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어느 날 나타난 모든 것을 아는 남자. 내가 일어나는 시간, 내가 산책가는 시간부터 시작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까지 모두 다.

‘이것과는 다른 과거’로부터 온 사람.

눈앞의 행복에 취해 침묵으로 진실을 묻어둔 나의 어리석음으로 사랑하는 당신을 잃었다. 우연히 닿은 마지막 기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신을 기다리고 진실을 알리는 것. 내 정체를 알게 된 당신이 설령 나를 거부한다 해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에제키엘이라고 합니다.”

나를 만나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왔다는 당신. 손끝에 닿을 듯 가까워지는 당신의 정체. 잡힐 것 같지만, 끝내 잡지 않은 건, 내가 이렇게나 따뜻한 당신의 손을 놓아야 할지도 모르니까.

마침내 알게 된 절망적인 진실. 잡은 손을 놓고 뒤돌아섰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이…….

“왜 나한테 왔어요?”

“……안 오면, 어쩌려고 했어요?”

“오셨으니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이대로 돌아서서 가버리면, 어쩌려고 했어요?”

“가실 겁니까?”

“……가지 말아요.”

내 옆에서 사라지지 말아요.

2. 작가 소개

성단

행복한 글쟁이.

3. 차례

#7

#8

#9

#10

#외전. 에제키엘

#11

4. 미리 보기

“제일린.”

“응?”

“나, 다른 건 다 너랑 맞고, 안 맞더라도 너를 좋아하니까 이해해줄 수 있는데……. 이것만은 정말 못 그러겠어.”

잔느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결심을 끝낸 그녀가 빠르게 말했다.

“나는, 이 사람하고 신전은 꼭 한번 들어가봐야겠어.”

그녀의 손가락은 에제키엘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선은 제일린에게 둔 그대로였다. 사실 고개를 돌리기 무서웠다. 왠지 어젯밤처럼, 탑 위에서처럼 결심이 무너질 것 같아서였다.

에제키엘이 정말 정신을 조종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책을 읽기 전부터도 그와 눈이 마주치는 건 왠지 꺼림칙했다. 지금은 훨씬 더했다. 될 수 있으면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제일린에게도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네가 저것을 좋아하는 것도 어쩌면 눈을 마주칠 때마다 조종당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고.

제일린은 마음속에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 마음속 창가에 있는 꽃병이 바들바들 떨리는 게 느껴졌다. 꽃병이 떨리면서 창틀과 부딪히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그와 함께 있는 내내, 그의 정체를 궁금해하면서도 계속 하나만은 부정했다. 그녀는 어렸을 적 봤던 마족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했다.

음침한 인상의 그 사람은 마을에도,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의 마음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마족은 그런 종족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마족이 나쁘다고 했다. 마족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마족을 싫어하는 구체적인 이유가 있었다.

굳이 그래야만 했을까? 왜? 그 마족은 왜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에 고블린을 불러냈을까?

책들은 그 비밀을 알려주었다. 마족들은 인간들을 신경 쓰는 종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들이 자신들보다 약하다는 이유로 마음껏 유린했다.

그래서 에제키엘은 마족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주변에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고, 늘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제일린은 알았다.

그가 마족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그가 한 행동들을 하나하나 의심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나를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니라, 뭔가를 얻기 위해 그런 것이라고. 내가 모르는 곳에서 어떤 나쁜 일을 꾸미고 있었을 거라고.

“……모든 신을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에제키엘이 걸음을 뗐다. 자신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흘끗 본 그는 신전 쪽으로 향했다.

“저는 사랑의 신을 좋아합니다. 그녀는 제가 가장 갖고 싶은 가치를 수호하거든요.”

살짝 웃은 그가 제일린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눈이 마주친 제일린은 그 미소가 왜인지 처연하다고 생각했다.

“……들어가요.”

그가 속삭였다. 제일린은 어깨에 올려진 그의 손에 살짝 얼굴을 기댔다. 따뜻하다. 그러니 그는 마족이 아닐 것이다.

마음속이 시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