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나 안 좋아하는 거예요? 아니면 무서울 만큼 좋아하는 거예요?”

자취생활 10년 만에 집다운 집을 구한 한주안. 호기로운 마음으로 구입한 자동차로 출근하려던 첫날, 운전미숙으로 대형 외제차를 부수고 만다. 차주는 옆집 남자. 연예인 양 싸대기를 날리고도 남는 외모와 기럭지에 밤에 일을 나가고, 출근 때는 슈트를 빼입는 수상하기 그지없는 그 남자 김석진.

두 사람 사이엔 실수와 오해가 쌓여 사사건건 부딪히지만 미운 정도 정이라고 자꾸만 마음이 가는데…….

투닥투닥 알쏭달쏭 밀당 로맨스 ‘이웃집 웬수님’!

“저 그쪽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거든요!”

이건 또 뭔 소리야.

“물론 제가 그쪽 마음에 별로 안 들 수도 있지만, 저는 그쪽 차도 뿌시고 운전도 잘 못하고 그래서 그쪽이 보기엔 좀 답답해 보일 수는 있지만! 그래도! 장점이 많은 사람이라고요, 제가.”

“…….”

“그러니까…….”

“…….”

“그냥 친하게 지내면 안 돼요?”

2. 작가 소개

김노운

게으르기가 슬라임을 방불케 함

▣ 출간작

로진백

3. 차례

#프롤로그

#1

#2

#3

#4

#5

#6

4. 미리 보기

주안은 비장한 얼굴로 오백 원짜리 동전 두 개를 투입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석진에게 말했다

“46130 좀 눌러주세요.

정작 석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느라 주안이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주안은 한 번 더 말을 시키는 대신 리모컨을 들어 직접 숫자를 눌렀다.

순식간에 실내의 조명이 꺼지고, 신기한 듯 부스 안을 둘러보던 석진은 흘러나오는 음악에 화들짝 놀라 화면을 바라보았다. 모니터 한가운데 떠오르는 글씨는 이랬다

[FANTASTIC BABY]

[노래: 우리동네 음악대장]

저게 뭐야.

“저기, 근데 이게 뭐…….”

“여기 모여라,”

어리둥절해져 묻는 석진의 말은 그러나 주안의 음산한 중얼거림에 묻혀 사라졌다. 저 여자 대체 뭐 하는 거지? 어안이 벙벙해져 이쪽을 보는 석진은 신경도 쓰지 않고 주안은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모두 모여라, 위곤파리��, 리리리라라라.”

“…….”

“맘을 열어라, 머릴 비워라, 불을 지펴라, 리리리라라라.”

마이크를 입에 바짝 대고 음산한 목소리로 한참을 모니터에 떠오른 글을 따라 읽던 주안은-그게 랩이라는 것을 석진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 그 음산한 중얼거림이 끝나고 한 템포 쉬더니 외쳤다.

“와우, 판타스틱 베이비!”

“…….”

“땐!”

자막에는 분명 Dance라 나오는데 저 말은 대체……?

그러나 석진이 의문을 가질 시간은 아주 짧았다. 미친 듯이 소리지르며 방방 뛰는 주안 때문이다

“아 워너 땐! 땐! 땐! 때댄!”

아니, 그러니까 자막은 영어로 나오는데 왜 내가 듣는 건 정체불명의 언어요.

석진은 그야말로 얼어붙은 채로 모니터와, 귀를 쾅쾅 때리는 음악과, 마이크를 들고 미친 듯이 방방 뛰며 고함지르는 주안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석진이 주안에게 ‘잘하는 것’을 해보라고 권유한 의도는 말 그대로 하우스오브데드나 두더지잡기 같은 보편적인 ‘게임’을 같이 해보자는 것이었지, 눈을 부릅뜬 주안이 자기를 다짜고짜 땅굴 같은 좁아터진 방에 밀어넣고 그 앞에서 미친 듯이 고함지르라는 것이 아니었다.

“땐!”

눈을 부릅뜬 주안은 그러거나 말거나 광분의 댄스를 추었다. 아니 댄스인가, 헤드뱅잉인가?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이 좁아터지고 어두운 방구석에서 혼자 고함지르고 춤추고 북도 치고 장구도 치고 잘도 논다 놀아.

“붐 샤카라카! 붐 샤카라카! 다 같이 놀자! 다 같이 놀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

“아, 뭐 해요! 박수 안 치고!”

소리지르고 춤추는 와중에 의자에 딱딱하니 굳어 있는 석진을 지적해서 박수도 치게 만든다. 아무래도 무대의 초천재인가 보다. 아니면 진짜 가수인가? 눈을 부리부리 뜨고 툭하면 “땐!”을 외치며 팡팡 뛰는 주안의 모습은 어둠 속에서 홀로 빛을 발하는 모니터 앞에서 마치 춤추며 굿하는 무당처럼 보였다.

“아 워너 땐! 땐! 땐! 때댄!”

“…….”

“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 붐 샤카라카아아아아아앗! 다 같이! 놀즈아아아아아아악…….”

지옥인지 천당인지 굿판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삼 분이 지났다.

