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내가 누구인지 아는가 보군.”

“그……그게?”

“너의 피와 나의 피가 서로 섞였으니 이미 너와 나는 부부의 연이 맺어진 거나 다름없어.”

“제가 그 말을 믿을 거라 생각하셨나요?”

“믿든지 믿지 않던지 그것은 네 마음이야. 하지만 되돌아가기에는 이미 늦었어.”

부모의 자살, 창녀의 딸이라며 더러운 피가 흐른다는 비난을 받아온 연희.

연희는 자신을 지켜주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용이에게 끌려간다.

용이는 연희가 집안의 정혼자이고 운명이라며 결혼을 진행시키고,

민은 첫 눈에 반한 연희를 용에게서 빼앗기 위해 잔혹한 음모를 계획한다.

연희와 용 그리고 민은 수 백 년 전 지었던 죄로 벌을 받아 환생한 것이라는데……

대를 걸치며 엇나간 운명과 음모, 베일에 쌓여있던 연희 부모의 진실,

그리고 수 백 년 전부터 이어진 그들의 비밀이 밝혀진다!!!

[본문 내용 중에서]

[숙부님, 저에게 명령하지 마십시오.]

젊은 남자의 목소리에 숙부라 불리 운 남자의 얼굴에 천천히 웃음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내 명령을 받기 싫으면, 최소한 네 자리는 잃지 말아야 하지 않겠냐? 용아]

용, 이 집안의 모든 것을 주관하는 남자, 숙부라 불린 남자가 모든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뒤를 이을 후계자인 것은 명백했다. 잘 드러나지 않으려는 그를 보며 사교계에서는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한 번도 그런 것들에 흔들림이 없는 남자였다. 용이라 불리 운 남자를 표현할 때 사람들은 그를 “흑” 즉 어둠이라고 불렀다. 아무리 환한 것도, 그의 검은 힘 앞에 급속도로 어두워져버렸다. 그의 눈빛을 바라본 순간 모두들 압도당해 버렸다. 용의 저주가 내린 집, 저주를 풀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헤메인 지 어느새 몇 백 년의 세월이 흘러있었다.

[찾았더구나?]

[아이입니다.]

용의 대답에 이내 노인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여자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아이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리 빨리 답변을 하는 아이도 아니었다. 사실 자신의 정보에 의하면 그 아이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고 있는 중이었다. 오랜 전 정략적으로 맺은 상대이지만 특별히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석진의 보고대로라면 상대는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용은 숙부의 질문에 대답을 회피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그였다. 머리위로 쏟아져 내리는 하얀 눈을 맞으며 한참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서있었다. 뭔가 정리를 하려는 듯 눈을 자신의 숙부에게 향한 채 조용히 읊조리며 얘기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저에게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그저 전해져 오는 전설에 대해 저 자신은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저 선대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이런 제 마음을 숙부님이 훨씬 더 잘 아시리라 생각하는데요?]

불만을 간직하고 있는 아이였다. 윗 선대의 어른들이 조심스럽게 무섭게 과거의 일들을 받아들이는 반면 유독 용 이 아이만은 강하게 반발했고 옛날 얘기쯤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 아이의 피를 맛보지 않았느냐?]

말문이 막혔다. 오래전에 모든 것을 결정해 놓고 자신에게 그 길로 가라 요구하고 있었다. 지금 물어오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니라고 부정 할 수는 더욱 없었다. 숙부의 질문은 석진의 보고를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네가 선택하지 않으면, “민” 그 아이가 가만히 내 버려두지 않을지도 모른다.]

정적,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용의 얼굴이 굳어지고 있었다. 거친 숨소리가 차가운 공기 중에 울려 퍼졌다

[그 아이는 이미 제게 속한 여자입니다. 만약 민이 어리석을 짓을 하면, 피를 부르게 될 거라는 것을. 그것도 그 어떤 때보다도 더 지독한 꼴을 당하게 될 겁니다.]

차가운 그 한마디만 남기고 사라지는 조카를 보는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오래전의 일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었다. 과거의 일이라고 발버둥치며 도망가려고 했던 조카가 이제 모든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운명은 이미 두 사람을 위해 준비된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용이 자신이 처한 굴레를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그 굴레는 그를 더욱 죄여올 것이 분명했다. 본인은 부정하려 하고 있었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조카는 연희를 백 가문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방책을 만들어 놓았을 게 분명했다.

[석진아, 네 생각은 어떠냐?]

노인의 질문에 석진은 쓴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뭐라 할 말은 없었다. 오랜 세월이었다. 이제는 저주가 끝나야할 시기였다.

[저 역시 그분이 맞았으면 합니다.]

[맞을 거야. 분명히!]

[프로필]

서미선

그다지 할 얘기가 별로 없음.

사람을 좋아해서 집에서 수다떨면서 노는 것을

좋아해서 틈만 나면 놀 생각만 함.

▶ 출간작

〈후견인〉, 〈루비레드〉, 〈잔인한 사랑〉, 〈가면〉, 〈카인과 아벨〉, 〈부부〉, 〈지독한 거짓말〉, 〈피의 베일〉, 〈넌 내게 지옥이었어〉, 〈되찾은 약혼녀〉, 〈아내〉, 〈레드 러브〉, 〈백설화〉, 〈도령〉, 〈홍분지기〉 외 다수

[목차]

프롤로그

일장 ~ 십이장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