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몽고메리는 한숨도 자지 않고 밤새 말을 달렸는데도 지친 기색 없이 여전히 꼿꼿하게 말 위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을 아직도 기다리고 있을 신부를 생각하고, 고개를 신경질적으로 내저었다.
형수 쥬디는 스테판이 결혼식에 가지 않은 것을 두고 그를 야단쳤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해놓고도 걱정도 하지 않고, 늦게 된 이유를 밝히거나 사과조차 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는 쥬디의 말에도 막무가내였다. 그는 자기가 늑장을 부리면 아내 될 여자에게 모욕을 주는 꼴이 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토마스 경의 영지로 떠날 수가 없었다. 스테판은 형수의 그런 충고를 듣는 것조차도 짜증스러웠다.
형 게빈의 부인인 쥬디는 아름다운 갈색 눈을 가진 여자였다. 얼마 전 그녀는 이층 층계에서 굴러 떨어져, 그렇게도 기다리던 아이가 유산되어 며칠 동안 사경을 헤맸다. 그녀가 겨우 정신을 차린 후 아이가 유산된 것을 알았을 때, 슬픔에 젖어 낙담하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걱정을 끼쳐 미안하다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쥬디는 그런 아름다운 여자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스테판은 쥬디를 간호하느라 자기 결혼 날짜를 잊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쥬디가 알자 그녀는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완전히 망각한 것처럼 신부에게 잘 대해 주어야 한다고 야단을 치며 스테판을 몰아내듯 내보냈다.
스테판은 착잡한 마음으로 이마에 흘러내린 흑갈색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그는 게빈의 집에 더 머물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쥬디는 게빈에게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쥬디가 계단에서 미끄러졌던 것은 결코 우연한 사고가 아니었다. 그 사고는 게빈의 정부, 엘리스 차트워드 때문이었다.
「주인님.」
그때 하인 한 명이 스테판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스테판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마차들이 너무 뒤떨어졌습니다. 좀 기다려야겠는데요?」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황량한 들판에 흐르고 있는 얕은 개울가로 말을 몰고 갔다. 그는 말 위에서 내려 무릎을 꿇고 얼굴을 닦았다.
스테판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신부를 만나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스코틀랜드의 영주라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헨리 왕은 수년 동안 보여준 그의 충성스런 봉사에 대한 답례로 몽고메리 일가에게 포상을 하기로 하고, 그 하나로 왕은 그에게 부유한 스코틀랜드 여자와 결혼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그 여자에 대한 얘기를 듣고부터는 상황이 달라졌지만.
스테판은 개울 건너편에 펼쳐진 초원을 바라보았다. 스테판은 왕의 성의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얘기를 듣고부터는 그런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여자는 스코틀랜드의 권력있는 집안의 영주였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똑똑한 여자는 남자를 휘어잡을 만큼 강하다고 믿고 있었다.
「빌어먹을 것 같으니.」
스테판은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 상식대로라면 그 여자의 부친은 젊은 청년을 골라서 그에게 자리를 넘겨주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딸을 영주로 세운 것이다. 여자가 영주의 자리에 오를 정도라면 그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보지 않아도 뻔했다.
스테판은 그 여자를 상상하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적어도 그녀는 나이가 사십은 되었을 것이고, 빗자루 같이 뻣뻣한 머리카락에 살이 쪄서 뒤뚱거리며 걸을 것임이 틀림없었다. 결혼 첫날밤에는 보나마나 누가 위에 올라갈 것인지 서로 신경전을 벌이긴 하겠으나 결국 그가 패배할 것이다.
「주인님.」
하인이 그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