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몇 년간의 기억이 없는 아란.
그런 아란의 주위를 맴돌며 그녀의 사랑을 갈구하는 세 남자.
이웃집 동생이자 어른스럽고 다정다감한 상민.
아란에게만 유독 차갑게 구는 괴짜 남동생 아천.
소개팅으로 만나 회사까지 쫓아온 주당 오빠.
아란의 기억이 돌아오길 바라는 이와 돌아오지 않길 바라는 세 남자 사이에서 아란의 알콩달콩한 사랑이 시작된다.



<본문 중에서>

“그나저나 여긴 어쩐 일이에요?”그의 눈치를 보며 슬쩍 묻자 그가 차 서랍에서 담뱃갑을 꺼내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담배 피웠었나? 그는 불은 붙이지 않은 채 뭔가 답답하다는 듯 핸들에 엎드렸다가 뒤에 걸려 있던 양복 재킷에서 작고 하얀 종이가방 하나를 꺼내 내게 전해 주었다. 안을 보니 온갖 종류의 약들이 들어 있었다.“뭣 때문에 아픈지 모르겠어서.”
“이것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에요?”내가 그를 바라보자, 그는 마치 이런 일은 처음해 본 사람처럼 어색한 표정으로 앞 유리창 건너로 슈퍼만 내다보고 있었다. 그에게 묻고 싶어졌다. 우리가 어렸을 때 알던 사이였다고 했는데 그런 얘기는 왜 내게 언급하지 않는 건지. 오늘 오전에 꾼 꿈이 정말 예전에 있었던 일인 건지.“이 약들 고마워요.”
“너, 이렇게 쓰러지는 거 자주 이래?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말을 꺼내려는데, 먼저 주당님이 내게 물었다. 나는 말할 템포를 놓쳐 버렸다.
아니, 저번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그에게는 그리고 상민이에게도 이런 얘기는 하면 안 될 것 같아. 역시 하지 말자. 내가 아니라고 말하며 고개를 흔들자, 그가 알았다는 듯이 입에 물었던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다시 유리창 밖을 멀리 바라보았다.
“그럼 저는 가 볼게요. 약, 정말 감사해요.”내가 짐들을 챙겨 차문을 열고 나가려 하는데, 그가 갑자기 고개를 숙여 내 왼손을 붙잡았다. 발 한쪽은 밖으로 나가 있고 발 한쪽은 안에 있는 어정쩡한 자세의 나는 깜짝 놀라 그를 뒤돌아보았다.
“너, 아프지 마라.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얼굴이나마 보고 싶어서 만났던 거니까. 그러니까 아프지 마.”알 수 없는 그의 말이 과거의 나를 알기에 나오는 말인 것 같아서, 그리고 그때의 추억에서 비롯된 말인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떠난 후, 촉촉해진 눈가를 닦아 내다가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눈물? 어째서? “아란아.”뒤에서 나는 익숙한 소리에 나는 얼른 눈물을 훔치고 뒤돌아섰다.
“상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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