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나 안 좋아하는 거예요? 아니면 무서울 만큼 좋아하는 거예요?”

자취생활 10년 만에 집다운 집을 구한 한주안. 호기로운 마음으로 구입한 자동차로 출근하려던 첫날, 운전미숙으로 대형 외제차를 부수고 만다. 차주는 옆집 남자. 연예인 양 싸대기를 날리고도 남는 외모와 기럭지에 밤에 일을 나가고, 출근 때는 슈트를 빼입는 수상하기 그지없는 그 남자 김석진.

두 사람 사이엔 실수와 오해가 쌓여 사사건건 부딪히지만 미운 정도 정이라고 자꾸만 마음이 가는데…….

투닥투닥 알쏭달쏭 밀당 로맨스 ‘이웃집 웬수님’!

“저 그쪽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거든요!”

이건 또 뭔 소리야.

“물론 제가 그쪽 마음에 별로 안 들 수도 있지만, 저는 그쪽 차도 뿌시고 운전도 잘 못하고 그래서 그쪽이 보기엔 좀 답답해 보일 수는 있지만! 그래도! 장점이 많은 사람이라고요, 제가.”

“…….”

“그러니까…….”

“…….”

“그냥 친하게 지내면 안 돼요?”

2. 작가 소개

김노운

게으르기가 슬라임을 방불케 함

▣ 출간작

로진백

3. 차례

#7

#8

#9

#10

#외전

4. 미리 보기

“나한테 관심 갖지 말라고 했잖아요.”

뜻밖의 대꾸에 입이 벌어졌다.

할 말을 잃고 자신을 빤히 보는 주안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석진은 개의치 않았다.

“나한테 관심 없다고 그랬잖아요.”

말투가 거칠어지는 게 느껴졌다. 자신을 보는 주안의 얼굴이 점차 창백히 질리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억지로 심호흡하며 석진이 한 자 한 자 내뱉었다.

“그럴 만한 사람 아니니까.”

화가 난 건지 서글픈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여기 오래 있을 사람도 아니니까.”

밀어내는 건지 혹은 붙잡는 건지 알 수 없는 말투로.

“곧 미국으로 돌아갈 거니까, 이제 당신에게 아무 의미도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저도 모르게 석진의 팔을 붙들고 있던 손에 힘이 풀렸다. 스르륵 팔을 놓치고 허공에서 곱아드는 주안의 손가락을 보며 석진이 웃었다. 나지막하고 쓸쓸한 웃음이었다.

“그러지 마세요.”

못을 박는 듯 단호한 말투에 주안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웃는 듯 마는 듯 희미한 표정으로 주안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석진은 곧 시선을 내리깔았다.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입술만 깨물고 있던 그가 짧게 웃었다.

“손 조심해요.”

그가 보던 것은 다름 아닌 주안의 붕대 감긴 손이었다.

그 말만 남긴 채 그는 등을 돌렸다. 주안은 잠시 멍하니 서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넓은 어깨와 높은 등, 키 큰 사람 특유의 다소 구부정한 자세 그대로 계단을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은 애처로우리만큼 쓸쓸했다.

모질게 말하던 앞모습과는 달리.

자신에게 관심 갖지 말라고 냉정하게 사람을 내치던 그 모습과는 달리.

잠시 못박힌 듯 서 있던 주안이 그러다 흥, 콧방귀를 뀌었다.

“……웃기고 있네.”

그리고 보란 듯이 성큼성큼 걸어가 막 계단을 내려가려는 석진을 붙잡았다.

홀가분하게 발걸음을 옮기던 석진이 문득 강하게 잡아당기는 힘에 눌려 뒤를 돌아보았다. 곱게 빗어 내린 생머리가 폴폴 날릴 정도로 콧김을 뿜뿜 뿜어내고 있던 주안과 눈이 마주친 그가 눈만 깜박이고 있는데, 주안이 씩씩대며 냅다 한 말이 가관이다.

“저 그쪽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거든요!”

이건 또 뭔 소리야.

순간 기가 막혀 눈만 깜박거리고 있던 석진이 그러다 주안에게 붙들린 팔을 흔들었다. 흔들흔들, 아무리 힘주어 흔들어도 소매를 놔줄 생각을 않는다. 이이익 힘주어 버티는 주안을 보며 석진도 이이익 힘을 주었지만 안 통한다. 무슨 여자가 이렇게 힘이 세!

결국 떼어내는 데 실패한 석진이 버럭했다.

