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생머리? 오우, 노! 나폴나폴 바람을 가르는 샤랄라 원피스? 그것도 네버 노! 골목을 가로지르며 뛰어가는 양아치 같은 사내의 뒤를 쫓는 여자의 차림새는 일반 여자들과는 조금, 아니 매우 달랐다. 어깨위로 짧게 친 쇼트 컷에 땀에 흠뻑 젖어 부스스해 보이는 머릿결. 게다가 큰 박스 티에 헐렁헐렁한 바지는 그녀의 성격이 대충 어떠한지를 잘 짐작할 수 있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여자지만 여자가 아닌 남자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인상이라고 정리 할 수 있는 것이다.'“야 이 개 호로 자식아 너 거기 안서!”'그 모든 것들에 덧붙여 우렁찬 목소리까지. 가냘프게 보이는 얼굴과 몸을 보고는 절대 생각 할 수 없는 커다란 보이스. '“무슨 여자가 달리기가 저렇게 빨라!”'남자들의 체력에 비해 현저하게 딸리는 일반 여자들이라면 금방 지칠만도 한데 전혀 포기할 줄 모르고 계속 쫓아온다. 앞서 뛰어가던 사내가 뒤를 힐끔힐끔 돌아보았지만, 여자의 얼굴은 더욱 험악하게 구겨지고 이젠 입술까지 꽉 깨물고 있었다. 그래도 역시 여자는 여자! 뛰면 뛸수록 그녀와 사내의 간격은 조금씩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진짜 너 이 자식 잡히기만 해봐 죽을 줄 알아!”'얼굴이 벌게지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잡아보던가!”'거리 차이가 점점 많이 나는 듯 하자 앞에서 뛰어가던 남자는 이제 뒤돌아 혀까지 내밀어 그녀를 약올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내가 다시 고갤 돌려 앞을 바라볼 때 쯤, 그는 더 이상 앞으로 발을 내딛지 못하고 하늘 위로 붕 뜨는 기이한 현상을 겪어야만 했다. '“어!”'거기에 덧붙여 발목에서 느껴지는 미미한 통증.'“나이스 캐치.”'골목 어귀에서 툭 튀어나온 남자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바닥에 쿵 떨어진 사내는 양쪽 다리에서 느껴지는 욱신거림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 졸라 아퍼!” '욕을 내뱉으며 옆으로 고갤 돌렸다. 도대체 잘 도망치고 있는 자신의 순탄한 레이스에 급브레이크를 건 작자가 누구란 말이더냐! 그러자 사내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앞으로 한발자국 나와있는 길게 쭉 뻗은 오른쪽 다리. 발목이 아픈걸 보니, 아니 저 긴 다리를 보아하니 눈 앞에 보이는 남자가 방금 자신에게 다리를 걸었던 게 분명했다. 오른쪽 다리를 다시 제자리에 원상 복귀시키는 남자는 벽에 한쪽 어깨를 기댄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꼬리가 휘어져라 웃는 모습이 사악해보이기까지 한다. '“하……하. 야, 너 내가 거기 딱 서라고 했지.”'무릎을 문지르며 남자를 바라보는 동안 어느새 뒤에서 쫓아오던 여자가 그의 코 앞까지 다가왔다. 숨이 찬 듯 몸을 숙인 채 불규칙적인 호흡을 내뱉으며 양 무릎을 짚고 그를 내려다보는 여자의 눈빛은 모든 것을 뚫어보는 듯한 매와 같은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었다.'“젠장.”'그제서야 보이지 않는 골목 모퉁이에서 한발자국 걸어 나온 남자는 자신의 앞에서 숨을 헐떡대며 서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공이수. 내가, 지금 숨이…… 좀 차거든? 하, 얘 좀 일으켜 세워 봐.”'그렇다, 느긋한 걸음걸이에 도도한 눈빛. 사글사글한 눈빛 너머로 사람을 내리 깔보는 듯한 저 시선. 그는 바로 서울지방경찰청 강력 1반의 새내기 형사 공이수였다.'“일어나라.”'끼고 있던 팔짱을 스르르 풀고,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의 한쪽 귀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아! 악!”'그와 동시에 남자의 손에 들려있던 가방을 빼앗은 이수는 앞에 서 있던 여자에게 툭 던져주었다. '“선배가 이 가방 처리해요. 내가 이 새끼 맡을 테니까요.”'그제서야 숨을 좀 돌린 여자는 몸을 똑바로 세우고 앞에 있는 남자를 제대로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아직 학생 같아 보였다. 양쪽 귀에 꽂혀있는 무수히 많은 피어싱들 하며, 건들거리는 표정까지. 딱 봐도 공부 더럽게 안하는 양아치 행색. '“가만 보니까 나이도 어려 보이는 게 뭐? 잡아보든가? 이게 진짜! 내가 나이가 몇 인데 지금 누굴 놀려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아!”'“아! 왜 때려!”'더운 듯 몸에 찰 달라붙은 티셔츠를 툭툭 털어내며 여자는 표정을 찡그렸다.'“소매치기가 얼마나 무서운 범죄인 줄 알아? 너 나이가 몇이야.”'“내 나이를 왜 물어? 그러는 넌 나이가 몇인데! 아니 그보다 니가 누군데 날 쫓는건데…… 에!”'“나? 내가 누구냐고? 너보다 내가 떡국을 열 번은 더 먹었을 거다. 나는 말야 국가 정의의 실현을 위해 이 한 몸 다 받쳐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내가 바로 서울지방 경찰청 강력1팀 윤은성 형사님이시다 이 말이야.”'은성은 숨을 고르는 와중에도 셔츠 주머니에서 명찰을 꺼내어 남자에게 보여주었다.'“혀……형사?” '“그래, 형사다!”'그럼 이 사람도 형사인가? 남자는 놀래 커다래진 눈으로 자신을 잡고있는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씨익, 저 사악하게 웃는 모습을 보아하니 형사가 확실하구나. 눈앞에 보이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아주 짧은 시간동안 남자는 패닉 상태에 빠져버렸다. 오늘 운도 드럽게 없다 생각하며 방금까지만 해도 위풍당당하던 남자의 어깨가 급격한 속도로 좁아지기 시작했다. '“하여간 너 여기 꼼짝말고 딱 있어. 내가 가방 돌려주고 오면 얘기하자 너.”'은성은 허리를 쭉 펴고 스트레칭을 했다. 간만에 미친듯이 달렸더니 허리가 좀 뻐근했다. '“갔다 올 테니까 잘 붙들고 있어.”'“알겠어요.”'은성은 다시 한 번 남자를 흘겨보며 가방을 손에 든 채 뒤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