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같은 수험생활 시절 그를 만났다. 홈즈. 그는 베일에 싸인 남자였다. 가장 힘든 순간에 그가 내게 위로가 되었다. 그런데 이 배은망덕한 신춘이란 인간은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그를 떠났다. 서서히 멀어져 그를 버렸다. 하지만 우리의 인연은 내 생각보다 깊었다.
그를 다시 만나고 나서야 나는 내 사랑의 깊이 역시 내 생각보다 깊었음을 깨달았다. 그의 사랑스러운 봄 꼬마가 되고 싶은데 그럴수록 내 삶이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한다. 선배 검사는 홈즈를 둘러싼 무서운 소문을 들려준다. 내 소중한 아저씨가 재산 욕심에 부모를 죽인 사람이란다. 난 홈즈에게 직접 듣기까진 그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기로 한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려는데, 그는 날 차갑게 밀어낸다. 거기다 더해 갑자기 누군가 나를 노리기까지. 대체 왜, 무엇 때문에? 홈즈 때문일까? 그래도 이제는 절대 그를 포기하지 않기로 나는 다짐한다. 아무리 힘들어지더라도 이제 난 사랑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다.


<본문 중에서>

누군가 뒤따라오는 기분에 나는 살짝 섬뜩한 기분을 느끼며 재빠르게 뒤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요즘 별것도 아닌 일들에 과민반응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 느낌이 너무 싫어 나는 종종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이잉.
가방 속에서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폰을 꺼내들어 발신인을 확인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받을까, 말까. 잠깐 고민이 되었다. 무슨 전화일지 그냥 받아나 보자 생각하며 통화버튼을 누르는데 끊겨 버렸다. 나는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국번이 중앙지검 근처인 것 같기도 한데, 수사 나갔다가 누군가 공중전화에서 전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봄!”
바로 그 순간 누군가 날 불렀고, 난 멍한 눈길로 소리가 난 쪽을 쳐다봤다.
“아저씨?”
엄청난 속도로 뛰어온 설록이 내 머리를 자신의 팔로 보호하듯 휘감으며 안았다. 그리고 뭔가 퍽 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설록의 고통스러워하는 신음 소리가 이어졌다.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나는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았다.
“괜찮아요?”
난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홈즈는 고통스러운 듯이 왼손으로 오른쪽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그의 발 옆에는 조그마한 화분이 산산조각 난 채로 있었다. 난 위쪽을 올려다봤다. ‘엄마!’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의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화분을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병원에 가야겠어요. 같이 가요.”
내가 그의 왼팔을 조심스럽게 잡아끌며 말했다. 화분을 떨어뜨린 사람은 이 빌라에 사는 사람이니 대충 나중에 찾아가면 될 거라 생각했다. 지금은 설록의 상태를 파악하는 게 더 급했다. 난 그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경황이 없었다. 머릿속은 빨리 그를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나 여기 볼일 보러 온 거예요. 일 보고 알아서 병원 들릴 테니, 신 검사님은 갈 길 가세요. 크게 다친 것 같지도 않아요.”
설록이 잘 모르는 사람에게 말하듯 대답했다. 난 그런 그의 태도에 화가 났다. 지금 누구 때문에 다쳤는지 내가 뻔히 아는데, 나한테 그냥 가란 말인가. 뭔가 오기가 생겼다. 나, 사실은 상당히 강한 성격의 사람이다. 나는 작정한 듯이 그가 감싸고 있는 오른쪽 어깨를 꾹 눌렀다.
“아악.”
홈즈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냈다. 나는 그런 그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올려다봤다.
“괜찮으시다면서요.”
사실은 그가 한심한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이렇게 다친 게, 다른 누구 때문도 아닌 나 때문이라는 게 화가 났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만졌을 때의 그 느낌이 좋지 않았다. 부상의 정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심한 것 같았다.
“내가 알아서 병원 갈 테니까 네 갈 길 가라구.”
“싫어요. 차 어딨어요?”
“뭐?”
“안설록 씨, 차 가지고 왔을 거 아니에요. 차 어딨냐구요.”
“안 가져왔어.”
“거짓말. 빨리 차키 내놔요.”
난 막무가내로 - 하지만 그의 어깨가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 그의 옷의 호주머니를 뒤져서 차키를 찾아냈다. 그는 고통스러운 와중에 황당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차는 어디 있는지 확실히 몰랐지만 근처에 있을 거란 생각으로 버튼을 눌렀다. 빙고. ‘삐빅’ 소리와 함께 조명등이 번쩍하는 SUV가 눈에 들어왔다.
“너, 어쩌려구? 너 운전 못하잖아.”
“누가 그래요? 나 운전 못한다구. 얼른 타기나 해요.”
난 말리려는 설록을 아랑곳 않고 운전석에 앉았다. 그는 잔뜩 미심쩍은 표정으로 날 쳐다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조수석에 앉았다.
“왼손으로 어깨 잡고 있어요.”
난 손수 그의 안전벨트를 매 줬다. 그 와중에 내 코가 그의 뺨에 스쳤고 그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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