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적의 황당했던 경험으로 인해 남자만 보면 거시기를 떠올리며 재채기를 해대는 고질병을 갖고 있는 단영. 덕분에 스물아홉이 되도록 연애 한 번 못해 본 오리지널 숙맥이다. 잡지사의 청탁으로 산 속으로 취재여행을 갔다가 그만 독사에게 물리고 만 그녀. 그때 마침 구세주처럼 나타나 그녀에게 응급처치를 해 주는 남자가 있었으니, 커다란 덩치에 수염이 시커멓게 뒤덮인 헐크 같은 그가 어째 독사보다 더 위험해 보이는데…….

촉망받는 내과의사였지만 어처구니없는 의료사고에 휘말리면서 의사로서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사랑하는 여자한테서도 버림받아야 했던 아픈 기억을 안고 사는 항록. 모든 것을 버리고 약초꾼 행세를 하며 산속에서 은둔하던 어느 날 독사한테 물린 여자를 구해주게 된다. 그리고 그녀를 치료하면서 기억 속의 아릿한 복숭아향을 맡는다. 9년 전, 자신의 동정을 고스란히 들켜버린 여자에게서 나던 그 복숭아향을.

-본문 중에서-

무례하게 쏘아대는 단영의 말에 벌컥 화라도 낼 줄 알았던 그는 예상외로 말이 없었다. 그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했다. 긴 침묵이 이어졌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말을 잃어버린 건가. 단영은 항록의 깊은 침묵을 읽어낼 자신이 없었다. 그의 눈길을 되받아 칠 전의도 상실했다. 무저갱 같은 그의 눈동자에 갇히면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을 거란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가 쳐놓은 결계 밖으로 어서 나가야 한다!
단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배낭을 고쳐 매고는 걸음을 뗐다. 한 걸음 두 걸음 내디딜 때마다 징박힌 아픔이 가슴을 밟고 지나갔다.
"가지 말아요!"
처음엔 그것이 환청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붙잡아 주길 바라는 마음이 주책없이 지어낸 소리라 생각했다. 잠시 멈춘 걸음을 다시 옮겼다.
"가지 말라구요!"
이번에는 더 확실하게, 그리고 더 절실하게 들렸다. 환청이 아니었다! 먹물을 풀어놓은 듯 깜깜하던 단영의 마음이 줄줄이 집어등을 밝히며 출렁이기 시작했다.

아직은 작가라는 말이 너무 버겁기만 한 얼치기 글꾼.
소개란을 채울 무엇도 쟁여놓지 못한 가난한 이력이지만
한 두 편을 쓰더라도 작가라는 타이틀에, 또 스스로에게
덜 부끄러운 글을 쓰고 싶은 초보 작가다.
현재 찬찬이란 필명으로 작가연합사이트인 사랑아름(http://love-arm.com)에서
초대작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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