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리리안, 악의 세력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어요. 다가오는 악의 기운을 무찌를 용사가 필요합니다. 정의롭고, 강한 용사가! 그 용사가 바로 당신이에요, 리리안.”

오, 개소린데.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잘생긴 남자와의 결혼을 꿈꾸며, 평범한 백작 영애로서의 삶을 누리고 싶었다. 정의 구현, 세계 평화 따위 꿈에서조차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런 나를 신이 선택했다.

강한 힘? 멋진 검? 그걸 나한테 왜 주는 건데? 왜 하필 나야!

“리리, 나와 수도까지 동행하겠는가? 여인 혼자 가는 것보단 ‘졸라 잘생긴 사내’와 함께하는 게 더 즐겁지 않겠나?”

“어…… 아까는 농담이었고요. 신분도 모르는 사람들과 동행하긴 조금…….”

“흠, 일리가 있군. 나는 아헤로스 아르만, 이곳 아르만 왕국의 3왕자라네.”

“와, 왕, 왕자짓!”

2. 작가 소개

안녕하세요, 최아리입니다.

유쾌하고 달달한 스토리로 독자님들의 하루에 짧은 기쁨을 선물해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도록 늘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 차례

#Chapter 9. 간절한 소원, 에이프런

#Chapter 10. 수인 마을과 이별

#Chapter 11. 마법사의 탑

#Chapter 12. 진심이 되었을 때

4. 미리 보기

둥, 둥, 둥, 둥.

커다란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리리안의 심장도 쿵쿵쿵 뛰었다. 꽃과 과일들로 장식된 커다란 광장. 리리안은 그 한복판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보석 장신구가 살랑거리며 그녀의 시야 앞에서 흔들렸다.

수많은 사람이 원을 그린 채 떨어져 그녀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경쾌한 피리 소리가 노래의 시작을 알렸다. 리리안은 고개를 번쩍 들며 무릎을 굽혔다. 그녀의 앞에는 부끄러움에 볼을 분홍빛으로 붉힌 제프리가 화려한 의복을 입고 같은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긴장한 것이 너무 뻔히 보여 리리안은 저도 모르게 슬쩍 미소를 지었다. 상대가 너무 바짝 얼어 있으니 오히려 제 긴장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제프리는 홀린 듯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탓에 박자를 놓칠 뻔하고 말았다.

이크. 리리안은 그런 참사를 막고자 저가 먼저 몸을 일으키며 그의 참여를 유도했다. 제프리도 아차 싶었는지 서둘러 무릎을 펴고 일어나 동작을 취했다. 수십 번은 연습한 춤이었기에 당황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였다. 화려한 색종이가 펑펑 터지며 그들 위로 흩날렸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연출에 리리안은 활짝 웃으며 제프리의 손을 잡았다. 제프리는 빨개진 얼굴로 손을 잡아끌어 경쾌한 춤사위를 이어나갔다. 흥겨운 모습에 사람들은 환호하며 손뼉을 쳤다. 한쪽 구석에서는 슈비가 음흉한 계략을 짜다 걸려 도망친 세잔느 영애의 머리채를 잡은 채 그들의 춤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리를 잡아 돌리는 동작까지 성공해내자 어느새 제프리에겐 꿈만 같던 시간이 다 지나가 있었다. 첫 춤이 끝난 것이었다.

“수고했어요, 제프리. 잘 추던걸요?”

“리리도, 수고했어요…… 저, 혹시 내일도 성으로 와주실 수 있나요? 대접을 하고 싶은데…….”

제프리는 용기를 내서 리리안에게 물었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 그녀를 좋아하는 것 같다. 제프리는 얼굴을 잔뜩 붉히며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너무나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이런, 어쩌죠. 전 오늘 축제가 끝나면 알리헨테를 떠나요.”

“아……. 그렇군요. 알겠어요.”

제프리는 절망감에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했다. 떠날 사람에게 고백할 용기는 없었다. 리리안은 안절부절못하며 그런 제프리를 바라보았다. 침울한 모습이 못내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녀가 그를 위로하고자 손을 뻗는 찰나, 갑자기 등장한 커다란 손이 그녀의 행동을 저지했다. 정확히는, 빼앗듯이 그녀의 손을 잡아챘다.

“이제 저랑 춤출 차례입니다.”

“아, 글렌.”

리리안은 고개를 돌려 순식간에 등장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숨을 멈췄다. 글렌데르는 평소와 달리 앞머리를 완전히 깐 상태였다. 어디서 났는지 모를 검은 제복엔 그의 눈동자를 닮은 황금빛 장식이 우아하게 걸쳐져 있었다.

“약속을 잊진 않으셨겠죠.”

글렌데르는 날카로운 눈매를 은근하게 휘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금욕적인 차림새에 야한 중저음이 곁들여지자 절로 심장이 춤을 췄다.

“제프리, 먼저 가볼게요. 다음에 또 뵈어요.”

“네, 리리…….”

제프리는 말끝을 길게 늘이며 대답했다. 리리안은 그를 살필 여력도 없이 글렌데르에게 즉각 끌려갔다. 글렌데르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제프리를 죽일 듯이 바라보고 있던 그였다. 이제야 그녀를 독차지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찌릿했다.

“왜 웃어요?”

“……즐거워서요.”

또다시 노래가 시작되었다. 글렌데르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난생처음 해본 말이요,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 즐겁다. 20여 년을 살아오며 단 한 번이라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나? 글렌데르는 천천히 기억을 되짚었다.

그러나 그의 기억 속에 웃고 있는 자신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누군가와 손을 잡고, 함께 대화하고, 춤을 추는 것이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녀는 늘 이렇게 그에게 모든 처음을 선사해주고는 했다.

‘아, 모두는 아니군.’

글렌데르는 그녀의 자그마한 손을 잡아 돌리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또 한 명 있긴 했다. 그에게 엄청난 새로움을 선사해준 이가.

‘용사.’

그는 금발의 소년을 떠올리며 멍하니 리리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기묘한 기시감이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글렌데르는 춤의 동작을 따라 리리안의 허리를 잡고 공중으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바다같이 깊은 푸른 눈동자를 마주했다. 햇살이 리리안의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초콜릿색 머리칼이 바람에 살랑거리며 순간 그녀의 입술과 코를 가렸다.

“왜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봐요?”

리리안은 화사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글렌데르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충격을 받은 눈빛이었다. 리리안의 허리를 잡은 커다란 손이 파르르 떨렸다.

“……리리안.”

“네?”

글렌데르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말을 망설였다. 그의 목울대가 커다랗게 울렸다.

“당신, 혹시…….”

리리안은 그의 진지한 눈빛을 마주하고 눈을 깜빡거렸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람? 애가 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을 들은 순간 그녀의 심장이 가장 아래까지 떨어졌다.

“용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