처음 시작할 때처럼 느닷없이 노래가 뚝 끊기고 주안은 헉헉대며 빈 의자 위로 쓰러졌다. 그 옆에 석진이 오도카니 앉아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다가 뒤늦게 밀린 박수를 짝짝 쳤다. 뭔지 모르지만 왠지 박수를 안 치면 안 될 것 같다.

“봤죠?”

쓰러져 헉헉 숨을 몰아쉬는 것도 잠시, 주안은 벌떡 일어나 모니터를 가리켰다. 영문도 모르고 박수 치고 있던 석진도 덩달아 주안이 가리키는 모니터를 가리켰다.

빰빠라밤!

팡파르와 함께 화면에는 커다란 숫자가 떠 있었다.

[99점]

[와우! 우리동네 가수왕 탄생!]

“봤죠!”

주안이 다시 한 번 커다랗게 외쳤다. 석진은 박수치는 그 모습 그대로 눈만 깜박거렸다. 그런 석진이 답답한지 주안이 빠르게 말했다

“저게 노래방에서 제일 높은 점수란 말이에요! 대박이죠!”

“예……?”

“전 게임 못하거든요. 그래서 노래! 오락실에서 노래할 수 있는 코인노래방! 제가 노래방에서 점수 진짜 잘 나오거든요! 노래를 잘하는 건 아닌데 노래방에서 점수 잘 나오는 공식은 정해져 있어서 그대로 따라 하면 돼요. 뭐냐면…….”

아, 아, 아.

석진은 그제야 천천히 이해했다.

자신이 들어와 있는 곳이 코인노래방이라는 곳이고 주안은 게임을 못해서 코인노래방에 들어온 것이며 주안이 지금 한 것은 소리지르거나 굿하거나 한 것이 아니라…….

“그거 노래였어요?”

“…….”

석진이 뒤늦은 깨달음으로 멍하니 뱉은 말에 삽시간에 주안의 눈꼬리가 치켜올라갔다. 아차 싶어 석진이 입을 가렸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빅뱅 몰라요?”

“아, 그…….”

“판타스틱 베이비 몰라요? 음악대장 몰라요? 대박!”

“저, 전 미국에서…….”

“한국 온 지 3년 됐대매요!”

“일하느라…….”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판타스틱 베이비를 몰라요? 혹시 한류 몰라요? 케이팝도 몰라요?”

아무래도 주안은 석진이 말한 걸 ‘그런 노래가 있느냐’란 뜻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그런 걸 노래라고 부르느냐’는 뜻이 아니라. 천만다행히도. 휴.

“아, 알아요. 한류 알고 케이팝 알아요. 다 알아요.”

“그래요? 진짜 다 알아요? 모르는 것 같은데.”

“알아요. 판타스틱 베이비도 안다니까요.”

주안이 부르는 게 ‘그’ 판타스틱 베이비인지는 지금 알았지만.

“진짜요?”

“그럼요. 진짜…… 풉.”

필사적으로 변명하던 석진은 그러다 결국 참지 못하고 풉 웃었다. 아까 판타스틱 베이비랍시고 방방 뛰며 ‘땐!’ 하던 주안이 생각나서 그렇다.

“왜요?”

“아니, 그게…….”

변명하기에는 할 말이 너무 없다. 지금 눈을 땡그랗게 뜨고 태연히 ‘왜요?’ 하고 묻는 얼굴이 아까 ‘땐!’을 외치며 눈을 부라리던 얼굴과 겹쳐서 그렇다고 하면 분명 자신을 잡아 죽이겠지? 하지만 웃지 않기에는 너무 웃긴데?

석진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수상쩍은 눈길로 주안이 이쪽을 보든 말든 마음껏,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허리를 꺾어가며 빵빵. 도저히 웃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이 웃겼다. 세상에.

“다 웃었어요?”

간신히 웃음을 그친 석진에게 주안이 팔짱을 낀 채 물었다.

어느새 눈물까지 훔치며 석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도 주안은 다소 입가를 일그러뜨리긴 했지만 기분 상하거나 못마땅한 얼굴은 아니었다.

“자, 그럼 그쪽도 불러요.”

대신 마이크를 내밀었다.

“예?”

얼떨결에 마이크를 받아든 석진이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주안은 환하게 웃으며 대꾸 대신 팔을 잡고 일으켰다. 안 그래도 좁아터진 코인노래방에 키 큰 석진까지 자리에서 일어서자 남은 공간이 하나 없이 꽉 찼다.

제 어깨 밑에 닿는 주안의 체온이 묘하게 신경 쓰이는 걸 모른 척, 손에 든 마이크만 만지작거리던 석진이 제 턱밑에서 환히 웃고 있는 주안에게 어색하게 말했다.

“저, 근데 전 노래 잘 못하는데…….”

“에이, 그래도 한번 해봐요! 스트레스 쫙 풀려요!”

“저 그런 거 없는데…….”

“설마 그럴 리가요! 한번 불러봐요! 천 원 넣어서 노래 두 개 더 부를 수 있는데?”

“…….”

