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꼭 그 사람이어야만 해요. 그를 잡아야, 보석이 돌아오거든요.”

힘든 생에 사랑을 주던 ‘그’와 어린 딸 하원을 잃고 절망 끝에 자살을 택한 노하영. 죽은 그녀 앞에 나타난 풍요의 신 사누엘은 그녀가 이번 생의 기억을 가진 채 로맨스 소설에서 파생된 세계 데인에 환생하여, 환생한 ‘그’를 찾아내면 그녀의 딸 하원을 돌려주겠다고 말한다. 그는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녀가 그를 정확히 찾아내는 순간 그에게 기억이 돌아올 것이라면서.

딸 하원을 만나기 위해 거래를 받아들인 하영은 원래 소설 속에는 없던 인물인 아일 공작가의 막내 공녀 하엘로 환생하여 전생의 ‘그’를 찾기 시작하는데……. 하엘의 주변을 맴도는 각양각색의 남자들 중 과연 ‘그’는 누구일지?

“리시안서스의 꽃말은.”

“…….”

“변치 않는 사랑.”

2. 작가 소개

올로로소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3. 차례

#01.

#02.

#03.

#04.

#05.

#06.

#07.

#08.

#09.

#10.

#11.

#12.

4. 미리 보기

“뭐……!”

싸늘한 공기가 순식간에 훈훈해지더니 내 몸이 둥실 떠올랐다. 나를 위협하던 낫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금 테이블로 돌아온 내 몸은 발칙하게도 얌전히 의자에 앉았다.

“미안해요. 사정 설명을 빨리 했어야 했는데. 우선, 하영, 당신은 죽은 것이 맞아요. 아,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 같아 약간의 힘을 썼을 뿐이니 너무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가 차분하게 설명을 하든 말든, 나는 내 몸이 떠올랐다는 사실에 정신이 팔려 몸을 버둥거리고 있었다.

“당신을 데려온 것은 한 가지 제안을 하기 위해서예요.”

“집중해라.”

“에밀.”

강제로 그들을 향해 고정되어버린 내 얼굴에 나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아무래도 여자 쪽은 내가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이 납득할 수 없는 힘은 우선 젖혀두어야겠다. 질책하듯 여자를 쳐다보던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나는 당신이 제가 관리하는 차원으로 와주었으면 좋겠어요. 보통 환생이라고 하죠?”

“……그런 일은 굳이 저에게 허락을 받으실 필요가 없지 않나요? 전 이미 죽었는데요.”

“평범한 환생과는 달라요. 기억을 유지한 채 가셔야 하니까요.”

“거절하죠.”

아무리 미친 사람이라지만 내 몸을 맘대로 제어하는 등 이상한 힘을 쓰니 우선은 맞춰주자 싶어 대화에 응했으나, 말도 안 되는 말을 지껄인다. 상처밖에 없었던 인생이다. 그걸 다 기억하고 살아가라고? 내가 왜? 그게 싫어 죽음을 택했던 나다.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당신을 떠올렸던 그 남자.”

움찔.

“그 남자도 보내드리지요.”

태연함을 가장하려 했지만 내 눈이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애써 초점을 잡고 평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끌려가면 안 된다. 거래의 기본은 냉철함. 구미에 당긴다고 헤헤거리다간 뒤통수 맞기 십상이다. 6개월 전 그때처럼.

나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손을 뻗는 사람들은 다 무언가 목적이 있었다. 나를 위한 거래인 듯 말하는 것에 속으면 안 된다.

“거봐.”

여자가 거만한 표정으로 남자를 향해 말을 던진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반응에 나는 조금 의아해졌다. 뭐지. 내가 무언가 잘못했나. 정말 이들은 신이라 내 생각도 읽을 수 있는 걸까? 사실은 이 거래에 관심이 생겼다는 것을 들켰나?

“당신이 할 일은 그 남자를 찾아내는 겁니다.”

“제가 왜, 그래야 하죠?”

나 역시 그를 찾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야속하게 문자 하나 남겨놓고 떠난 그를 찾아 꽉 안아주고 싶다. 그 문자에 가득 담겨 있는 그의 바람을 이루어주고 싶다. 하지만 우리가 인연이라면 어디서든 만날 터.

더군다나 내가 찾아야 한다는 말로 미루어 볼 때 그는 기억을 잃은 듯했다. 굳이 지난 생의 아픈 기억까지 온전히 감당하며 그를 찾을 자신이…… 나에게는 없다.

“나는, 지쳤어요. 이제 날 좀 내버려두세요.”

한숨 가득 터져 나온 나의 말에 여자가 비뚜름한 미소를 짓는다. 남자도 슬쩍 표정을 굳히고는 한숨을 쉰다.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정확하게 찾아낸다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드리도록 하죠. 당신이 싫다면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

사람의 심리가 참으로 요상하다. 지쳤다고,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다짐해놓고는 보상이란 말에 또 흔들린다. 지난 5년간 끔찍할 정도로 가난한 생활을 해와서일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그런 내가 끔찍해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제일 먼저 떠올리는 보상이 저런 것이란 말인가.

동시에 저 보상을 확인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인지 알고 나면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 또다시 목줄을 맨 채 살 수는 없다. 저들의 목적이 무엇이건 나는 끌려가지 않으리라.

“노하원.”

나직하게 떨어진 단어에 그때까지 하고 있던 모든 생각이 올스톱했다. 번쩍 고개를 들고 거의 노려보듯 남자를 보았다.

“당신들 누구야! 그놈들이 보냈어? 또 뭘 하려고? 내 딸은 이미 죽었는데! 더 뺏어갈 것이 남았어?”

순간 이성이 나가서 울부짖듯 내지르니 여자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내 딸을 죽인 놈들과 한패인가? 어째서 하원이 이름을 꺼내는 거야? 하필 내게 온 덕분에 고생만 하다 죽어간 나의 불쌍한 딸……!

“함부로 그 아이의 이름을 꺼내지 마.”

“의외네.”

으득, 이를 갈며 경고를 했다. 내가 발악을 하든 경고를 하든 두 사람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분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의외라는 말을 던지고 신기한 생물을 바라보듯이 나를 관찰하던 여자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녀를 보며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부드러운 표정을 하고 있던 남자가 최후통첩을 날렸다.

“당신이 그 사람을 만나 아이를 낳는다면, 첫아이는 하원이가 될 겁니다. 그게 이 거래의 보상입니다.”

아아, 나는 또 패배했다. 내 품에 다시 하원이를 안을 수 있는 희망이 생겼는데 더 이상 뻗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잔뜩 발톱을 세우고 그들에게 덤벼들던 나는 그 말을 기점으로 기를 꺾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