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만 말해요. 대체 나한테 뭘 원하는 건가요?”

“그대를 원한다.”

“믿을 만해야 믿지. 하찮은 고려의 공녀 따위가 무에 그리 마음에 드신다고 이러십니까?”“하찮지 않다. 적어도 내게는 그래.”

오래 전 사라진 사저의 발자취를 찾고자 언니 대신 공녀의 길을 가게 된 연화.

원나라로 가는 길목에서 원의 실세 카이샨을 만나며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들게 되지만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고려와 원나라의 관계만큼 그들의 사랑도 험난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원나라의 황제가 간직한 오래된 비밀은 그들의 사랑을 더욱 위협하게 되는데……

고려에서도, 원나라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그들의 사랑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그 누구의 허락도 필요하지 않았다!

[본문 내용 중에서]

“누구……?”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카이샨이 분명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창문을 열어젖히자 익숙한 손가락이 이쪽을 향해 손짓했다. 연화는 두 사람이 잠들어 있는지 살펴보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엇차, 올라와.”

카이샨이 내민 손을 잡자 연화의 몸이 가볍게 위로 올라갔다. 높은 지붕 위에 자리 잡고 앉자 카이샨이 먼저 말을 건넸다.

“아직 안 자고 뭐했나?”

“깨운 사람이 누군데 그런 말을 해요?”

피차 아직 감정이 상해 있는 처지였다. 오고 가는 말들이 곱지 않았다. 돌연 카이샨이 연화의 허리를 감아 왔다.

“이, 이것 놔…….”

“소리 한 번 질러 보시지.”

반항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연화는 카이샨의 품에 한껏 안겨 그의 체취를 흠뻑 들이마셨다. 풋풋한 솔향기 혹은 야생의 풀냄새 같다고 생각했다.

“자, 내 생각 같은 건 조금도 하지 않았다고 말해 보시지.”

“물론이에요.”

“앙큼한 것 같으니.”

입술이 다가왔다. 뜨거운 입술끼리 부딪치자 눈앞에서 불길이 남실거린다. 피 맛도 같고 짭조름하기도 한 맛이 입안에 가득 느껴졌다. 아무리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더 났다. 온몸이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연화는 카이샨의 품에 매달리다시피 안겼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았다.

“자 다시 말해 봐, 내 생각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았단 말이지?”

승리감에 가득한 카이샨의 말에 연화는 대답 대신 정강이를 걷어찼다.

“윽, 이 살쾡이 같은 여자야.”

“맞았어요. 난 예의나 염치 같은 건 몰라요. 게다가 성질을 건드리면 주먹이나 발이 먼저 나가기도 하고요. 그걸 몰랐어요?”

“아니, 진작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댈 좋아하지.”

“그런 말이 이렇게 잘도 나오니까 내가 믿지를 못한 거라고요.”

“지금은 믿어 준다는 뜻인가?”

카이샨의 눈빛이 너무나 진지해 연화를 온통 다 덮어 버릴 것 같았다. 그 눈빛 안에 한 번 갇히면 영영 나올 수 없으리라. 연화는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보일락 말락 끄덕였다.

“낮에 이황자의 얘기를 들었다.”

“그것 때문에…….”

카이샨이 무엇 때문에 자신을 찾아왔는지 안 연화는 감격했다. 다시는 카이샨이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을 거라 침울해 했던 아까의 모습이 바보 같았다 느껴졌다.

“걱정 마라, 그대는 내 것이니까.”

[작가 소개]

이서연

좋아하는 것 : 예쁜 찻잔, 포트넘 앤 메이슨의 아쌈 티, 수제 쿠키

싫어하는 것 : 전쟁에 관련된 모든 것들.

출간작 :

남녀상열지사, 서라벌 낭자와 당나라 건달, 낙인, 격랑, 장군의 신부

그저 긁적거리는 말 :

같은 사랑 이야기라면 현대물보다 시대물이 좋고, 가급적 옛날이야기일수록 좋다.

아니면, 아주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도 끌린다.

어쩌면 사랑 그 자체가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꿈 같은 존재라서일까.

[목차]

서장

1장 ~ 11장

종장

작가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