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9월

그의 얼굴은 여자들이 꿈에서라도 보고 싶어하지 않을 얼굴이었다. 휴스턴 리는 눈을 가린 검은색 안대의 가장자리를 엄지손가락으로 한 번 쓰윽 만져본 후에 모자챙을 왼쪽으로 깊숙이 눌러썼다. 오른쪽 모자챙도 많이 닳아 있었지만, 왼쪽은 손때에 찌들대로 찌들어 반질반질 윤이 났다. 따뜻한 날씨임에도 휴스턴은 코트 깃을 높이 세웠다.
세상 만사가 다 귀찮고 성가신 일 투성이였지만, 형은 특히 더 그랬다. 휴스턴은 포트워스에서 최초의 기차역이라는 구실로 어줍잖은 명성을 얻고 있는 목조 건물에 삐딱하니 기대서서는, 끝도 없어 보이는 철로를 느른하니 바라보았다.
휴스턴은 이놈의 철로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읍내 경계선을 널리 확장해서 그 한 끝에 기차역을 세우느라 부산을 떨기 전까지 포스 워스는 그저 망각 속으로 사라져가는 유령의 마을로 퇴락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거로 뽑힌 관리들이 이 퇴락해가는 목장 마을을 신흥 도시로 탈바꿈시켜서 금방 ‘초원의 여왕’으로 만들 수 있다고 쏙닥질을 해대자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초원의 여왕…….
휴스턴은 끄응, 신음인지 한숨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형은 펜팔로 연결되어 결혼까지 이르게 된 신부감을 그렇게 불렀다. 아직 얼굴은커녕 그림자도 본 적이 없는 여자였지만.
휴스턴의 형수가 될 그 여자가 달라스가 생각하는 것처럼 정말로 초원의 여왕인지 어릿광대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달라스는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그 여자가 살 궁전을 짓느라고 돈­그것도 아우들의 돈까지 긁어서­도 숱하게 썼다.
「이제 이 곳에 여자만 하나 끌어들이면 되는 거야. 그 다음에는 만사가 술술 풀릴 거라구.」
달라스는 가무잡잡하니 잘생긴 얼굴에 함박웃음을 띠며 동생들 앞에서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하지만 휴스턴은 황량한 바람만 불어대는 들판에 여자들이 얼쩡대는 것이 탐탁치 않았다. 여자들의 부드러운 미소와 간드러지는 웃음소리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남자들이 품는 원초적인 꿈에 연연하게 만들 것이 틀림없었다. 그에게는 참혹한 현실의 심연 속에 내던져버린 꿈들.
휴스턴은 자신보다 모양이 훨씬 덜 망가진 부상병들도 많이 보았었다. 그들은 대부분 부상에서 회복된 후 처음으로 거울을 본 순간, 곧바로 엽총 한 자루를 들고 나가 인생을 마감했었다. 만약 그런 용기만 있었더라면 휴스턴도 같은 운명을 택했을 것이다. 하긴, 정말로 그런 용기가 있었다면 형조차도 억지로 구역질을 참으며 봐야 할 만큼 그의 몰골이 이렇게 참혹하게 망가지는 변은 당하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멀리서 피어오르는 연기 구름이 얼핏얼핏 보이기 시작했다. 기차가 온다는 기대감에 사람들이 역으로 몰려들었다. 사막을 건너던 사람들이 물 냄새를 맡았을 때의 모양과 비슷했다. 슬그머니 몸을 돌린 휴스턴은 왼쪽 어깨를 다른 나무 기둥에다 기댔다.
달라스, 이 나쁜 놈……. 내 손길이 필요한 말들을 다 버려두고 여자들과 어린애들, 남자들이라고 해봐야 남북전쟁에는 코빼기도 못 비쳤을 놈들만 수두룩한 이곳에 제 신부감을 데려오라고 나를 내보내다니. 달라스가 포트워스로 가서 신부감을 대신 데려오라고 명령조로 이야기했을 때 할말을 잊었을 정도로 어안이 벙벙하지만 않았더라면, 휴스턴은 형의 멀쩡한 한쪽 다리도 마저 분질러버렸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심정 같아서는 목장으로 돌아가서라도 그 놈의 다리를 마저 부러뜨리고 싶었다.
푹푹거리는 기차 소리와 귀에 거슬리는 기적 소리가 들려오자 휴스턴은 땀이 번지기 시작한 손을 코트 주머니 속에 넣었다. 거친 손가락에 부드러운 물건이 만져졌다. 생각은 그렇지 않은데, 손가락은 섬세한 실자국을 더듬고 있었다.
달라스와 결혼하겠다고 여기까지 찾아오고 있는 그 여자는, 좁고 길게 자른 흰색 명주 천조각에 꽃을 곱게 수놓아 신랑감에게 보내왔다. 그 천조각을 모자의 운두에 묶어 알아볼 수 있도록 하고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꽃? 웃기고들 있네…….
세상에 모자에 꽃무늬 천을 두를 미친놈이 어디 있나? 모자에 뭔가를 그리거나 묶어야 한다면, 휴스턴은 자기 손으로 잡아 껍질을 벗겨 말린 방울뱀 껍질이나 자기 손으로 직접 무두질한 가죽 조각, 어쨌든 다른 것은 다 참아도 분홍색 꽃무늬를 수놓은 천쪼가리만은 절대로 묶지 않을 사람이었다.
휴스턴은 혹시 달라스가 이 우습지도 않은 천조각을 모자에 묶을 일이 걱정스러워 일부러 다리를 분지른 게 아닐까 의심스러워졌다. 정식으로 결혼도 하기 전에 여자의 성질부터 긁어놓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 여자와 결혼할 사람은 휴스턴이 아니었다. 고로, 휴스턴은 얼마든지 제멋대로 여자의 속을 긁어도 상관이 없다. 다시 말하면, 절대로 이 꽃무늬 명주 조각은 모자에 묶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럼, 절대로 안 되지. 절대로.
지금껏 살아오면서 어떤 일에든 자기 고집을 내세워본 적이 없는 휴스턴이었지만, 이번만은 자기 고집대로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누가 뭐래도 내 모자에 꽃그림을 매달 수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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