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렬히 사랑했기 때문에 이별의 상처는 컸다. 재벌 3세, 박현성이라는 남자는 민아가 넘볼 수 없는 벽이었다. 그와의 이별은 지독했고 가슴 아팠다. 그래서 닫히는 마음, 그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던 마음이 우연히 만난 이서우라는 남자로 인해 점점 열리기 시작했다. 모든 걸 다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힘이 들 때, 그럴 때마다 마법처럼 등장하는 이 남자. 이 남자가 천천히 만아의 마음을 두드려본다.
로맨스를 시작할까요?

“다르네요.”

취기가 돌려고 하는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으며 서우를 지나쳐 다시 룸으로 가려고 하는데 서우의 입에서 나온 4음절이 민아의 발걸음을 뚝 멈추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서우를 올려다보는 민아의 눈빛이 전과는 다르게 날카롭게 커졌다.

“뭐가요?”

“룸 안에서는 고분고분하더니 룸 밖에서는 다시 공격적인 태도잖아요. 늘 사람을 이렇게 대하나요?”

상황 봐가면서 적당히?

“제가 잊었네요. 이서우 선생님도 한통속이니 잘 보였어야 했는데 실례를 저질렀네요.”

“이봐요, 진민아 씨.”

“이서우 선생님 같은 사람들에게 하기 싫어도 알랑방귀 뀌어 가면서 우리 거 하나라도 쓰게 만들어야 하니까 비위를 안 맞출 수가 없죠. 노래 한 곡 불러라 하면 네, 그러죠. 술 한 잔 받아 마셔라 하면 네, 알겠습니다. 심하게는 춤 한 번 춰봐라 하면 네, 좋아요. 적어도 이래야 하니까. 그래야 내가 사니까. 이러면 좀 답이 되었나요?”

족히 10cm는 넘어 보이는 높은 힐에 몸을 싣고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해 벽을 짚고 있는 모양새가 꽤나 우스운 것이었지만 민아의 눈만큼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냥 간단한 말이라도 좀 유들유들하게 이어 가고 싶었지만 변함없는 날카롭고 모가 난 태도에 서우는 한숨을 자아냈다. 의도한 게 그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묻지도 않고 저쪽에선 판단에 결론까지 내려 사람을 몰고 가니 더 이상 어떻게 이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 다다랐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상관없어요.”

“오늘 그 상태로 마시다간 혹여 무슨 일 날까 봐 노파심에 하는 소리예요.”

“그 상태?”

애초에 그러한 우연으로 만난 것이 찜찜했기에 민아는 아까부터 서우에게 신경이 쏠렸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결국은 찜찜함이 개운함으로 전해지진 않고 더한 습기를 담아 전해졌다.

“충동이 잘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하!”

이서우라는 사람의 눈에 진민아는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 빤한 것이었다. 술을 마시고 제 이성의 끈을 다 놓아 버린 채 자살 충동을 일으켜 실행까지 옮기는. 물론 저번에 보았던 연출이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고 해도 이건 도를 넘는 오지랖이자 참견이었다. 게다가 섣부른 일반화이기도 하고 말이다. 민아는 하필 서우를 그렇게 마주쳤던 것도 싫은데 방금처럼 자살 충동이나 일으키는 사람으로 쐬기가 박혀 있으니 더 심사가 뒤틀렸다.

“차라리 내원을 할게요.”

“네?”

“그러면 방금 하신 것처럼 충고 고맙게 받아들이겠죠. 정말 죽고 싶으면 내 발로 직접 찾아가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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