“그럼 뭔데요. 저 지금 동정해요?”

“동정은 무슨! 그런 것도 아니거든요!”

“그럼 뭔데요!”

“그……. 인류애? 측은지심?”

이건 또 뭔 소리야. 뜻밖의 대답에 석진이 멍하니 굳었다.

원래 모든 대화는 상대방의 반응을 예측하며 화두를 던지고 그 반응에 따라 다시 예상되는 반응을 유도하는 대답을 시도하며 번갈아 진행된다. 이렇게 예측에서 완전히 빗나가는 대사를 막 던지면 한쪽이 할 말이 없어진다.

화를 내야 할지 뭔 뜻인지 캐물어야 할지, 타이밍도 놓쳐 눈만 깜빡거리는 석진에게 주안이 숨가쁘게 말했다.

“그러니까…… 저……. 관심 없다는 게 진짜 아예 쌩까자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좋은 이웃지간으로 지낼 수도 있잖아요! 원래 이웃이면 서로 간에 최소한의 관심은 나누고 사는 거라고요. 제가 아무리 그쪽한테 관심이 없다고 해도 전 이미 김석진 씨에 대해서 아는 거 엄청 많다구요! 그쪽 동생이 집주인이고, 밤에 출근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미국에서 살다가 들어왔고……. 그러면서 차는 비싼 거 타고 다니고 옷도 맨날 비싼 거 입고 다니고 그렇지만…….”

어째 말이 배배 꼬인다.

말끝을 흐리며 주안은 힐끔 석진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제게 팔을 붙잡힌 채 그는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건 실은 자신도 그렇다. 내가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왜 내가 내 고생을 사서 하는 건지 원. 저 사람이 옷을 버리든 기워 입든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하지만 왠지 그냥 내보내면 내가 후회할 것 같단 말이야!

“물론 제가 그쪽 마음에 별로 안 들 수도 있지만, 저는 그쪽 차도 뿌시고 운전도 잘 못하고 그래서 그쪽이 보기엔 좀 답답해 보일 수는 있지만! 그래도! 저 청소는 잘하고 정리도 잘하고, 친구들이 심심해서 놀아달라고 하면 몸 바쳐서 놀아줄 수도 있고……. 암튼 장점이 많은 사람이라고요, 제가.”

“…….”

“그러니까…….”

“…….”

“그냥 친하게 지내면 안 돼요?”

짹짹짹짹짹짹.

밤이라 새들도 다 잠잘 텐데 귓가에서 새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석진의 표정은 점점 더 묘하게 변하고 주안은 개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개구멍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은 몽땅 파고 들어가고 싶다. 저 구제불능을 내려다보는 시선으로부터만 좀 피할 수 있다면.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주안은 울상이 된 채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계속 말했다.

“곧 안 볼 사이 된다고 해도 그 전까지는 친구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같이 오다가다 만나면 인사하고 밥 먹고 노래방 가고 게임하고, 그러는 사이가 되는 게 뭐가 나빠요.”

“…….”

“아 물론 제가 그쪽한테 관심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고요, 그냥 친구! 친구 하자구요! 친구! 좋잖아요! 같이 밥 먹을 사람 없을 때 아무 때나 불러낼 수 있는 친구!”

망했다.

이건 암만 들어도 새내기한테 관심 있는 복학생이 집적댔다가 찔리니까 버럭하는 걸로밖에 안 들린다.

나 너한테 관심 없거든!? 그냥 너 후배니까 잘해준 거거든!? 너 그따위로 구는 거 다 필요 없어 우리 엄마한테 이를 거야 너 같은 애랑 만나지 말라고 우리 엄마가 그랬어!

……아, 치졸하다. 유치하다. 절망적이다.

주안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석진의 팔꿈치를 잡고 있는 손에서 슬쩍 힘을 뺐다. 석진이 팔을 뿌리치고 ‘으악 변태다!’ 하면서 뛰쳐나가도 그다지 타격이 없을 수 있도록.

침묵하는 시간이 흘렀다.

실제로는 겨우 몇 분이었지만 주안에겐 영겁 같은 시간이었다.

“……알았어요.”

주안은 제 머리로 떨어지는 석진의 한숨을 들었다. 체념 반 웃음 반이 섞인 그런 소리였다. 눈을 번쩍 뜬 주안에게 기가 막히다는 듯 웃고 있는 석진의 얼굴이 보였다.

“뭘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