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이 울렸을 때 앨래나는 거의 안정을 되찾은 상태였다. 아침이 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잠은 벌써 멀리 달아나 있었다. 브로큰 마운틴에서 돌아온 이후로 그녀는 달콤한 숙면을 취해본 적이 없었다.
어지럽게 말려 있는 침대 시트를 젖히고 앨래나는 전화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웨스트 코스트에 있는 사람들 중에 그녀가 아는 누군가가 벌써 잠에서 깨어 나 전화를 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각이었다. 그렇다면 아마 와이오밍에 있는 그녀의 남동생이 안부를 묻기 위해 전화를 한 것이리라.
브로큰 마운틴에서의 일을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말이다.
「여보세요.」
앨래나는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누나? 누나 맞지?」
「봅이구나. 메리는 잘 있지?」
「2월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지, 뭐. 메리의 덩치가 더 커지면 마구간에 넣어서 암말들하고 놀게 할까봐.」
봅이 웃으면서 말했다.
앨래나는 금발 머리를 한 작은 몸집의 메리가 봅이 애지중지하는 말들 사이에 섞여 마구간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미소를 지었다.
「행여나 메리가 들을까 무섭다, 얘.」
앨래나가 꼬집어 말했다.
「그건 메리의 생각인걸.」
봅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누나?」
순간, 수화기를 쥔 앨래나의 손에 힘이 느껴졌다. 언젠가 이런 어조를 들었던 것 같다. 어린 남동생이 누나에게 보내는 미소와 애정 어린 어리광을.
동생은 그녀에게서 뭔가를 원하고 있었다.
「집에는 언제 올 거야?」
봅의 무뚝뚝한 소리에 앨래나의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얼음과 어두움 속에 묻힌 채 가파르게 솟아 있는 브로큰 마운틴의 농장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동생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브로큰 마운틴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나기 전, 앨래나는 농장을 사랑했다. 그리고 산과 고요, 언덕, 머리 위에서 소용돌이치는 구름도 함께. 또한 그녀는 라파엘 윈터와 함께 했던 추억을 사랑했다. 호숫가, 향긋한 숲 곳곳에 라파엘 윈터, 즉 래이프와의 추억이 있었다. 해돋이와 석양은 대지를 붉은 빛으로 타오르게 했고 윙윙거리는 바람소리는 래이프의 하모니카 소리에 화음을 넣었다.
앨래나와 래이프는 대지의 일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대지를 다른 어떤 것보다 사랑하게 됐던 것이다. 하늘과 산 사이에 그들 두 연인은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고 하늘과 산도 그들의 아름다움만은 못했다. 둘 사이에서는 시간은 정지되었고, 그들은 태양과 함께 타올랐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산은 앨래나를 공포로 떨게 하고 있었다.
지금, 래이프에 대한 추억은 절거덩거리는 날카로운 갑옷이었고 앨래나는 그 갑옷을 끌어당겨 몸을 감쌌다. 지난 6일 간은 그녀의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은 시간이었고 그 시간의 심연에서 공포와 어두움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앨래나는 래이프와의 추억이 그 공포와 어두움을 밀어내고 동이 트듯 그녀의 기억을 밝혀주길 바랐다.
「난 안 가…….」
앨래나가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동생이 한 발 앞서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누나의 에이전트에게 벌써 말해뒀어. 그 사람이 그러는데 누나가 모든 음악회를 다 거절했다면서 자기가 누나한테 보낸 노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거라고 했어.」
「그렇긴 하지만…….」
앨래나가 말을 하려 하자 봅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바빠서 못 온다는 소리는 하지 마. 누나가 노래를 다시 쓰고 있다면 여기에 와서 써도 되잖아. 누나는 여기서 일하면 언제나 일이 제일 잘 됐잖아.」
그녀는 수화기를 잡은 손에서 힘을 풀었다. 동생의 말에 변명의 여지가 없었기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나, 누나가 꼭 와줘야 해.」
「봅, 내 생각에는…….」
앨래나는 다시 말을 꺼냈지만 끝까지 잇지 못했다.
「안 된다고 하지 마. 누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조차 몰라.」
봅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리고 너도 내가 원하는 것을 모르고 있지. 앨래나의 가슴속에서 뭔가 치밀어 올랐다. 너는 내가 원하는 게 있는지 물어본 적도 없으니까.
그러나 차마 그런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뭔가를 원하는 소리 없는 외침만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간절한 외침이 마음속에서 메아리 치고 있을 때조차, 그녀는 그것이 옳은 일이 아니란 걸 깨닫고 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봅은 해줄 수 없었다. 그녀는 따스함과 위안을 원했고 안전을 원했으며 그녀와 깊은 구렁 사이에 서 있는 한 남자의 강한 힘을 원했다. 그래서 그것들이 자신을 보호해주길 바랐다. 그래서 마침내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게 되고 자신에게 또 하나의 보호막이 생기길 바랐다.
그녀를 위해서는 공포 대신에 사랑이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그녀에게는 악몽을 쫓을 꿈이 필요했다. 그녀에겐 라파엘 윈터가 필요했다. 하지만 래이프는 한낱 꿈이었고 악몽만이 현실이었다.
앨래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힘을 내서 새로운 세계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녀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자신만을 의지해 혼자 살아가는 생활을.
그녀는 전에도 이런 적이 많이 있었다. 악몽이 폭풍처럼 엄습해올 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숨을 깊이 들이쉬거나 마음을 굳게 다지는 것이 고작이었다.
「원하는 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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