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성 성주의 막내아들이자 남한성의 소대장인 박유신.
비공식적인 대형 사고를 치고 비공식적인 더 큰 사고를 치기 위해서 공식적으로 가출 했다.
항상 그랬듯이 이번에도 완벽하게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일이 꼬였다. 꼬여도 더럽게 꼬였다.
한나라 황궁. 수시로 죽어나가는 내궁의 보초병과 태자궁의 보초병.
그리고 황태자비가 되기 위해 황태자를 유혹하겠다고 침전에 강제로 들어갔다가 죽거나 쫓겨나는 내궁의 여인들. 황궁은 매일 매순간 살얼음판이다.
그런 황궁에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고 거침없는 언행을 일삼는 ‘미친개’가 나타났다.
#남장녀,
#가출녀,
#내맘대로녀,
#무예녀,
#뻔뻔녀,
#육식녀,
#의리녀,
#집요남,
#황태자남,
#어쩔 수 없이 순결남,
#복수남,
#인내심끝판왕 남,
#식욕전무 남,
#뒤끝작렬 남.
[미리보기]
기척이다!
물길을 따라 숲가로 이동하던 율은 큰 나무의 짙은 그늘 속에 몸을 숨겼다. 상황을 살피기 위해 기척을 죽인 채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알몸의 여인이었다. 사내인 유신이 아니었다. 인기척을 내면 여인이 수치심 느낄 테니 그는 조용히 유신을 찾으러 이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그가 막 한 발자국을 내딛으려는 때였다.
“젠장, 멀어.”
율의 고개가 이끌리듯 돌아갔다. 가늘고 떨렸지만, 유신의 목소리와 닮았다.
저 앞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이 풍성한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모아 잡고 걸어갔다. 군살 하나 없는 아름다운 몸이었다. 그 여인이 지나가는 자리에 물길이 남았다.
아니다! 유신일 리가 없다! 옆모습밖에 보이지 않으나 저것은 여인이지 않은가!
“대체, 이놈의 머리칼은 왜 못 자르게 하는 거야!”
유신의 목소리였다!
나뭇가지를 잡고 있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본인조차 의식하지 못했다. 율은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닐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유신은 사내다!
‘뚝.’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에 놀란 여인이 고개를 돌렸다. 율은 숨조차 내쉬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유신이다!
그의 두 눈에 나신의 유신이 새겨져 버렸다.
“모두 무사하기를.”
나지막한 유신의 말이 들렸다. 간절한 마음이 멀리 떨어져 있는 그에게 닿았다. 율은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이 떨렸다.
유신이 느리게 멀어졌다.
율은 눈을 떴다.
그가 어둠 속에서 나와 유신이 옷을 갈아입던 곳에 섰다. 아직도 물기가 흥건했다. 잘게 떨리던 유신의 나신이 떠올랐다. 그의 시선이 물길을 따라 느리게 올라갔다. 그의 발이 물길을 따라 이끌리듯 걸어갔다. 물가에 선 율은 달빛을 머금은 물결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왜?”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여인임을 숨긴 이유가 대체 무엇이냐!
머릿속에서 아귀다툼이 벌어졌다. 갑자기 그 사이로 유신의 당당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어머니가 많이 아프십니다. 그 산삼이 있으면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 산삼을 훔치러 들어왔습니다.’
그의 눈동자에 날이 섰다. 여인의 몸으로 황궁의 보물을 훔치러 들어왔다. 지금껏 잘도 여인임을 숨기고 율을 능멸했다.
“너를 어찌할까.”
씹어뱉는 율의 목소리가 살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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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T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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