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하……어찌 한번의 의심도 하지 않으시옵니까. 소신을 그리 믿으시옵니까? 이미 저하를 속이고 있는 저를……이토록 믿어주시는 것입니까? 소신은 그저 가슴이 아플 따름이옵니다.”
미안수와 분맥분 대신 검을 선택한 것은, 아영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긴 시간을 벙어리로 살아야 했음은 오직 저하 때문이었습니다. - 무영

"내 벗을 찾아왔는데……내 벗은 없구나! 너는 끝내 나를……바보 천치로 만드는구나! 다시는 내 앞에서 신이라 말하지 말라. 구역질난다." 강력한 왕권강화를 꿈꾸는 일국의 세자 - 단

“처음부터 이리 살려 궁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난 것이 많은 자는 내 마음을 알지 못해.” 이미 가진 것에 만족하여 그칠지 모르는 - 옥여

“말로만 들었던 여자무사? 나는 당신이 좋습니다. 당신 때문에 백년가약이라는 말도 생각했을 뿐, 그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말입니다.” 내 마음의 연모는 내 것이라 여기려는 - 홍길

본문 중에서

“저하가 사내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무영의 말에 뭔가로 머리를 한대 맞은 듯한 단이었다. 기분이 나빴다. 내 어디가 사내로 안 느껴진단 말인가 하여 심히 불쾌하였다.

“걱정마라. 너도 여인으로 안 느껴진다.”

되받아 치는 단의 말에 무영의 가슴에도 생채기가 나고 있었다. 알고 있음이다. 자신이 어디 여자로 보이겠는가. 이리 못난 여인은 자신이 봐도 본적이 없음이다. 굳이 단이 지적해주지 않아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해주자, 무영의 마음이 울컥하였다.

“어차피 이름뿐이다. 살릴 방도가 이것밖에 생각나지 않아 그런 것이니! 후미진 전각에 처박아 두고, 찾지도 않을 것이니, 걱정 말라.”

‘이름뿐이라……. 그래, 그것도 내겐 과분할 터이지…….’

씁쓸하게 대내이며 생각하였으나,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하는 무영이었다.

“무영! 착각하지 마라. 널 여인으로 보겠다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으니……. 허나, 오랫동안 내 곁에 머물렀던 내 벗에 대한 배려다.”

감히 자신과 흥정을 하려 드는 것 같아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살려준다 하는데도 이리 하는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차마 죽도록 내버려둘 수 없어 생각해낸 방도이니, 내가 널 안을 것이란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아. 감히 진심으로 내 여자가 되겠다. 생각했더냐? 내게 다른 마음을 품으며, 나를 저버린 자를 안을 만큼 내 가슴은 그리 넓지 못하다.”

“말씀드린 대로……. 그래도 저하가 사내로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사내로 아니 보인다 하였더냐? 내가 사내인지 확인이라도 시켜줄까? 혹시 알아? 나도 너처럼 여자일지……. 한번 볼 테냐?”


글줄거리
뛰어난 무예실력을 가지고 벙어리인 채, 주상전하의 명으로 세자익위사의 우익찬으로 살아야했던 무영에게 세자 단은 어느새 자신의 정인으로 자리 잡았다. 어렸을 적부터 늘 함께였고, 이미 빈궁마마도 계셨던 터라 한번도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한 적이 없었다. 그러던 단이 강력한 왕권을 시행하기 위한 시발점으로 궁녀 옥여에게 승은을 주었으나, 그것은 이미 서인의 거두인 대비전과 옥여의 계략이었다. 옥여에게 승은을 주던 날 비로소 단을 사모하고 있었음을 느낀 무영이었다. 허나, 자신을 내보일 수는 없는 일이었고, 단이 환국을 시행하면서 서인들의 신료들 중 모반의 무리가 생겨난다. 그것을 세자빈이 알게 되어 무영에게 부탁하게 되었으나, 빈궁전을 찾아드는 것을 옥여가 목격하게 된다. 옥여와 대비전의 술수로 인해, 빈궁과 무영은 또다시 곤경에 빠지면서 무영은 의금부에 갇히어 드디어 여자였으며, 벙어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단이 알게 된다. 무영이 여자였음을 알게 된 단은 배신감에 몸서리치며 괴로워했으나, 차마 무영을 죽게 만들 수 없어, 무영을 자신의 여자로 만들려한다. 허나, 빈궁마마와의 친분이 있던 무영은 단에게 모진 말로 상처 주고 그들의 오해는 조금씩 쌓여가기 시작한다. 단의 철저함으로 모반을 성공적으로 제압하지만, 그 과정에서 단의 간자노릇으로 모반세력에 잠입하였던 홍길과 무영이 만나게 된다. 무영은 오로지 단만을 바라보지만,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낀 홍길로 인해, 무영과 단은 너무도 심하게 오해로 뒤틀려 버린다.
담장하나 사이에 두고, 자신의 앞에 있는 자가 단이라 생각하고 고백하는 무영……. 그것을 홍길에게 고백하는 것이라 생각한 단, 모든 것을 알고 있으나, 끝까지 말하지 않는 홍길…….
질투로 인해, 비어있는 빈궁의 자리로 무영을 데려온 단은 무영을 괴롭히기에 이른다. 하지만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자신의 마음이 더 아프고, 자꾸 무영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음이다. 빈궁마마 되어, 궁 생활을 하던 무영은 단의 아이를 회임하고 있는 옥여와 자꾸 부딪히고, 지아비인 단과는 자꾸 어긋나기만 한다. 용기를 내어 다가간 자리에서는 오히려 경험 있는 것이라 여긴 단이 심하게 무영을 대하고, 창기취급까지 해버린다. 그것으로 인해 반년동안 단은 무영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애써야했고, 다시는 질투라는 옹졸함으로 괴롭히지 않으리라 다짐하나, 이미 무영의 마음은 닫아버린 지 오래다.
옥여와 계속 부딪히는 무영은 진정으로 후궁을 다스리기 위해 내기를 하기에 이르고, 결국은 옥여와의 내기로 다시 단과의 사랑을 확인한다. 허나, 옥여는 그것을 두고 보지만은 않는다. 결국은 사약을 받아 죽을 때까지 악행을 서슴지 않고 행하니, 아무리 군을 생산한 어미라고는 해도 모든 악행이 드러나 꽃다운 나이에 죽을 수밖에 없음이다. 전빈궁을 독살하고, 이제는 무영까지도 독살하려 했던 옥여가 생을 마감하고,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으며 궁 안에는 꽃피는 봄이 온다. 춘궁이 따뜻한 봄을 연상하며 세자를 지칭하는 말인 만큼, 세자 단에게 진정한 봄은 빈궁인 무영이라 말한다.

김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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