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하기가 사포 저리 가라의 여자 박준희,

여동생을 쫓아온 진드기 퇴치하러 나갔다 재수 없는 방아깨비 이훤을 만나다.





“이훤 씨?”

팔짱을 낀 채 땅바닥을 쳐다보고 있던 훤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고요한 주택가에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그저 어느 집 아줌마가 저녁 마실 가나보다 신경 저편으로 밀어놓았던 슬리퍼 소리의 주인이었다.

목 늘어진 티셔츠에 검정색 트레이닝 바지, 사슴 꼬리 마냥 머리를 질끈 묶고 나타난 여자는 자신이 이름을 알려줄 만큼 낯익은 얼굴이 아니었다. 단연코 지금 이 순간 처음 보는 여자였다.

“예.”

준희는 여자로서 작은 키가 아님에도 고개를 살짝 쳐들고 올려다봐야하는 남자가 은근히 기분이 나빴다.

“저는······.”

“아! 연희 동생이구나.”

키는 연희보다 큰 것 같았지만 동그란 이마에 무표정하게 쳐다보는 얼굴이 한참 앳되어 보여 훤은 단번에 단정을 지었다. 언뜻 보니 앙칼진 눈매가 연희와 닮은 듯도 했다. 그가 반갑게 웃으며 인사라도 할 겸해서 손을 들어 올리는데 이 무뚝뚝해 보이는 여자가 쌀쌀맞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니거든요.”

항상 있는 일이었다. 한 살 어린 연희보다 동생으로 보는 것은. 스무 살 무렵에는 어려보이는 게 정말 싫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은근히 기분 좋은 준희였다. 동생한테 얼굴로는 밀리지만 그런 거라도 이기는 게 유치하지만 나름대로 자부심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기분이 나빴다. 척 봐도 자신과 나이차가 얼마 되어보이지도 않는 남자가 단번에 애 취급을 하니 울컥 기분이 상했다.

당황하기는 훤도 마찬가지였다.

“어? 연희 동생 아니야?”

“언니에요.”

“그래? 아, 그러고 보니 나랑 같은 백화점에서 일하는 언니가 있다고 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그가 반갑다는 듯 싱긋 미소를 지었다.

“매장에서 일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반가워. 이제 한 스물 한둘로밖에 안 보이는데 되게 동안이다. 근데 연희는 안 나오고 왜 언니가 나와?”

이 자식이 언제 봤다고 반말을 찍찍 날리는지 기분이 상하다 못해 썩는 느낌이었다. 어린애 취급 받은 것도 분한데 자신만 꼬박꼬박 말끝을 올려 받칠 이유가 없었다.

“연희는 안 나와. 진드기 떼어달라고 해서 대신 나온 거야. 앞으로 전화사절, 찾아오는 것은 더더욱 사절. 내 동생한테는 남자친구 있으니까 이만 냉수 먹고 속 차리길. 그럼 밤길 조심해서 가든지 말든지.”

제 할 말만 하고 몸을 홱 돌려서 가려는데 풋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방아깨비가 재미있다는 듯 가슴을 들썩이며 웃고 있었다.

이놈이 실성을 했나.





신데렐라 언니처럼, 예쁘고 착한 여동생을 질투해서 성질이 못돼 처먹은 줄 알았다.

입만 열면 면박에 통박주기 일쑤인 얄미운 여자가 예뻐보이기 시작한다.



“나랑 사겨.”

순간 준희는 멈칫했다. 혹시나 잘못 들은 건 아닐까 가늠하느라 잠시 침묵하던 그녀는 간신히 말문을 열었다.

“뭐라고? 너랑…… 뭐?”

저게 무슨 소린가 했다. 자신이 잘못 듣고 오해를 했을 수도 있으니 준희는 눈썹 사이에 힘을 주며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그때까지 우아한 동작으로 스테이크를 썰어먹던 훤이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그리고 물을 한번 마시고는 그녀를 똑바로 응시했다.

“박준희.”

“왜, 왜.”

내가 왜 말을 더듬지?

“우정에서 우러난 의리는 다른 녀석 찾아서 할 테니까 너는 그냥 여자해라.”

“뭔 소리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는 친구용이 아니야. 너처럼 사람 성질 긁고, 신경 쓰이게 하고, 화가 나게 하는 친구는 필요 없어.”

“…….”

“친구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일이 대수롭게 되어버리니, 그건 친구가 아니니까 그런 거잖아. 그런 너랑 친구를 먹느니 길 가는 똥개한테 친구하자고 하는 게 낫겠다.”

“그러니까 그 말은, 네가 먼저 친구 먹자고 옆구리 찔러 놓고 이제 와서 내 성질이 못돼서 절교하자는 뜻이야?”

“그래. 그 대신 우리 연애하자고.”



프로필



박주미


아줌마면서 아가씨라는 호칭에 뒤 돌아보는 여자.

징하게 말 안 듣는 미운 네 살 아들을 둔 엄마.

로맨스 읽는 것을 좋아해서 로맨스를 쓰기로 작정한 사람.

현재 소망은 깽깽이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이 수준급이 되어 비브라토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되는 것.



'도화'라는 필명으로 앞으로 계속해서 글을 쓸 예정이 있음.



출간작


미워도 좋아

너는 나의 봄이다



이북


자이언트 피치

내사랑 모모

이름 : 박주미
생년월일 : 77. 12. 1
혈액형 : O형
처녀작 : 자이언트 피치
좌우명 : 카르페디엠! (carpediem!) 이 순간을 즐겨라!
현재 로망띠끄 라일락 방에서 ‘내 사랑 모모’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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