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멀미

전각에 가까워지자 아련하게 비파 소리가 들렸다. 혼은 고개를 들어 삼층을 올려다본 후 보다 빠르게 발을 떼며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긴 복도를 지나고 계단을 오르는 그 모든 게 뛰는 것에 가까울 정도로 빨랐다. 단련을 위해서라면 모를까 요 몇 년 들어 일상생활 중에 뛰어 본 것이 얼마나 될지. 황제의 옷은 결코 뛰는 데 적합한 옷이 아니다. 땅에 닿을 듯 길고 묵직한 소매하며 걸음마다 잘그랑거리는 패옥. 그에 반해 내관복은, 저도 모르게 혼은 팔락 양 소매를 흔들어 보았다. 펄럭거리는 소리라고 해봤자 시시할 정도로 옷감이 얼마 없다, 결정적으로 가볍다. 그래서 가끔 이렇게 내관복으로 갈아입으면 마음가짐부터가 가붓해지곤 했다.

‘하지만 이래서야 경망스러울 지경이군.’

삼층에 다 올라와서야 조금 겸연쩍어 턱을 매만지며 걸음을 늦췄다. 장천궁에서 나오기 직전에 수염을 다듬어서인지 손이 닿는 곳이 싸르르 아팠다. 깨끗하게 정리하는 걸로 눈속임을 하는 것에도 머잖아 한계가 올 것이다. 그나마 그가 나이보다 앳되어 보이는 것의 덕을 보고는 있으나.

“어서 오셔요, 나리. 안 그래도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효우는 비파를 타는 손을 쉬지 않으며 그를 반갑게 맞았다. 혼은, 내관 취류로서 제법 얼굴에 익은 미소를 씩 지어 보였다.

“한창 비파에 매진하고 있는 것 아니냐? 별로 바깥이 그리울 것도 없겠는데?”

“오, 그런 말씀 마셔요. 나리께서 하루 종일 창 하나 없는 방에 갇혀 있어 보셔야 제 속을 알지요. 매일매일, 아니 순간순간마다 바깥이 그리운 몸이랍니다.”

한 손을 들어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하면서도 비파는 쟁쟁히 울고 있다. 과연 자부할 만한 솜씨이다. 그는 졌다는 듯 두 손을 들면서 “분부 받들 테니 눈물을 거두시옵소서, 낭랑.” 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전 같으면 그러지 말라고 역정을 냈을 그녀가 이제는 가만히 보면서 웃기만 했다.

어차피 사흘에 한 번 정도나 바깥 구경을 하게 해주겠다고 말한 바 있어 오늘은 데리고 나갈 참이었다. 지난번 빗속에 뛰어다녔던 날에 이어 두 번째. 대신 어젯밤 또 한 번 내원에 데려갔었다. 보름에 딱 하루 못 미치는 달구경을 했다.

“들어줄까?”

복도에 데리고 나오면서 묻자 효우가 고개를 저으며 비파를 꼭 끌어안았다.

“병사가 검이 무겁다고 다른 사람에게 들리는 거 보셨습니까?”

“같은 선에 놓고 볼 게 아닌 것 같은데…….”

“골치 아픈 생각 같은 건 관두시고 그냥 제 목소리를 즐기세요. 이 목소리 듣겠다고 은파루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사내들이 나리를 본다면 부러워 죽으려고 할걸요.”

생글거리며 걸음을 옮기는 효우와 달리 그의 눈가엔 못마땅함이 떠올랐다. 그놈의 은파루 소리, 아주 입에서 안 나오게 하려면 뭘 어찌 해야 하는지 원.

“큰 꿈을 꾸고 있는 분께서 아직 말에 그리 조심성이 없어서야. 예의 그곳 이야기라면 잠꼬대라도 안 하는 게 좋을 거래도.”

윽박지르고 싶은 것을 억누르느라 아무래도 목소리가 딱딱했다. 효우는 기분이 들떴는지 밝은 얼굴로 흥흥거렸다.

“그런 거야 꿈이 이뤄진 후에도 충분히 조심할 수 있습니다. 나리는 아직 저란 계집을 잘 모르시네요.”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지 몰라도 그에겐 심상하게 들리는 말 한마디가 없다. 당장 이 순간에도 방금 그녀가 한 말을 수도 없이 곱씹고 있음을 그녀는 짐작도 못 하리라. 본디 생각이 많았던 머리는, 한 여자에게 집착을 품으면서 더욱 그 가지가 울창해졌다.

“글쎄다. 일단 나는 네가 성절을 노려 폐하의 여자라고 공공연히 나설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걸 알지. 또 사람의 습관은 하루아침에 바뀌기 어렵다는 것도 알고. 네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습관의 굴레에서마저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나중 일은 나중에 보면 알겠지요, 나리. 저는 어제 이전의 일은 ‘옛날’이라고 부르고 내일 이후의 일은 ‘장래’라고 부른답니다. 그저 살아 있는 지금에 최대한 집중하는 거예요. 습관이 제 아무리 무서운들 현재에 모든 걸 불사르고 있는 사람보다 무서울까요?”

또 하나 생각의 소재가 더해진 머리로 그는 물끄러미 효우의 옆모습을 보았다. 어제 제공된 투박한 오동나무 비파를 소중한 듯 쓰다듬으며 늘씬한 허리를 곧추세우고 사락사락 미끄러지듯 걸어간다. 저 어여쁜 머릿속에선 무슨 생각이 오가고 있을까?

지상 천자인들 무엇 하랴, 사람의 머릿속 하나 들여다볼 수 없는데. 사람이 나눌 수 있는 말의 한계에 그는 절망했다.

“아, 이토록 좋은 날씨라니! 이래서야 춤을 안 출 수가 없지!”

화창한 바깥 날씨에 효우는 볼까지 발그레해질 정도로 기뻐하며 나는 듯이 뜰로 뛰어내려가 비파를 한 팔에 안은 채 치맛자락 끝을 쥐어 들고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다. 아마 보통 사람이라도 오랫동안 햇빛 구경을 못 하다 보게 되면 기쁘긴 매한가지이겠으나, 효우는 그 정도가 크고 또 별나게 화려했다. 타고나길 흥이 많은 것인지, 세월과 함께 그렇게 길러진 것인지 궁금해하며 그는 눈이 부신 표정으로 효우의 춤을 감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