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우린 미래가 없어! vs 그게 무슨 개소리야?

중앙고 최고의 꼴통, 우지환.

중앙고 공식 금지옥엽 공주님, 이윤.

그리고 9년 후,

여전히 욱하는 서울지검 검사 우지환.

쫄딱 망해 알거지 직전의 스튜어디스 이윤.

동창회에서 다시 만난 첫날부터 불타는 새벽 끝에 1일이 된 어영부영 연인.

비밀연애 1년차에, 말 못 하는 각자의 고민은 점점 커져만 가고.

소심한 윤이 제멋대로 지환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돈, 부귀영화, 로맨틱, 다 필요 없으니

“회사 모임이 있는데. 네가 멋지게 하고 오면 좋겠어!”

하지만 그 약속마저 어기고 엉망으로 모임에 나타난 그에게 윤은 두 사람 사이의 한계를 제대로 깨닫게 된다.

“우린 미래가 없어.”

“나 같은 놈한테 애초에 미래가 있었던 적이나 있는 것 같아?”

혼란스럽고 어딘가 부족한 두 사람의 미래는 과연…… 있을까, 없을까?

2. 작가 소개

최수현

필명은 연하늘빛.

다시 생각나고, 또 읽고 싶어지는

그런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 출간작

기다려줄래

그 여름, 나는(2016 리디북스 로맨스 대상 수상)

당신의 자리

취향의 문제

겨울, 또다시

비 내리는 밤

기억하나요

3. 차례

#18장

#19장

#20장

#21장

#22장

#외전 1. The moments of happiness

#외전 2. 가족끼리 왜 이래?

#외전 3.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마지막 이야기

4. 미리 보기

어떻게 저런 예쁜 애가 있을까 했다. 모든 비교의 정도를 ‘욕이 나올 만큼’이라 했던 시절에 지환에게 윤은 ‘나오려던 욕도 들어갈 만큼’ 예뻤다. 야반도주로 윤이 강릉을 떠나고 나자 상상 속의 그녀는 어쩐 일인지 더 예뻐질 일만 남았다.

돌았구나.

그런 건 전부 못 먹은 떡 아쉬운 거라 자위했다. 하지만 10여 년 후 다시 만난 윤은 남자가 할 만한 어설픈 망상 따위는 따라올 수도 없을 만큼 예뻐져 있었다. 그건 비단 눈에 보이는 얼굴만이 아니었다.

우아한 몸가짐, 조용한 말소리, 그늘진 곳 없는 웃음.

입고 있는 옷이 조금 달라졌다 해서 가려지진 않았으니 곁에 두고도 신기해서 몰래 훔쳐볼 때가 있었다. 물론 윤이 눈치를 채자마자 눈가에 바짝 힘이 들어간 탓에 그게 언제건 충분하게 느껴진 적은 없다. 대신 이윤의 뒷모습만큼은 세상 누구보다도 잘 그려낼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얘는 여기가 끝이겠지.

보다 보면 사람인 이상 이 이상 예뻐질 것 같지는 않아, 볼 때마다 이윤이 지금이 그 정점일 거라 제멋대로 속 편한 판단을 했다. 거기서 서서히 내려갈 일만 남았더라도 뭐 어쩔 수 있나. 몸정 맘정 있는 건 전부 찐득하게 들었는데. 그건 그거대로 안심하며 묶어두기 좋을 거라 음흉한 생각도 했다.

「……왜 그렇게 보는데? 욱지환?」

「…….」

「늦어서 화난 거야? 미안. 화내지 마.」

그리고 그는 매번 자신이 틀렸다는 번뇌와 깨달음을 반복했다.

쟤 뭐냐.

이윤은 신기한 여자라 지금이 어제보다 더 예뻐졌다. 그 모든 것은 제 판단오류라기보다는 이윤이 특별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특별한 여자를 곁에 두니 무슨 훈장이라도 단 것처럼 어깨가 으쓱했다. 가진 걸로는 남에게 으스댈 수 없던 그가 뒤늦게 허세의 맛을 알았다.

내 인생에 이런 날도 있다며.

소박한 건지 허황된 건지 모르겠지만 돈이나 바짝 모아 하루빨리 데려올 날만 기다렸다. 매일 아침 부동산과 주식부터 체크하며 한량 소리를 들어도 스스로는 ‘성실한 가장’이나 다름없었다. 누가 뭐래도 그랬다.

그런 윤이, 안 그래도 사람을 하루에 열 번씩 미치게 하는 윤이 다른 남자의 옆에서 더욱 예뻐졌다. 방심을 한 적도 없는데 겨우 몇 걸음만 떨어져 지켜보니 이미 그런 일이 벌어졌다.

「당신이 대체 윤이 씨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습니까?」

현우의 말도 열이 뻗쳐 그렇지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비싼 곳에서 칼질을 하고, 또 반질거리는 옷을 입은 윤은 갈수록 반짝여 그를 충격에 빠뜨렸다.

네가 어떻게 나 아닌 다른 사람 옆에서.

뭐 이런 유치한 분노는 아니었다. 다만 내가 하도 좋으니 윤의 마음이나 행복 같은 건 따로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랬다.

부끄럽지만, 아니, 솔직히 부끄럽다 생각이나 했던가. 그냥 이 마음이 하도 커서 그토록 소중한 윤의 마음도 들여다보지 못할 만큼 맹목적인 마음이었다. 놓아줄 수 없고, 죽었다 깨어나도 곱게 보낼 수가 없으니 생각해보았자 시간만 아깝다며 억지로 모른 체했다. 일단 다시 찾아오면 가두면 가두었지 놓치는 일은 없을 거라는 다짐만 악착같이 새겨댔다.

그래서 대체 어쩌라고.

