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그 사내가 태자 백영이라 하대요. 근데 이 태자가 아주 웃기지 뭡니까. 글쎄, 형제가 열두 명이 있었다는데 제 피붙이 빼고는 다 죽였다지 뭐예요. 그리고 그 죽인 형제의 목을 가지고 제 아비에게로 가 아비마저도 뒤로 넘어가게 만들었다 합니다. 그 아비가 몇 년째 자리보전하고 누워 있다는데 제가 그렇게 자빠뜨려놓고 극진하게 병수발 들러 오고간다지 뭡니까. 아주 웃기지요?”

오년간 독수공방의 끝은 죽음. 그리고 되살아난 영비.

조용한 궁 안이 술렁이기 시작하고 태자 백영은 이제야 그녀에게 흥미를 느끼지만 영비, 아니 여희의 목적은 궁을 벗어나는 것이다!

백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여희의 얼굴을 보았다.

“너는 사람이냐, 귀신이냐?”

여희는 재미난 것을 들었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 어느 것도 아니다.”

“그럼 너는 무엇이냐?”

2. 작가 소개

정혜

착실한 청개구리

▣ 출간작

달콤한 인생(eBook)

몸(eBook)

3. 차례

#귀향

#지(之)

#연가

#도륵

#정(情)

#답가

#작가 후기

4. 미리 보기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 살렸을 뿐입니다.”

“황태자 때문이냐?”

“이 일은 백영과 관계가 없습니다.”

“헌데 그놈은 어이하여 너의 벌까지 제게 달라 그 난리냐.”

여희는 고개를 들었다. 한순간 심장이 크게 고동쳤다.

“……백영을 만나셨습니까?”

“그래. 염라와 함께 구경으로 놈의 생을 보고 있는데, 네가 나타나자 빌빌거리며 이것은 모다 자기 탓이니 네게 줄 벌도 제게 달라 간청하지 뭐냐.”

한효가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여희는 눈을 내리깔았다. 저도 모르게 주먹 쥔 손을 발견하고 천천히 풀어낸다. 오지랖이 넓기도 넓은 인간이었다. 분수도 모르는 것은 지옥도에 가서도 여전하여 우스운 꼴을 부리는구나.

“해서, 그 말대로 해주기로 했다.”

여희는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저가 그렇게 다 지고 가겠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지. 아니 그러하냐.”

한효가 흘긋 여희를 보았다. 세로로 선 이무기의 황금빛 눈이 그 속까지 꿰뚫고 보겠다는 듯이 진득하니 형형한 색을 발했다.

“아님, 너도 황태자의 벌을 대신 받겠다 내 옷자락을 잡고 늘어질 테냐.”

“……굳이 그리하겠다 하면 저 또한 말릴 이유가 없지요.”

한효가 웃음을 터트렸다. 같이 웃지 못한 것은 여희 하나뿐으로, 한효는 무엇이 그리 재미진지 실컷 웃고는 우차를 향해 몸을 틀었다.

“이번 일은 이리 넘어가나 너는 앞으로 행실을 똑바로 해야 할 것이다. 고작 인간 하나에 이게 뭔 꼴이냐. 덧없음이다.”

한효가 우차 안으로 몸을 싣고, 발이 내려갈 때 그 밑으로 이무기의 두툼한 꼬리가 헤엄치며 안쪽으로 사라졌다. 황소가 발을 구르자 우차가 따라 움직였다. 허공에 떠올라 푸르스름한 하늘을 가로질러 나아간다.

여희는 앞을 보았다. 마을 전경 저 너머로, 궁이 보였다.

궁을 보는 동안 목구멍이 꽉 조이는 듯한 기분이 들어 시선을 돌렸다. 별이 사라지고 하얗게 빈 달이 구름에 가려지기 시작한 하늘 속에서 저도 모르게 지옥도가 있는 방향을 더듬기 시작했다. 백영의 육체는 땅에 묻히고 없지만, 혼은 저곳에 있었다.

“미련한 것. 제까짓 게 뭐라고 벌을 제가 다 받겠다, 어쩐다…….”

말을 하다 말고 여희는 입을 다물었다. 자꾸만 백영의 꿈을 꾸고 있었다. 어이하여 이렇게 머릿속을 헤집는 것이냐 했더니,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었던 모양이다.

인간의 거죽을 너무 오래 두르고 있었나 보다. 얼토당토않게 그리움을 느끼고 있는 이 모양새라니. 한효의 말이 옳다. 어찌 이렇게 덧없을 수가 있는가.

그러면서도 여희는 동이 터, 붉은 해가 대지를 비출 때까지 지옥도가 있는 곳에서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