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22년 전, 그날처럼

“으아아아앙!”

집이 떠나갈 정도로 큰 울음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아이고! 승우야, 왜 이렇게 우는 거야. 응?”

수린은 세 살 난 조카 승우를 어르며 달래기에 온 힘을 쏟는 중이었다.

세 살이어도 힘은 어찌나 장산지 승우는 수린의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장난감들, 한쪽에 쏟아져 있는 물. 난장판이 되어 버린 집을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결혼도 하기 전에 독박 육아라니. 미래에 겪을 일을 미리 겪게 해준 언니가 이토록 고맙긴 처음이었다.

“승우야, 뚝! 해야지. 그래야 다음에 이모가 또 장난감 사 온다?”

“으아앙! 우에엥!”

최선을 다해 승우를 달래면서 발로 대충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장난감을 한데 모았다. 아이를 안고 집안일까지 하는 건 무척이나 지치고 힘들었다.

아이 한 명을 돌보기에도 이렇게 벅찬데 신경 써야 할 건 더 많았다.

“언니는 어떻게 매일 이렇게 살지? 대단하다, 대단해.”

대한민국의 어머니들, 존경합니다.

새삼 엄마의 위대함을 느끼는 수린이었다.

지이잉. 지잉.

그때, 식탁에 두었던 휴대폰이 울었다.

“어휴, 이제 너도 우는구나.”

큰 한숨을 내쉰 수린은 얼른 부엌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

“어. 언니.”

[수린아! 승우는 잘 있어?]

수화기 너머 언니 수정의 물음에 수린은 아직도 목이 쉬도록 울고 있는 승우를 쳐다보았다.

“언니, 들리지 않아? 승우가 통곡하는 소리가.”

[어머! 우리 승우 왜 울어? 밥 때 놓친 거 아니야? 기저귀는 확인해 봤어? 아니면 어디 아픈 건 아니구?]

“밥은 한 시간 전에 먹였고, 기저귀도 30분 전에 갈았고…… 아픈 건 아닌 것 같아.”

휴대폰을 귀와 어깨 사이에 끼우고 승우의 이마를 만진 후 말을 마쳤다. 다시 휴대폰을 손으로 들고 말했다.

“대체 왜 우는 거지? 아무리 달래도 안 그쳐. 언니, 언제 와?”

[아, 나 방금 끝났어. 얼른 갈게. 나 갈 때까지 잘 좀 달래 주라. 10분, 아니 15분 내로 갈게!]

“언니! 언……!”

뚝 끊겨 버린 전화에 수린은 허탈한 웃음만 흘렸다.

“하아…… 어디 막내 서러워서 살겠나.”

그랬다. 여행과 화장품 관련 사업으로 명실상부하게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오수 그룹’의 세 자매 중 막내딸 오수린은 지금, 전쟁 중에 상급에 속하는 육아 전쟁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더휴(休) 팰리스’ 12층 1203호.

수린의 상황과는 정반대로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운동장만 한 거실 옆 발코니를 개조해 만든 온실에서는 잔잔한 클래식이 흘러나왔고, 온실 중앙 선 베드에는 한 남자가 긴 다리를 쭉 뻗고 누워 천장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받고 있었다.

“……신아.”

그리고 온실 빼곡히 자리한 녹색 식물들에게 우아한 손짓으로 물을 주고 있는 또 한 명의 남자.

신은 물주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신아.”

다시 한 번 불렀지만 그는 물주기에 심취했는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렸고.

“배신.”

“아, 진짜!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풀 네임을 부르니 그제야 신은 홱 고개를 들고 선 베드의 남자를 돌아보았다.

“헐…….”

그냥 선 베드에 누워 있는 것뿐인데도 발끝이 바깥으로 삐져나올 정도로 우월한 다리 길이, 세상 혼자 사는 것 같은 미친 미모, 품에 안은 검은 고양이, 게다가 오직 그만을 위해 비추는 듯한 햇살까지.

이 모든 게 한데 어우러져 시형을 더 잘난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같은 남자가 봐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데 여자들은 오죽할까.

“형, 나는 형이 좀 차갑게 생겨서 그렇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완벽하거든? 이 얼굴을 왜 안 써먹으실까? 얼굴이 아깝다, 아까워. 그치, 시윤아?”

“냐아.”

시형의 품에 안긴 고양이 시윤이 동의한다는 듯 소리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