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아주 잠깐 스치듯 만났던 아이. “잊지 마. 내 이름은…….” 그 말만 남겨놓고 사라진 그 아이. 열여덟 연우에게 그 아이를 닮은 한 남학생이 나타나는데…….

-본문 중에서-

그 아이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바로 그 아이. 언젠가 반드시 그녀를 만나러 오겠다고 했던 그 아이. 연우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서 있자, 그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비켜.”
낮게 깔리는 차가운 목소리에 연우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 어깨를 움츠렸다. 달랐다. 저 새까만 눈동자도, 붉은 입술도, 또렷한 이목구비도 그 아이와 너무나 닮았는데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아, 미안해.”
무섭다고 생각하면 지는 거라고 민우는 항상 말했다. 그런데 진짜 무서웠다. 눈을 한껏 내리깔고 싸늘하게 노려보는 그 칼날 같은 시선에 연우는 때아닌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연우가 급하게 옆으로 비켜섰다. 그는 연우를 지나쳐 거침없이 걸어가더니 창가 맨 뒷자리에 앉았다. 그가 앉은 자리는 우연이었는지 새 학기 첫날부터 계속 비어 있던 자리였다. 연우는 혹시 그가 교실을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닌가 싶어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얼핏 보아도 준혁보다 키가 커 보였다. 다른 남학생들보다 약간 긴 머리카락이 이마를 가리며 길게 내려와 있었고, 창밖을 향해 있던 그의 눈동자는 칠흑보다도 더 검었다.
‘날 잊지 마. 널 꼭 다시 만나러 올게.’
그를 바라보는 연우의 눈동자가 조용히 일렁였다. 연우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설 때까지도 꼼짝 않고 앉아 있던 그가 그대로 눈을 감았다. 마치 자신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듯. 그의 검고 긴 속눈썹이 하얀 얼굴에 짙은 음영을 드리웠다.

[미리보기]

“안녕?”
연우의 인사에 소년은 여전히 말없이 소녀를 응시했다. 하지만 소녀에게 향해 있던 소년의 까만 눈동자가 반가움과 그리움을 동시에 내비치고 있었다. 연우는 그동안 궁금했던 병아리의 행방에 대해서 물었다.
“병아리 네가 데려갔어?”
소년이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어디로 간 거지? 안 보이던데.”
“멀리 떠나 버렸어.”
연우의 말에 소년이 조용히 속삭였다. 연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년을 바라보았다.
“어?”
“엄마도, 병아리도 날 기다리지 않고 둘이서만 멀리 떠나 버렸어.”
연우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소년을 바라보는 소녀의 시선이 잘게 흔들렸다.
“그럼 이제 안 와?”
“응.”
소년의 대답에 왠지 마음이 서글퍼진 연우가 ‘으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왜 떠나 버린 것일까? 왜 소년을 기다려 주지 않은 것일까? 그 아릿한 아픔에 연우는 한없이 느껴 울었다. 그때까지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멀리서 동생을 가만히 지켜보던 민우가 급하게 연우에게 달려오며 소리쳤다.
“이 자식이, 야. 너 누군데 내 동생 울려?”
소년이 연우의 손을 꼭 잡으며 물었다.
“넌 날 기다려 줄 거지?”
“응? 훌쩍.”
연우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이 그런 연우를 꼭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널 만나러 다시 돌아올게. 잊지 마. 내 이름은…….”
“어절씨구?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감히 누굴 끌어안고 지랄이야? 저리 안 떨어져?”
민우가 버럭 화를 내며 소년을 밀어 버렸다. 소년이 모랫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도련님.”
어디서 나타난 건지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놀이터로 뛰어왔다. 연우가 소년에게로 다가가려 하자, 민우가 소녀의 손을 잡아채며 집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가자.”
제 오빠의 손에 억지로 끌려가는 소녀를 향해 소년이 소리쳤다.
“날 잊지 마. 널 꼭 다시 만나러 올게.”
연우가 소년을 돌아보았다. 소년의 새카만 눈동자가 쓸쓸하게 빛나고 있었다.

조용하면서도 따스함이 가득한 작은 소도시에서 대부분의 학창시절을 보낸 처자입니다. 주로 쓰는 분야는 로맨스와 판타지소설입니다.

현재 로망띠끄와 피우리넷을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출간작 : 나의 연인이 되어주세요(전자책). 매혹(魅惑 : 전자책), 열애(熱愛 : 전자책-로망띠끄)
출간 예정작 : 달콤한 선택

개인 블로그 : http://blog.naver.com/pine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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