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혼자 남겨진 위기의 그녀,
센트럴 빌리지의 최대 주주 스무 살 박마리.
그런 마리의 유산을 노리는 불편한 동거인 강한나.
그리고
어느 날 마리의 앞에 키다리 아저씨처럼 나타난
호텔 파토스의 젊은 오너 조한준.
동화의 성, 센트럴 빌리지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세 남녀의 사랑이야기.



-본문 중에서-


[그녀]
“언젠가 내가 준비되면…… 그땐 내 모든 걸 스칠 거야, 아저씨한테.”
잘 자.
남자의 이마에 굿 나이트 키스를 찍은 여자가 침대에서 일어섰다.
“가지 마.”
남자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곤 희미한 시야를 깜빡이며 여자를 바라본다. 남자가 손아귀에 잡힌 그녀의 손목을 침대로 잡아당겼다. 매트리스가 출렁이며 그녀가 쓰러졌다. 아직도 어지러운 듯, 세차게 머리를 흔든 남자가 긴장으로 물든 여자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한다.
어둠 속에서 마주친 눈빛과 눈빛. 남자의 눈동자가 속삭이듯 반짝인다.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 내게 네 모든 걸 스칠 거란 듯이.
“가지 마라.”
“아저…….”
망설임 없이 그의 혀가 여자의 입술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를 부르려던 여자의 입술이 남자에게 점령당한 채 끝말을 흐렸다.
거침없이 입을 열고 들어온 그의 혀가 여자의 입속을 휘저으며 혀뿌리를 아프게 감아 당긴다. 그가 마신 술 냄새가 입 안 가득 고여 들기 시작한다. 남자가 마신 독한 술기운이 전이된 듯, 여자는 아찔한 표정으로 눈을 감아 버렸다.


[그리고, 그]
“내가 준비되면…… 그땐 내 모든 걸 스칠 거야, 아저씨한테.”
미소 짓던 입술이 뺨 위를 가로지른다. 풋풋한 향기를 몰고 온 그 입술이 이내 뜨거운 인두가 되어 이마 위에 내려앉았다.
뜨겁다. 그녀의 입술이 조금 더 내게 머무른다면 취기에 빙빙 도는 안구가 피를 뿜고 돌출할지도 모르겠다.
“잘 자.”
그 한마디를 끝으로 한준을 용서해 준다던 환상이 멀어져간다. 머릿속으로 외쳐 본다. 안 돼.
“가지 마.”
한준이 일어서려는 하얀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곤 깨질듯 지끈거리는 머리를 들어 흔들리는 시야를 바로잡았다. 두세 갈래로 흩어지던 환영이 하나의 실루엣이 되어 한준의 각막 속을 파고든다.
“가지 마, 박마리.”
“아저씨, 정신이 들어요?”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호칭을 듣고서야 환상의 실체를 머릿속에 또렷하게 그려낸다.
“박마리…….”
제 맘대로 내 마음을 흔들던 여자.
제 맘대로 내 마음을 장난처럼 건들던 여자.
나를 만지고, 나를 뒤흔들던 환상이 지금 내 손안에 갇혀 있다.
이 순간 어둠은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다.
마음을 이리 놓을까, 저리 물리칠까, 망설이던 미련스런 갈등도 이 순간엔 사라지고 없다.
손아귀에 잡힌 그녀의 따뜻한 체온이 촉각으로 선명하게 전해진다.
꿈이라도 좋다.
준비 따윈 필요 없어. 내가 준비됐으니까.
박마리. 오늘 널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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