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기억하기에 아픈 여자. 홀연히 사라졌던 그는 8년 만에 나타났다. 그는 나를 지웠다. 가슴 설레던 사랑은 혼자만의 것이 되어 버렸다. 과거를 잊었기에 행복한 남자. 깨어나니 10살 이후의 기억이 없다. 내 머리는 기억을 지웠지만 내 심장이 너를 알아보고 사랑하기 시작했다. 사랑의 대가로 집을 나와 미혼모가 된 여자와 슬프고 아픈 기억을 지운 채 행복했던 10살 이전의 기억만을 남긴 남자. 그들이 8년 만에 재회했다.

-본문 중에서-

“예린아…….”
지후가 걸음을 멈추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예린을 부르고 입술을 달싹였다. 지금이 아니라면 또 시간이 많이 걸릴지도 모른다 생각이 들자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난 기억이 없는 시간을 알고 싶어 했지만, 꼭 기억을 찾아야겠단 생각은 안했어.”
지후가 잠시 뜸을 들이고 숨을 고르게 내쉬었다. 어떻게 말해야 예린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예린을 만나려면 언젠가 한번은 거치고 갈 일이라는 생각이 들자 차라리 매도 일찍 맞는 게 났다는 속담이 떠올랐고, 지금을 택했다. 
“그런데 너를 만나고 꼭 찾고 싶어졌어. 내 기억. 내 잊어버린 시간.”
잊어버린 시간 속 지후는 무슨 생각으로 어떤 감정으로 예린을 봤을까? 고백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찌질하게 궁상떨며 혼자 삭혔겠지 생각하면서도 그때 그 감정 그 느낌까지 모두 기억하고 싶어졌다. 예린이 다른 누군가를 좋아했다던, 그 모습까지도. 
“잊어버린 내 시간 속에 널 알고 싶기도 하고.”
지후의 말을 듣던 예린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시선은 피하지 않은 채 마주보고 있었다. 지후가 예린을 우연히 만난 건 메마른 땅을 적시는 단비 같은 거였다. 
“왜요……?”
“처음엔 김현준이 데려온 너에게 호기심이라고 생각했어. 그러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 네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래서 네가 신경 쓰이는지 생각해 봤는데 아니야. 내가 널 보면 느끼는 감정이 혼란스러웠는데 인정하고 나니 편해졌어. 정리가 돼서 말하려고…….”
지후가 떨고 있는 건지 예린이 떨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서로 맞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는 사이라서 느끼는 정이라는 감정이 아니라…… 아마도…….”
지금 내뱉을 말로 하여금 예린이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말라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릴지 모를 생각이 들며 불안해지자 지후의 목울대가 크게 울렁였다.
“아마도…… 너만 아는 그 시간에…… 그 시간 속에서 내가 널 좋아했었나 봐.”
지후의 진심이 예린에게 전달되길 바랐다. 지후와 바라보던 예린의 초점이 흐려져 갔다. 
지후의 목소리에 두근거리며 반응하던 심장은 미친 듯 날뛰기 시작해 온몸이 아픈 거처럼 느껴졌다. 목이 메고 숨이 쉬어지지 않아 예린은 결국 숨을 쉬기 포기하고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쉬지 못한 숨을 한 번에 내쉬고 예린은 지후를 똑바로 응시했지만 점점 눈시울이 붉어져 습기가 차올랐고 눈앞에 지후가 흐려지자 예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 그래서 지나간 사랑 고백하시겠다는 거예요?”

목차

0화. 프롤로그

1화. 과거를 기억하는 여자.

2화. 과거를 잊어버린 남자.

3화. 기억의 실마리.

4화. 사랑은 가슴이 한다.

5화. 내 심장이 널 기억해.

6화. 가족이 되는 단계.

7화. 부자지간.

8화. 바로잡기.

9화. 기억의 향연.

10화. 사랑이라 아프다.