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중에서-

“어, 집이 아니네. 사장님이 데려왔나?”

아지가 침대를 데구루루 구르며 한 소리에 도환은 굳고 말았다. 오해 살 여지가 충분하다. 아니 범람할 정도다. 택시라도 태워 집에 보내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지만 귀찮았다. 아마 그곳에서도 저 여자의 사채 농성은 지속될 테니까.

그때였다. 아지가 부스스해진 머리를 긁적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럭셔리해 보이는 룸. 일단 제방은 아니다. 컴퓨터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이건 또 꿈속이군. 아지는 배시시 웃었다. 그렇지 않은가. 기껏 하루 탐냈더니 남주가 지훈이가 아니라 차도놈이네? 쓰레기통을 바라보는 사내다운 넓은 등짝을 발견한 온몸이 지릿지릿거렸다. 차가운 도시 놈, 넌 이제 죽었어. sexy back! 나나나, sexy back! 아지는 아무리 흔들어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까만 단발머리를 내저었다. 목표는 놈의 등짝. 도환이 비명을 지른 건 그 순간이었다.

“미쳤어?”

등 뒤에서 팔을 앞으로 교차시키고 도환의 가슴팍을 더듬던 아지가 꾀꼬리가 울고 갈 청량한 느낌으로 야한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나랑 자자, 사장님아. 나 잘하는데. 한번 뿐인 삶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술 먹다 미쳤군. 곱게 미쳐. 못 봐주겠으니까.”

이미 오늘 하루는 버렸다 생각한 도환이 제 몸에 끈적끈적하게 붙은 아지의 팔을 떼어 내려는데 아지가 외쳤다.

“응.”

“응?"

“응! 곱게 미칠래!”

도환은 어깨를 타고 넘실거리는 이상한 기운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활짝 웃은 레고가 거북이 등껍질처럼 도환의 등에 올라타더니 채 말릴 새도 없이 도환의 귓속을 제 혀로 파고 들어가 야릇한 느낌으로 핥아 댔다. 양주 두병에도 끄떡없던 도환의 얼굴이 막 담가 낸 홍주처럼 붉어지는데 버드나무처럼 탄탄한 도환의 허리를 양 다리를 꽉 물더니 조여 대기 시작했다. 도환의 몸이 여체의 공격에 지끈거리기 시작했고 상대가 여자임에도 그는 아지를 거칠게 밀쳐 냈다.

쿵!

아지가 바닥에 쿵하고 떨어졌지만 아픈지 아닌지 관심도 없는 도환의 눈빛이 속눈썹과 함께 파들거리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건 무슨 에로 레고도 아니고.

아지는 파르르 떠는 도환에게 요염하게 무릎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어찌나 몸짓이 유려한지 머리 속에서 플래시가 터질 정도였다. 꼼짝을 할 수 없었다. 아지의 시선은 블랙홀처럼 도환의 시야를 잡고 놔주지를 않았다. 곧 천천히 일어나 도환의 목을 감싸 안은 아지가 한 건 없어도 본 건 많아 한쪽 허벅지로 도환의 대퇴부를 서서히 쓰는 걸 반복했다. 순간, 도환의 목소리가 무겁게 깔렸다.

“그만해. 마지막 경고야.”

마지막 경고라는, 실행 의지가 담뿍 담긴 위협적인 말투에 평범한 여자였다면 몸이 식어 그만 두었을 테였다. 하지만 아지는 어차피 일장춘몽이니 앙증맞은 반항이야 마음껏 받아 주겠다며 도환의 귓가에 날숨을 섞어 넣으며 속삭였다.

“진짜도 아니면서 왜 이래. 같이 자자, 사장님아. 후오! 난 다할래요.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와 매끈하당.”

공습 대경보였다. 조금은 식어 버린 작은 손이 셔츠 깃 사이로 파고들자 도환은 고개를 기울여 아지를 바라보았다. 아지는 도환과 시선을 마주한 채 대담히 그의 가슴팍 단추를 열고 도드라진 그곳에 입술을 묻고 혀로 할짝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사십오도 각도로 눈을 치켜뜨고 까만 눈동자를 굴렸다. 순간 도환의 머리에서 핀트가 나갔다. 필사의 인내심을 발휘한 도환이 본드처럼 붙어 있으려는 아지의 머리를 가슴팍에서 떼어내며 말했다.

“그만하랬다? 집에 데려다 준다구. 안.갚.아.도. 돼. 됐어.”

“쉿!”

입술에 손가락을 얹고 피식거리며 웃는 양이 세기의 요부 못지않다.

그도 그럴 수밖에, 뭐든지 사람은 보는 대로 익힌다. 아지는 백수 시절 내내 야동과 살았다. 남자를 넘어 오게 하는 여자들의 표정이야 수없이 봤고 꿈마다 연출했다.

게다가 눈앞의 도환은 너무나 멋졌다. 섹시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굳이 연출하지 않아도 연기력은 오스카 상 확정이었다. 위험해 보이는 분위기도, 속내를 모르겠는 표정도, 점수를 매기자면 십 점 만점에 백점인 남자. 단, 평소의 지훈이 보다 말이 많은 게 문제였다. 뭘 자꾸 안 된대! 내가 돼, 내가!

정원 라임모모
머릿속에 맴도는 사랑 이야기는 많으나 손발이 사맞디 아니하다.
그래서 느리지만, 느린 대로 풍경 보며 걷는다.

출간작 [늪, 아찔한 결혼, 사장님과 미스 금]
출간 예정작 [불편한 연애, 륜, 히포크라테스 선서]

가입 카페 - 네이버 카페, 편애偏愛.
http://cafe.naver.com/one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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