이고 수현의 손에 잡혀‘하얀 비행기’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었다. 아니 한 사람, 수는 미리 이곳에 들어와 창가에 자리를 잡고 등을 돌려 앉아 담배를 물고 있었다. 수현은 수가 앉아있는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아 앉고는 맞은편에 아리를 앉혔다. 아리 바로 뒤에서 수는 몇 모금 빨지도 않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온 신경을 아리에게 집중했다.'“뭐 마실래?”'“전, 그냥…….”'“그럼 내가 알아서 시키지.”'“…….”'종업원이 다가오자 수현은 오렌지주스와 커피 한잔을 시키고는 말없이 아리를 바라보았다. 종업원이 주스와 커피를 놓고 갈 때까지 침묵은 계속되었고, 기나긴 침묵을 아리가 깨었다.'“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아니, 그 말 듣자고 너를 그렇게 찾고 기다린 거 아니야. 지금 네가 여기에 왜 있는 건지, 아니 이곳에 왜 내려오게 되었는지 말해. 하나도 빠짐없이 그동안 있었던 일…… 모두 말해.”'수현은 되도록이면 다그치지 않고 최대한 부드럽게 아리를 보며 말했다. 아마도 주눅이 들었는지 아니면 미안한 마음에 그러는 건지 한껏 움츠러든 아리의 모습이 측은하기까지 했다. 아리는 숨을 한번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부터 어쩔 수 없이 일진이라 불리는 선배를 피해 가능한 멀리 오려 했던 것이 이곳이고 지금까지 생활한 일들을 장장 20여분에 동안 소상히 말했다. '역시 조사한 바와 그다지 다른 점은 없었지만 그 아이들의 행동은 다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조그만 잭나이프를 사용해 협박을 하고 심하면 담뱃불로 몸을 지지는 행동들에 치가 떨릴 정도였다. 이건 학교가 아니라 깡패집단 소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런 아이들이 대기업 아니면 공권력을 가진 자들의 자식들이란 점이 마음을 씁쓸하게 했다. 어쩌면 지금 있는 모습들이 현재의 어른들의 모습의 축소판이라고 보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아리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수는 숨조차 쉬기 힘들어졌다. 온몸이 오한이 난 듯 부들부들 떨리고 심장이 용암을 분출하듯 마구 뛰어서 어찌할 바를 못하고 테이블에 놓은 물만 계속 들이켰다. 목이 말랐다. 입술과 목 그리고 심장이 타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이러고도 내가 저 아이를 보호한 것이라니, 한심하군. 이수.’'아리는 모든 말을 털어 놓고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아저씨, 걱정 많이 끼쳐서 정말 죄송해요. 실망하셨죠?”'“음……. 아니다. 그래 학교는 어떻게 할 건데?”'“그만 두려 구여. 그렇지 않아도 친구 통해서 자퇴서 올려 보냈어요.”'“자퇴서? 공부는? 학교 졸업은 해야지?”'“독학하면 되죠. 혼자서도 공부할 수 있어요. 아님 중간 중간에 학원 좀 나가려구여.”'“여기서?”'“네. 저 여기서 장사 시작했어요. 혼자 몸이라 그런지 그래도 먹고 살기는 할 거 같아요. 아저씨에게도 미안하고, 이렇게 실망을 끼친 것도 있고.”'“그건 안 된다. 서울로 올라가자. 올라가서 같이 고민을 해야겠다.”'수현의 단호한 말에 아리는 손사래를 쳤다.'“아니에요, 저 혼자서도 충분히 독립할 수 있어요. 이제 보육원도 나왔는데 후원해줄 필요 없잖아요.”'“쓸데없는 고집은 사양한다. 너 이러고 있는 거 너의 아저씨 알면 이 몸은 사표 써야 한다. 이 아저씨 불쌍하지도 않니? 네가 좀 봐주라. 응?”'수현의 넉살에 아리는 불안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지 미소를 띠었다.'“그래도 어떻게? 난 매번…… 받기만 했는데.”'“그런 건 걱정하지 말고 정리부터 해야겠지?”'“그럼, 시간을 주세요.”'“시간? 얼마나?”'“지금 사는 곳 방도 빼야 하고 장사하던 것도 정리해야 하고…….”'“그런 건 걱정하지 말고. 이 아저씨가 말끔히 정리해 줄 거니깐.”'“휴, 맨날 신세만 지는 것 같구, 말썽만 일으키는 것 같구. 미안해서 어떡해요?”'“별 말을 다한다. 너 무사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정말이여?”'“그래, 그동안 너 없어져서 고생한 생각하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은데 이렇게 건강하게 잘 있어준 게 고맙다. 아리야!”'순간 아리는 눈물이 팽그르르 돌았다. 그동안 친구들과 함께 있기는 했지만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다 생각했던 아리는 고마움과 안도감에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울지 말고 그만 일어나자.”'아리는 수현을 따라 그곳을 떠났다. 아리와 수현이 떠나간 자리를 말없이 지켜보던 수의 눈이 붉게 충혈이 되었다. '“지금부터는 내가 널 떠나지 않으마. 너의 어머니가 내게 새로운 삶을 주었듯 이제는 내가 너의 날개가 되어 줄게. 이제부터 넌 이 세상에서 최고가 되어보는 거야. 최고가.”'창밖으로 수현을 따라 총총걸음을 걷는 아리를 바라보며 다짐을 하는 수의 눈에 광채가 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