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천리마

영통 1년 초여름.

칠 년째 극성인 한발로도 부족한지 올봄 성국(盛國)엔 비황(飛蝗)의 피해가 작심하였다.

하늘이 버린 듯이 황폐화된 나라에 푸지게 넘치는 것이 두 가지 있었으니, 하나는 굶어 죽은 시신이요, 다른 하나는 버려진 아이들이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두 종류의 인시(人市)가 암암리에 성행하였다.

첫 번째 인시에서 파는 것은 죽은 몸뚱이.

두 번째 인시에서 파는 것은 산 몸뚱이.

생사의 경중이 종이 한 장보다 못한 시절에, 약한 나라에서 천하게 태어난 죄는 사람을 가축보다 못한 것으로 전락시켰다.

“거 냄새 한 번 고약하구나. 오래 있다간 없던 병도 도져서 가게 생겼어.”

향수를 뿌린 천을 코에 대고 있어도 숨을 쉴 때마다 밀려오는 역한 냄새에 덕진은 혀를 찼다. 그녀를 호종하던 하인 중 더 나이 든 쪽이 그럼 그만 객관으로 돌아가시겠느냐 물었다.

“그래서야 기껏 발걸음 한 보람이 없지. 둘. 둘은 더 챙겨야 수지가 맞아.”

힐긋 덕진의 시선이 뒤로 향했다가 돌아갔다. 두 계집아이가 하인들 뒤에서 따라오고 있다. 소녀들의 양손을 교차해 묶고 목으로 이어져 매달린 밧줄의 끝은 젊은 하인의 손에 들려 있다. 오늘 인시에서 사들인 상품들이다.

예부터 남자는 강국(康國) 남자요, 여자는 성국 여자란 말이 내려오는 까닭에 성국 변방에 사람을 파는 인시가 심심찮게 선다는 말을 듣고 덕진은 일찍부터 한 번은 가봐야지 하고 별렀었다. 그녀가 사는 요국(堯國)에서 성국까지는 길만 잘 잡자면 닷새 남짓 걸릴 짧다면 짧은 거리이긴 했으나 스물 남짓의 딸린 입들을 건사해야 하는 영세한 청루의 주인 자리가 그리 녹록치만은 않아 못해도 열흘, 자리를 비워야 하는 사정 앞에서 주저하길 한참. 그러다 올봄 메뚜기 떼까지 찾아들어 성국엔 사람 씨가 마르게 생겼다는 소리에 간신히 마음을 잡아 길을 나선 참이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랬던가. 부지런히 새벽밥을 먹고 나서 사람 파는 시장을 찾아다녔으나 한나절이 다 가도록 변변찮은 물건이 눈에 띄지 않았다.

“늑장 부리다 파장이 된 겐가.”

칠 년째 이어진 기근으로 성국의 백성이 이전의 사분의 일, 혹자는 십분의 일로 줄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유례없는 떼죽음의 와중에 미녀라는, 보기엔 좋으나 억척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먼 나약한 족속이 얼마나 오래 버텼을지.

보리 서 되에 아비 손으로 청루에 팔렸으나 박색이라는 이유로 지분 냄새와는 인연 없이 허드렛일에 뼈가 굳은 끝에 쉰을 바라보는 지금 청루의 큰마님 소리를 듣는 덕진의 머리는 그런 사늘한 생각으로 조소를 담아 주위를 훑었다. 이런 식이라면 몇 년 갈 것도 없이 성국 여자의 미모도 다 옛말이 될 것이다.

내친걸음이니 청루의 이름 걸고 내세울 만한 건 못 건져도 싼값에 막 부릴 아이라도 몇 얻어 가리라 마음먹고 새삼 작은 눈을 빛내던 덕진의 귀에 문득 갈라터진 목소리 한 줄기가 닿았다.

“거기 가는 마님, 천 배 장사를 해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천 배?”

자연 귀가 솔깃해지는 소리에 돌아다본 곳에는 한 무리의 피골이 상접한 아이들이 몸뚱이 하나 뒤척이기 힘든 좁은 우리에 갇혀 있었다. 덕진은 한 며칠 피죽은커녕 물 구경도 못 한 듯한 반송장 같은 어린것들을 쓸어 보곤 고개를 돌리려 했다.

“천 배 장사 말이올시다, 마님.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인데, 그 정도는 남겨야 장사했다 소리를 할 것 아닙니까?”

잘못 들은 것은 아니었던지 다시금 맹랑한 말이 덕진을 잡아끈다.

하룻밤 수작에 영생의 맹세며 태산의 언약, 천금의 허풍이 난무하는 청루에서 늙어 온 덕진이 사람의 말이란 것이 얼마나 값어치 없는 것인지 모를 리 없다. 이 장소가 청루였다고 하면 좀 전의 말은 일소의 여지도 없이 그녀의 귓바퀴에서 미끄러져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덕진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말을 붙여 온 목소리에 담긴 무언가가 마음의 어딘가를 툭, 건드린 것이다.

“누구냐?”

주인으로 여겨지는 자가 근처에 없음을 보고 덕진은 우리로 반 보쯤 다가섰다. 이젠 후각이 마비가 될 법도 한데 우리에서 확 풍겨 오는 짐승의 것 같은 악취에 덕진은 손수건을 틀어쥐며 한 보도 넘게 물러났다.

“이쪽으로 오시는 게 더 빠르겠습니다.”

우리 안 저편에서 누군가 꼼지락거려 보다가 안 되겠다 싶었던지 팔을 들어 돌아오라는 시늉을 했다. 뼈에 거죽 한 꺼풀 두른 말라빠진 손. 그래도 제법 뼈마디가 길다는 것을 빠르게 눈에 담으며 덕진은 우리의 좌측으로 돌아갔다.

땟국에 전 계집아이의 얼굴 하나가 그녀를 보더니 벙그레 웃었다. 덕진은 그 웃음에 한 번 놀라고, 까마귀나 다름없는 몰골에 비해 꽤나 고르고 흰 이에 한 번 더 놀랐다. 그리고 용케 광채를 잃지 않고 있는 그 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