네가 다른 데서 아무리 반짝거린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 것 같아?

하루가 다르게 마음이 엇갈렸다. 그녀가 자신의 청춘을 모두 바꾼 돈을 몽땅 잃고 나서는 더 그랬다. 그가 지금보다 더 가진 것이 많았더라면 윤이 그렇게 허겁지겁 쫓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숨길 필요 없이 ‘자!’ 하고 떡하니 버팀목이 되었을 텐데.

너도 날 위하니 마니 그런 어쭙잖은 생각으로 날 지옥 끝으로 밀어넣진 못했을 텐데.

우습고 허망한 마음은 그의 식욕과 수면욕을 모두 앗아갔다. 어떻게 되더라도 윤에 대한 마음만은 변할 수가 없어 그것만이 그의 마지막 보루였다.

「……진짜 원하시는 게 뭔데요?」

그런데 삶이란 게 이렇게나 우스웠다. 바닥까지 굴러 입에서 피비린내가 나고 눈앞에 선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하얗게 변하고 나서야 드디어 그는 다른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되었다.

“……윤아.”

다시는 윤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망치가 되어 제 본마음을 꽁꽁 둘러싼 억지와 집착을 깨트려버렸다.

내가 바라는 건 오직…….

“……야! 너 정신 들어?”

“으으으…….”

“이게 무슨 일이냐! 미치겠네. 나 보이지?”

“검사님!”

머리를 잡고 일어나려는 지환에게 연우가 달려와 팔을 잡았다. 아직도 웅웅거리는 귓가가 터널을 막 빠져나온 기분이다. 이미 가까이에 서 있던 기웅은 지환도 안 하는 욕설을 대신 지껄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움직이지 마, 인마! 그렇게 잘난 척을 해대더니 미성년자한테 그 꼴을 당하냐! 그것도 검찰청에서?”

“검사님, 정말 큰일 날 뻔하셨어요! 구급차 오고 난리 났었어요!”

“……그래서 내가 지금.”

“살아는 있는데 멀쩡하지는 않단다, 이 미친놈아! 됐냐?”

“…….”

간만에 입장이 바뀐 기웅이 버럭거리자 지환은 제 몸 어딘가에 손을 대어보았다. 거울이 없어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피부가 닿아야 할 곳에 까끌한 붕대가 느껴졌다. ‘겨우 이깟 거.’ 하고 던져버리기엔 꽤나 아팠다. 사실 아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 숨을 쉴 때마다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이는 가슴으로 손을 옮겼다.

“아프긴 아프냐? 병신아. 너 갈비뼈 금 갔단다. 장하다, 아주.”

“……어쩐지.”

“어쩐지? 속 편한 소리 하고 있네! 전치 4주라고! 부장님이 너 강제휴가 내셨어!”

“…….”

“당분간 검찰청에 얼쩡거릴 생각도 하지 말래. 너 같은 놈은 이런 때 휴가 안 주면 검사인권 어쩌고 하면서 고발할 놈이라고!”

“그래요, 검사님. 일 이렇게 된 김에 좀 쉬세요. 돈도 다시 생겼다 하셨으니 그냥 집부터 구하셔야겠어요. 저희한테 맡기시면 적당한 곳부터 알아볼게요.”

강제휴가는 둘째치고 연우와 기웅 두 사람이 더 강제로 그를 잡아두려 했다. 맡겨놓은 듯 손을 내미는 연우에게 지환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아무리 죽다 살아났다지만 제 돈 달라는 사람한테는 본능적으로 으르렁거렸다.

“그 돈 이제 내 돈 아닌데. 한번 줬던 거야.”

“잘났다! 넌 이 상황에도 그런 말이 나오냐! 운이 좋으니 갈비뼈 금 가고 말았지 잘못하면 뇌진탕이야! 절대안정 몰라?”

“한 검사님, 그만하세요. 환자잖아요.”

연우가 기웅을 말려보며 지환에 대한 딱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저 혈기 팔팔한 사람이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꼴이 우리에 갇힌 맹수 같았다. 저 안에서 아무리 부닥쳐봤자 피멍 들 일밖엔 없다. 괜히 기웅과 싸움이 붙기 전에 먼저 나서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래도 검사님, 간만에 푹 주무시긴 했나 봐요. 검사님 그렇게 편한 얼굴로 주무시는 거 첨 봤어요! 사무실에선 꼭 지금처럼 미간을 이렇게 찌푸려서는…….”

“그러고 보니 그러네. 저 자식 속 편하게 자는 거 보고 죽은 줄 알았잖아요. 우지환, 너 무슨 꿈 꿨냐? 천사가 막 마중을 와?”

“……그런가.”

“뭐래, 미친놈아. 네가 죽는데 왜 천사가 와? 말이 안 되잖아.”

“그러니까.”

그래서 죽는 것도 아무나 죽지는 않겠거니 했었다. 지환이 간만에 선선한 수긍을 하자 기웅과 연우도 더는 뭐라지 못하고 입맛만 다셨다.

“……검사님.”

반은 걸러듣는다 쳐도 깨어난 지환은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입가에 아직 핏자국이 선연하고 붕대가 군데군데 감긴 모습에도 눈빛만은 편안했다.

“무슨 득도하신 것도 아니고, 진짜로 무슨 생각 하셨길래 그래요?”

“그냥 뭘 좀 알게 돼서.”

“뭘요?”

“……걔 이름이 왜 윤인지.”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지환이 다시 털썩 몸을 눕혔다. 침대에 등이 닿는 순간 반동으로 흔들리는 가슴이 아파서 환자복을 움켜쥐었지만 정작 아픈 곳은 따로 있었다.

“반짝반짝하게 사는 게 어울리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