“설마 내가 노래 부르는 거 보고 그렇게 웃어놓고 자기는 뒤로 빼겠다는 거 아니죠? 그죠?”

망설이는 석진의 뒤통수를 강타한 것은 주안의 그 마지막 말이었다.

“……아뇨.”

굳게 결심한 얼굴을 한 석진이 주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미 주안은 리모컨을 들고 화면에 검색창을 띄워놓은 상태였다.

“여기 팝송도 있는데.”

“…….”

“검색해드릴까요?”

“아뇨.”

뭐든지 말만 하라는 얼굴로 자신만만하게 이쪽을 보고 있는 주안을 향해 석진이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오빤 강남스타일 틀어주세요.”

오락실 가장 구석에 처박힌 주제에 오락실이 떠나가라 요란한 노랫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던 코인노래방의 문이 벌컥 열렸다. 게임하면서도 힐끔힐끔 그쪽을 주시하고 있던 오락실 주인의 눈길이 곧 그쪽으로 쏠렸다

가장 먼저 나타난 사람은 키가 작달막한 여자였다. 뒤로 질끈 묶은 찰랑찰랑한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경쾌하게 걸어 나온 여자는 온갖 고성방가로 스트레스를 다 풀었는지 쌩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다음 나타난 사람은 키 큰 남자였다. 얼굴을 보면 다들 헉, 할 정도로 단정하게 잘생긴 남자는 그러나 왠지 모르게 살짝 피로한 얼굴이었다. 누가 보면 여자한테 기 빨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재밌죠!”

앞서던 여자가 고개를 홱 돌리고 남자에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피로가 뚝뚝 떨어지는 얼굴을 하고 있던 남자는 그런 여자를 보고 슬쩍 웃었다

“네, 재밌어요.”

“그죠! 노래방 짱이죠! 재밌다니까요!”

“네. 재밌었어요.”

남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오락실 주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재밌었겠지. 코인노래방에서 한 시간을 죽치고 앉아서 고래고래 온갖 아이돌 노래를 섭렵했는데!

방음도 제대로 안 되는 오락실 코인노래방에서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둘은 빅뱅과 싸이를 시작으로 온갖 한류 아이돌의 노래를 섭렵하며 오락실이 떠나가라 고성방가했다.

멀쩡하게 잘생긴 청년과 흐뭇하게 어여쁜 아가씨, 청춘남녀 둘이 나란히 노래방으로 들어가길래 분명 한참을 그저 길고 긴 노래가 아무런 목소리도 없이 흘러나올 거란 주인의 예상과는 달리 워낙 떠들썩한 노래가 끊기지 않았던지라,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청소하는 척 빗자루를 들고 슬금슬금 다가가 창문 안을 들여다본 주인이 본 건 다름 아닌 그 점잖아 보이는 남녀 둘의 걸판진 춤판이었다.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의 헤드뱅잉과 마이크에 대고 ‘��!!!!!!’ 고성을 지르는 남자의 래퍼 손짓은 그 춤판 중에서도 하이라이트였다.

“아, 그러고 보니까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났네.”

오락실 주인이 혼자 무슨 생각을 하든 말든, 오락실 한쪽에 걸려 있던 시계를 보며 주안이 하도 노래 불러서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시계는 어느새 밤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주안을 따라 시계를 보던 석진도 덩달아 눈을 크게 떴다.

“그러게요. 엄청 늦었네. 얼른 가봤어야 하는데.”

“어, 어디 가시는 길이었어요?”

분명 집에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서 밥 안 먹었음 밥이나 같이 먹자고 할랬는데. 어쩐지 아쉬움을 느끼며 주안이 물었다. 석진은 씩 웃었다.

“아, 출근하는 길이었어요.”

“출근……요?”

밤 9시에 출근이라니? 대체 무슨 직장이길래 밤에 출근하지? 주안은 의구심을 숨기지 못하고 눈을 굴렸다. 그러나 석진은 더 설명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집까지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가시죠.”

출근하는 길이라면 굳이 데려다줄 필요까진, 이라고 만류하려던 주안의 말은 그러나 오락실을 벗어나 마주하게 된 심연 같은 짙은 어둠을 마주하게 된 후 뚝 그쳤다.

역시나 밤거리를 혼자 걷는 건 좀 그렇다. 특히나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집으로 들어가다가 뒤에서 나던 탁탁 자신의 뒤를 밟는 발소리까지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뭐 해요? 빨리 가야죠.”

몇 걸음 앞서 걷다가 뒤돌아보는 석진을 향해 주안은 어설피 웃었다. 그래, 남들은 집에 갈 시간이다. 댁처럼 출근할 시간이 아니라.

아까는 몰랐는데 석진은 여전히 스리피스 슈트를 쫙 빼입은 모양새였다. 머리까지 왁스로 깔끔히 스타일링했다. 어느 모로 보나 단정하고 흠잡을 데 없는 신사의 정석이다.

하, 잘생겼네. 진짜.

“네, 가요.”

저렇게 잘생긴 사람이 왜 저렇게 잘생기게 꾸미고 밤에 출근하는 거야, 영 수상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